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마음으로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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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5.16 00:20
  • 호수 1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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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국대학교에서 봉직한지 2달 남짓 된 그야말로 단국대학교의 새내기 교수이다. 그 동안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온 지는 10년이 훨씬 넘는 세월이 흘렀지만, 직장을 바꿔 단국대학교에 새로운 둥지를 틀고 보니 사실은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하다. 새로운 학교에서 새로운 학생들을 만나게 된다는 설레임, 그리고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애국지사가 설립한 오랜 전통을 지닌 대학에서 근무하게 되었다는 뿌듯함으로 시작한 나의 학교생활 2달을 돌아보며, <백묵처방>의 칼럼란을 통해 그 동안 새내기 교수가 느낀 몇 가지 사적인 단상들을 두서없이 적어보기로 하자.
연구실이 문학관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나는 강의가 없는 날 저녁 무렵에는 꽃나무들이 잘 가꾸어져 있는 난파음악관으로 향하는 언덕을 혼자 산책하곤 한다. 3월에서 4월로 접어들면서 여느 대학의 캠퍼스와 마찬가지로 학교 교정에는 개나리, 벚꽂, 진달래, 철쭉이 화사하게 피어 있다.
그리고, 문학관 앞 운동장에는 농구에 중독이 들어서인지 이 시간쯤이면 미친 듯이 게임에 열중인 엇비슷한 학생들이 눈에 띄곤 한다. 캠퍼스에 만발한 봄꽃들을, 그리고 활력이 넘치는 농구매니아 학생들을 바라보면서, 대학에서 봉직한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하느님이 내게 주신 큰 축복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더 정확히, 요즈음 솔직한 나의 마음 자락 몇 가지를 드러내 보인다면 이런 것들이다. 나이 들어서도, 태생적으로 마음이 여리어서인지 혹은 나 혼자 만이 갖는 유치한 감정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금요일 아침 첫 강의 시간에 맞춰 일찍 학교에 등교할 때면 교내 방송국에서 엄숙하게 울려나오는 첫 시그널 음악인 학교 교가를 들으면서 괜히 마음이 뭉클해진다.
그 교가의 내용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어쩐지 마음이 숙연해지고 비장해 진다. 해서 공연히 마음속으로 무슨 애국지사나 된 것처럼 중얼거린다.

그래 뭔가 하긴 열심히 해야 할텐데. 또 있다. 얼마 전 캠퍼스에도 초여름을 알리는 입하의 비가 하루종일 거칠게 뿌려대고 있는데, 한총련 수배학생들의 수배 해제와 성금 마련을 위해 천막을 치고 카네이션을 팔고있는 여학생들 앞을 지나가면서 나는 또 한번 마음이 숙연해 진다.
사회적 실천을 자주 잊고 사는 내게 그들은 실천하는 스승으로 보였다. 맞아 저 학생들이 내 삶의 스승이야 하고 나는 혼자 되뇌인다. 그리고, 오랜 시간 자라고 자라 나무처럼 커져버린 도서관 앞길의 철쭉과 그 철쭉꽃을 보면서, 나는 내가 봉직하게된 단국대학의 역사를 생각한다. 이 철쭉 앞을 지나쳤을 수많은 단국대학의 선배 학생들을 떠올리며 그 역사와 시간의 무게를 느낀다. 맞아 이 학교가 얼마나 오래된 학교인데.
그뿐인가. 지난 4월 어느 날 문학관 뒷 숲 벤치에서 Quiet time을 가지며 기도하던 학생을 발견하고 마음이 저리어 온 적도 있다. 아주 옛날, 가진 것 없이 무조건 순수하기만 했던 대학 시절의 내 모습을 떠올리며. 그 잊고 살던 내 모습을 떠올리며. 그리고 그 학생이 내 연구실 문 앞에 두 개의 복음 테이프를 놓고 가던 일에 감격해 한 적도 있다. 또 있다. 어느 날 우연히 단국대학 신문을 읽다 내가 <컴퓨터 취재 보도론>을 가르치고 있는 대학신문의 길지혜 기자가 쓴 <휴먼스토리> 기사를 읽고 또 나는 감동을 받는다. 지혜가 어쩌면 그렇게 글을 잘 쓸 수 있는가 하고, 과연 지혜가 내가 가르치는 학생이 맞는가 하고 나는 스스로 되물어 보곤 했다.
내친 김에 하나 더 적어보기로 하자. 단국대학교에서 학교 생활을 시작하면서,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난 2월, 50여명의 신임 교수님들을 맏형처럼 따뜻하게 맞아주시던 서울 교무처장님의 배려와 친절함이었다. 또한 연구실을 배정 받은 이후 사소한 일들을 자상하게 안내해 주시던 문학관 수위실 근무자 분들의 겸손함이었다. 교수님들마다 학교를 평가하는 기준은 다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이분들을 통해서 단국대학교가 친절함과 겸손함을 갖춘 대학이라는 좋은 인상을 얻을 수가 있었다.
오래 살았어도, 살면서 점점 얼굴은 근엄하게 굳어져가고 있어도 마음이 여린 것은 펴지지가 않는 모양이다. 예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으니 말이다. 주절주절 지난 2개월 동안 내가 받은 몇 가지 감동의 편린을 적어보는 것은 새 학교에서 모든 것들이 내게 큰 기쁨으로 다가서고 있기 때문이다.
그 옛날, 아주 먼 옛날, 예수가 자기를 따르는 12 제자들의 발을 씻기어 주며 낮아 지셨듯이, 이제 내가 할 일은 긴 호흡으로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의 발을 겸손함으로 낮아짐으로 씻기는 일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단국대학교에서의 선생으로서의 이와 같은 초심이 나 스스로 변치 않기를 바라면서, 실천을 강요하는 마음으로 <백묵처방>에 초임의 변을 몇자 격의 없이 적어보았다.

정재철
<사회과학대학/언론영상학부/언론홍보학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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