⑩ ‘한국의 기업’과 ‘필산 황명수(1933~2006)’
⑩ ‘한국의 기업’과 ‘필산 황명수(1933~2006)’
  • 서문석(경제) 교수
  • 승인 2008.12.02 12:03
  • 호수 12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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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이 G20의 일원으로 참여하면서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날로 커지고 있다. 1945년 해방 직후 최빈국 수준의 경제 상황을 되돌아본다면 기적적인 일이다. 경제발전의 기획은 국민들의 엄청난 노력과 효율적인 리더의 결합으로 그 결실을 볼 수 있었다.

국민들은 자신의 가정과 여가를 생각할 여유는 고사하고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도 채우지 못한 채 일에 매달렸다. ‘잘 살아보자’는 일종의 집단최면과도 같은 상태에 빠져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기업들은 정부의 지원과 기업가들의 열정 속에서 외형을 늘려나갔고 세계적인 기업들로 성장했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도 없는 상태에서 기본적인 생존권까지 위협 받을 정도의 노동을 감내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도 국내기업이라는 이유로 상대적으로 비싸더라도 이들 회사의 제품을 구매해 줄 정도로 철저하게 애국심을 발휘해 왔다.

하지만 이런 ‘대도약의 시대’는 막을 내렸다. 마치 최면에서 깨어나듯이. 노동자들은 ‘가족(家族)’이라고 불려왔던 자신들이 단지 일을 시키기 위해 짐승처럼 사육당한 ‘가축(家畜)’에 불과했다고 주장했다. 기업가들도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에서 임금을 받으며 그동안 고분고분했던 노동자들이 반발하자 충격과 분노에 휩싸이기 시작하였다.

그나마 이 관계를 조정해왔던 국가마저 정치적인 논리 속에서 조정능력을 상실했다. 한국자본주의의 발전이 이제 새로운 단계에 진입해 있는 것이다.

이런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서구에서는 한국보다 이미 100여년 전에 이런 문제에 직면했었다. 근대경제학의 초석을 놓은 영국의 마샬(A. Marshall)은 기업가들이 ‘기사도정신(騎士道精神)’을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현대 경영학의 기반을 닦은 미국의 슘페터(J. Schumpeter)는 기업가들이 혁신을 통해 이 어려움을 극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국에서도 이미 1970년대 초부터 기업과 기업가의 사회적 역할론을 제기하면서 모범적인 기업이나 기업가의 전형을 찾아내고 이들로부터 배워야 올바른 발전이 가능하다는 주장을 제기한 학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단국대학교 경제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필산 황명수(筆山 黃明水)’ 교수이다. 그는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새로운 이윤의 창출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이를 위해서는 이윤 창출의 주체인 기업과 기업가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본격적으로 학술적 연구를 진행한 결과 그는 한국에서 ‘기업사(企業史)’, ‘기업가사(企業家史)’라는 분야를 학술적으로 정립하고 학회활동 등을 통해 이 분야 연구자들을 이끌었다. 그가 제기했던 대표적인 사례들 중의 하나는 ‘유한양행(柳韓洋行)’과 ‘유일한(柳一韓)’에 대한 연구였다.

충실한 납세를 통한 사회 기여와 가족세습을 부정하며 기업의 공공성을 강조했던 이 회사의 사례는 천민자본주의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던 한국 자본주의에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것은 당시까지 그저 ‘수완이 좋은 사람들’ 정도로 여겨졌던 기업가에 대한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제 새로운 단계에 들어선 한국자본주의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는 기업과 기업가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인식과 노사 상호간의 신뢰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렇게 인식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는 기업과 기업가가 먼저 있어야 한다는 것 또한 자명한 일이다.

서문석(경제) 교수
서문석(경제)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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