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재판소] ①살인의 흔적
[생활 재판소] ①살인의 흔적
  • 최호진(법학과) 교수
  • 승인 2009.03.03 23:03
  • 호수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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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

1990년 10월 어느 날 한 여인의 사체가 맨해튼 중심가에 있는 호텔사이의 골목 쓰레기통에서 강간을 당한 채 발견되었다. 그녀의 차는 현장에서 약 46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되었는데, 차안에서 격렬히 저항하다가 결국 살해되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경찰은 이 사건이외에도 이전에 일어났던 두 개의 강간사건과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것도 밝혀냈지만, 문제는 증거확보였다. 법의학전문가들은 살해현장에서 수거한 엄청난 양의 쓰레기더미 속에서 콧물이 묻은 구겨진 종이손수건을 찾아냈다.

이것이 바로 사건해결의 출발이었다. ‘모든 범죄는 흔적을 남긴다’는 말은 20세기 초 프랑스의 범죄학자 에드몽 로카르 박사가 한 말이다. 그는 범죄현장조사에 관한 기본원칙은 확립하였다. 즉 범죄를 저지른 사람은 범죄현장에 반드시 단서를 남기게 마련이며, 또 현장에 있던 어떤 것을 지니고 돌아간다는 것이다.

법의학자들은 단 한 올의 머리카락, 단 한 방울의 혈액만으로도 범행과 관련된 수많은 사실을 밝혀낸다. 때로는 이 작은 단서 하나가 사건을 해결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한다. 범죄현장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단서는 바로 지문과 혈액이다.

지문을 채취하고 활용하는 방법은 과학수사에 있어서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다. 현장에서 채취된 혈액성분이나 핏자국 등은 사건에 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지만,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은 바로 DNA이다. 1984년부터 DNA지문 감식법은 그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가장 확실한 신원확인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DNA분석은 범죄수사뿐만 아니라 신원 및 친자확인, 미아 찾기 뿐만 아니라 선사시대 동물의 진화연구에서도 매우 중요한 기술로 활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97년 괌의 항공기추락사건과 대구지하철방화사건등에서 사망자들의 신원을 DNA를 통해 확인한 적이 있었다. 1998년 이후 미국에서는 지역검사와 주 정부 검사, 연방검사가 지문 자료와 마찬가지로 유전자와 관련된 자료를 축적해오고 있다.

유죄판결을 받은 범죄자들의 DNA자료를 축적해놓으면 어떤 사건이 발생했을 때 DNA 분석법을 사용해서 보다 쉽게 사건을 해결할 수 있다. 대부분의 주 정부는 성관련 범죄자들에 대한 DNA정보를 수집하지만, 살인이나 강도, 절도범죄를 저지른 사람에 대해서는 주마다 입장이 다르다. 화이트칼라범죄자에 대해서는 DNA정보를 수집하지 않는다.

미국 법무부에 따르면 3년에 걸쳐 17개주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 중 193명이 범죄현장에서 채취한 DNA와 일치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0년 유전자감식기법이 보편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유전자 분석과에서 이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유전자분석과는 DNA분석을 통해 범죄현장에서 범인을 식별하는 일을 하며, 변사자, 미아, 친자 및 가족확인 등 신원을 확인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유전자 감식뿐만 아니라 감정처리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방법의 객관성과 과정의 투명성이다.

즉 전문가뿐만 아니라 어떤 누가 보아도 감정처리과정이 타당하고 수사과정이 투명해야 한다. 2004년 우리나라에서도 강력범죄자들을 중심으로 DNA를 채취, 데이터베이스화하여 관리, 운영하고 있는 유전자정보은행을 설치하였으며, 2006년에는 '유전자 감식 정보의 수집 및 관리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에까지 올라갔지만 인권침해, 정보 유출 등의 우려로 폐기됐다. 이런 가운데 최근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유전자 DB 구축의 필요성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최호진(법학과) 교수
최호진(법학과) 교수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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