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쟈’의 영국 찍고 아프리카로! ⑧
‘허쟈’의 영국 찍고 아프리카로! ⑧
  • 허지희(문예창작·4) 양
  • 승인 2009.03.03 15:14
  • 호수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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⑧ 저 이제 공부도 좀 합니다!

▲굿바이 파티 중 눈가가 촉촉히 젖은 3월팀 일본인 친구 마사꼬(우측)과 나.
“와아아!!” 팀원들 모두가 흥분으로 들떠 있었다. 짓궂은 영국 날씨 속에서의 두 달간 가이아 생활이 드디어 끝났다. 그간 힘들고 즐거운 시간을 함께한 것에 대한 고마움의 표시랄까.


우린 서로의 어깨를 다독였고, 브라질 친구는 삼바를 추며 다가와 내 볼에 키스세례를 퍼부었다. 아프리카에 가기 전까지 우린 DI(Development Instructor)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6개월을 마주해야 했다.


08년 11월 팀에 속해있는 나는 그간의 DI생활을 마치고 아프리카로 떠나는 5월 팀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몇 가지 작은 이벤트가 어우러진 굿바이 파티에선 떠나는 친구들을 위해 우리가 만든 재미있는 성적표를 건네기도 했다. 가령 오지랖이 넓은 폴란드 친구 마첵에겐 ‘다른 팀 클래스 룸에서 머문 점수 99999점!’이라 적힌 수료증을 수여했다.


3월 팀의 사고뭉치로 유명했던 한 브라질 친구는 떠나기 전 날, 한층 성숙해있었다. 그는 우리에게 “Don't give up"을 속삭이며 악수를 건넸다. 파티 중간 중간 눈물을 글썽이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잠시뿐이었다. 우린 끝내 웃었고 친구들이 정식 수료증을 받을 때 살며시 감동이란 녀석과도 마주했다. ‘나도 6개월 후 저들처럼 자랑스레 수료증을 손에 쥘 수 있을까’라는 물음표와 함께.


다음 날, 친구들이 떠났다. 그들이 쓰던 교실과 방은 우리 팀 몫이 됐다. 대규모의 클리닝과 함께 시작된 DI 생활, 가이아 시절 내일 떠날 것처럼 캐리어에 옷을 보관하던 습관과도 안녕하게 됐다. 다른 한국 친구와 방을 공유하게 됐고, 우린 공들여 방을 정리하고 꾸몄다. 교실에선 널찍한 개인책상을 배정받았고, 각자 공부할 수 있게 학교에서 개발한 DMM 프로그램을 컴퓨터에 다운받아 DI 생활을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나도 6개월 후 저들처럼 자랑스레 수료증을 손에 쥘 수 있을까”


DI는 아프리카에 가기 전까지 일정한 스터디 포인트를 따야 하고 우리의 트레이닝을 보조할 금액도 모아야 한다. 학생들이 직접 만든 아프리카 잡지를 길에서 팔아 3200파운드를 벌어야 하는데 이런 포인트제가 DI들에게 적지 않게 부담을 주기 때문에, 우린 또 하나의 넘어야 할 산을 앞에 두고 있었다. 허나 다행인 것인 우리 팀 모두가 웃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린 처음으로 에이즈와 관련해 공부하는 스터디주도 맞이했다. 에이즈 관련한 TCE 프로젝트로 아프리카에 머물렀던 중국인 친구가 우리 스터디를 도왔고, 이는 꽤나 살아있는 스터디였다. 우린 함께 에이즈 관련 퀴즈를 푸는 시간도 가졌고, 한 친구는 얼굴이 벌게져 콘돔 사용법을 몸짓으로 표현하는 미션을 수행하기도 했다.


내게 주어진 미션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앞에 있다는 가정 하에 두 명의 친구와 함께 HIV 테스트의 장점을 어필하기 위한 작은 연극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내가 짠 시나리오엔 세 명의 아낙네가 등장했고 HIV 양성을 의심하는 임신한 여인 역할은 장난스런 일본 친구가 맡았다.

심플한 스토리였지만 메시지가 잘 전달돼 선생님으로부터 OK사인을 받았다. 이런 치열한 스터디 틈에서 나는 문득 낯선 기운을 감지했다. 가이아의 생활리듬을 벗고 DI란 이름으로 제법 어색하지 않게 서 있는 나를, 그리고 이 이방인 역할은 대본 없이도 곧 자연스레 몸에 배일 꽤 멋진 캐릭터라는 것도.

▲DI가 되어 에이즈 관련 주제로 우리팀의 한 그룹이 역할극 중인 모습.

허지희(문예창작·4) 양
허지희(문예창작·4) 양

 winkha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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