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적 상황이 준 성장이라는 선물
모순적 상황이 준 성장이라는 선물
  • 박준범 기자
  • 승인 2009.08.12 17:19
  • 호수 12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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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명의 봉사단이 경험한 7박 9일의 성장 기록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듯 아무리 변하려고 다짐하고 노력해도 변하기 힘든 것이 사람이다. 하지만 낯선 곳의 새로운 경험이 변화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여행을 떠나 일상과 다른 경험을 찾곤 한다. ‘왜 저런 고생을 사서 할까’라는 우문의 현답이다.

여름방학을 이용해 캄보디아와 몽골, 그리고 백두산이라는 낯선 장소에서 새로운 자아를 찾기 위해 봉사활동과 문화탐방을 경험한 단국인들이 있다. <단대신문>이 이들의 변화와 성장 과정을 지면에 담았다.  
   <편집자 주>

#1. ‘해외’봉사의 유혹
“해외봉사활동이라는 ‘이름’에 끌려서 여기까지 오게 됐는데, 와서 보니 많은 반성과 생각을 하게 됩니다.” 김동일(전통놀이 B조)

전통놀이 팀에서 봉사활동을 펼친 김동일(행정·4) 군의 말처럼 ‘해외봉사활동’의 이름은 묘한 매력을 갖고 있다. 비록 7박9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해외 문화를 체험 할 수 있으며 ‘봉사활동’이라는 이력도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어쩌면, ‘봉사’라는 단어보다는 ‘해외’라는 말에 끌려 봉사단에 참여한 단원들이 많았을지도 모른다. 해외봉사활동이라는 9일간의 매력적인 경험을 하기 위해서 말이다.

실제로 봉사단 인원이 확정된 직후부터 봉사활동을 준비했던 한 달 남짓한 기간 동안 각 팀이 보였던 낮은 참여도는 대학 집행부와 우리 대학을 도왔던 GPM(Global Peace Maker: 국제봉사지원단체)의 우려를 사기도 했다. 그리고 이런 우려는 봉사단의 ‘계기’를 만들기 위해 준비했던 1박2일 간의 MT에도 그대로 드러났다. 당일 MT 참여율은 64%(총 인원 90중 58명 참여). “원래 도입하려고 했던 ‘탈락 제도’를 시행하지 않은 것이 약간은 후회가 되기도 한다”라는 김경민(무역·4) 학생회장의 말에서 답답함이 묻어났다.

‘간신히 비행기 탔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의 어수선한 출국 수속을 뒤로 하고 도착한 캄보디아의 첫 아침 조회 분위기 역시 ‘봉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집행부가 지정한) 룸메이트를 임의로 바꾼 사람들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집행부에서 배정한 방으로 원위치 하시기 바랍니다.”

새벽 6시 40분, 이른 아침부터 찌는 더위 속에 출근하는 캄보디아 사람들을 배경으로 짜증 섞인 학생회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2. 첫 번째 고민-‘받으며 주다’
“‘봉사활동을 통해 이 아이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생각한 내 자신의 오만을 느낍니다. 오히려 지금 이 아이들의 행복한 표정을 보며 스스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데 말이죠.”  김정아(전통놀이 A조)

일상 속에서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을 경험하는 일은 흔치 않다. 더욱이 말이 전혀 통하지 않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일은 평범한 대학생이 경험하기 힘든 일이다. 이런 낯선 경험을 하며 봉사단원들 각자는 ‘가르치는 것’의 고민을 시작한다.

봉사활동 첫 날, 봉사단은 1000명 정도의 학생들이 교대로 오전/오후 수업을 듣는다는 프레닿 초등학교(PREAHDAK PRIMARY SCHOOL)와 학생 수 300명 규모의 프레이짜(PREY PRIMARY SCHOOL) 초등학교를 찾았다. 신발이 없어 대부분 맨 발로 다니는 아이들의 열악한 환경과 형광등이 없어 대낮에도 깜깜한 교실을 접한 봉사단의 마음이 무거워진다.

‘도와줘야겠다’는 의무감과 동정심을 앞세운 교육봉사가 시작된다. “영어특기자로 봉사단에 뽑혔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영어를 최대한 알려주고 싶었다”며 가르치는 것의 자신감과 의욕을 보였던 박신성(영어영문·4) 군 역시 그 중의 한 명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전통놀이와 태권도, 음악, 그리고 미술 프로그램을 ‘가르치겠다’던 봉사단의 교육 목표가 수정됐다. 봉사단은 준비한 교육 프로그램들을 이용해 아이들과 ‘놀이’를 시작한 것이다. 태권도 팀과 전통놀이 팀은 프레닿 초등학교의 교정을, 음악 팀과 미술 팀은 교실을 아이들의 웃음으로 채워 놓았다. “처음에는 애들이 잘 할 수 있을까, 여기서 3일간 배운 태권도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며 회의를 품었다는 태권도 팀의 배성민(경영·4) 군도 “단순한 동작이지만 아이들이 따라하며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며,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고 말했다.

김정아(영어영문·4) 양의 말처럼 ‘나는 충분히 준비했고, 도와주러 왔다’는 자신감은 오히려 오만일 수 있다. 타인이 ‘나’를 받아들여야 진심이 전달될 수 있음을 낯선 경험을 통해 터득한 봉사단은, ‘가르치는 교육봉사’가 아닌 ‘나누는 교육’을 시작한다. “교육이란 커뮤니케이션인데 이 부분 때문에 오늘 첫 교육이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힘들었던 것만큼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얻었을 것이다.”라는 심상신(체교) 학생지원처장의 위로가 봉사단의 첫째 날 교육 평가를 대신했다.

#3. 두 번째 고민-‘냉정하게 사랑하다’
“주의해야 할 것이 있다. 아이들에게 정을 주지 말았으면 한다. 수업 끝나고 쉬는 시간에 아이들과 섞여 놀거나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또한 점심시간 역시 아이들과 어울리기보다는 팀별로 더 좋은 교육을 위한 토론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다.”

둘째 날 아침 조회시간. 심상신 학생지원처장이 봉사단원들에게 당부했다. ‘봉사활동 와서 정을 주지 말라니, 무슨 뜻일까?’ 가르치는 것의 고민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봉사단에게 새로운 숙제가 생겼다. “정을 붙이지 않고 봉사활동 하는 것이 가능한가 싶고, 만약 그렇게 한다면 봉사활동이 아닌 단순 노동을 하러 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싫다”며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잘 이해되지 않는다”(유연이·경영·2)는 반응을 보이는 단원들도 있었다.

아침부터 봉사단을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은, 하지만 이미 새로 만난 한국 선생님들에게 정을 붙인 모습이다. 전날 전통놀이 시간에 받은 빨강 허리끈을 다시 메고 등교한 아이들이 “안녕하세요”를 외치며 봉사자들을 맞아 준다.

교육이 진행되고 날이 갈수록 고민이 깊어진다. 이름을 부르고, 얼굴을 외우고, 때로는 살갑게 안아주기도 하는 사이가 되며 ‘맘껏 정을 주고 싶다’는 감정을 갖게 된다. “아이들이 오솔길을 따라 줄을 서서 박수를 치며 우리를 맞아줬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인상 깊었던 추억을 꼽았던 김상일(행정·4) 군도 그렇게 넘치는 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봉사단 중 하나였다.

“2년 전에 네팔로 1기 해외봉사단을 인솔해서 갔을 때는 그곳 아이들을 정말 많이 안아줬었는데, 지금은 그렇게 못 하겠어.”
프레이짜 학교에서 봉사단을 인솔하던 강동헌 선생이 네팔 해외봉사활동에서의 추억을 떠올렸다. 그렇게 안아주고 스킨십 하는 행동들이 오히려 이 아이들에게 상처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도 얼마 전의 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봉사단이 이곳을 떠난 뒤에도 한동안 아침마다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예쁘다며 아이들을 안아주는 행동도 쉽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 ‘마음껏 정을 줄 수 없다’는 이유였다.
▲ "네 꿈과 함께 하늘 높이 날아올라라!" 아이들을 유난히 예뻐했던 학생과 강동헌 선생. 강 선생은 "아이들을 많이 안아주고 싶은데, 우리가 귀국한 뒤 봉사단을 기다릴지 모를 아이들을 생각하면 선뜻 안기 힘들다"며 조심스러워했다.

귀국할 날이 다가올수록 봉사단원들의 마음속에 ‘봉사의 기술’에 대한 고민이 자리잡는다. 배종훈(경영·4) 군이 “우리가 캄보디아 아이들과 정이 들었다고 해서 지속적으로 머무를 수는 없다는 ‘현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고 말한 것처럼, 실제로 봉사단이 이곳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얼마 없다는 냉정한 현실을 깨닫는다.

사랑이 머무는 곳이 ‘냉정과 열정 사이’인 것처럼, 봉사활동 역시 ‘냉정과 열정 사이’라는 균형을 유지해야 함을 알아간다. 더 뜨겁게, 그리고 더 오랫동안 사랑하고 봉사하기 위한 지혜가 ‘정을 주지 않음(냉정함)’에 있다는 모순을, 해외봉사활동이라는 낯선 경험을 통해 체득한다.

#4. 세 번째 고민- ‘그리움으로 이별하다’
“미련을 간직하고 돌아가야 그리움도 남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움이 남아야 나중에 다시 봉사활동을 오게 되는 원동력이 됩니다. 이곳 아이들과 좋은 추억을 남기는 것도 좋지만, 가장 바람직한 것은 나중이라도 다시 그리운 마음으로 캄보디아를 찾아와 다시 한 번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김윤중 GPM 프로젝트 매니저

귀국 전날 밤. 봉사활동 경험이 풍부한 GPM 김윤중 매니저가 어떻게 이별해야 할 지 고민에 빠진 봉사단에 조언을 했다. “지속적으로 연락을 주고받는 봉사단원들의 숫자는 1~2명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봉사단에서 그런 인원들이 10%가 넘는다면 우리는 ‘성공한 봉사’라고 부르기도 할 정도이다”라는 김진규 GPM 단장의 말도 이어졌다.

아쉬움과 그리움은 봉사단만의 감정은 아니었다. “태권도 수업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연습을 더 해서 태권도를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 한 마이몬마(프레닿 초등학교·6) 군은 봉사단과의 짧은 만남으로 인생의 꿈을 갖게 됐다.

▲ "언니 오빠들 잊지 못할 거에요."봉사활동 마지막 날. 2Kg의 쌀과 노트 등의 구호품을 전달 받은 프레닿 초등학교 학생들이 봉사단과 포옹하고 있다.

특히 이 학교의 콩(Kong Thaourm·54세) 교장은 “평소보다 학교에 많이 나오는 아이들을 보며 뿌듯하고 봉사단 여러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며 “늘 행운이 가득하고, 이런 행운이 단국대와 함께 하기를 바란다. 마지막으로 단국대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5. 모순의 유혹
앞에서도 말했듯, ‘해외’와 ‘봉사활동’이라는 단어는 모순적이다. 어쩌면 90명의 사람들이 함께 하기에는 봉사활동의 순수한 취지가 퇴색 될 가능성도 있어, 조금은 ‘봉사’라는 목표가 흔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모순적 가치는 고민과 성장을 요구했다. 주기 위해 먼저 받아야 한다는 모순과 사랑하기 위해 냉정하라는 모순, 그리고 이별하면서도 그리움이 필요하다는 모순적 경험이 봉사단을 고민에 빠트리고 성장시켰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데, 짧았던 9일간의 봉사활동 기간이 ‘나’를 얼마나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었을까? 봉사활동 중 변화한 봉사단의 모습을 소개하며 ‘제 3기 해외봉사활동 취재기’를 마무리 한다.


"태권도 팀 C조 화이팅!"

[봉사활동을 마치며, 변화한 ‘나’]

전역하고 3년 정도 휴학하며 행정고시 공부에 매달렸었다. ‘행정고시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집착을 했었는데, 이곳에 와서 ‘내 욕심이, 내가 생각하는 세상이 전부가 아니구나’라는 겸손함을 배우고 있다.   김상일(행정·4) 군

학교나 학군단 생활을 할 땐 나 자신을 피곤하게 만들 정도로 틀에 박힌 규정에 맞춰 살려고 했었는데 이제는 생각이 많이 유연해졌다. 미리 정해진 대로만 진행할 수 없다는 것도 알게 됐고, 꼭 그렇게 계획대로 하는 것만이 최선은 아닌 것이라는 것을 몸으로 익히고 있다.  유용도(화공·4)

사소한 것에, 서로 웃는 모습에 행복해 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워간다. 우리나라가 이런 행복을 위해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노력을 했을 텐데, 이제는 그런 행복을 잃어버린 우리의 모습에서 모순을 발견한다.   김현성(행정·3)

나름대로 철저한 준비를 해 왔다고 생각했는데, 준비가 부족했음을 절실히 느낀다. 현지에 와서 시행착오를 겪으며 ‘한국에 다시 돌아가서 준비를 더 해오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크메르어를 조금 더 공부하고, 아이들에게 직접 “꿈이 뭐니”라는 말을 직접 하고 싶다. 이번 기회가 아니더라도 다음에 이런 봉사활동을 가게 된다면 그들과 더 쉽게 교감할 수 있도록 철저히 준비해서 가겠다.  조혜련(일어일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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