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3대 5일장 성남 모란민속시장을 가다
■ 국내 3대 5일장 성남 모란민속시장을 가다
  • 김유진 기자
  • 승인 2010.03.16 21:41
  • 호수 126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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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끈한 칼국수, 속 가득 찬 만두, 마음도 가득

▲시장은 오전부터 사람들이 북적거린다.
 

재래시장은 푸근함이다. 금방이라도 시골 할머니가 나와 ‘아이구 내 새끼’하며 국수 한 사발을 뚝딱 말아 줄 듯한. 유년의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장소. 뿐만 아니라 시장 한복판의 요란스런 부산함은 마음을 들뜨게 한다.

모란 5일장은 전북 익산장, 동해 북평장과 함께 국내 3대 5일장에 속한다. 모란장이 처음 생긴 건 1962년경이다. 모란지역은 원래 1950년대 말까진 황무지였지만 개간 사업이 시작되면서 마을이 형성되고 마을에 터를 잡고 사는 사람들이 늘었다. 인구가 늘어나면서 주민들의 생필품 조달 및 구입이 문제되었는데 그 해결책으로 개설된 것이 모란 5일장이다. 모란장은 70년대와 80년대 사이에 성남대로 중심으로 넓게 형성되었지만 이런 위치조건은 위생문제, 교통 혼잡 등 문제를 불러 일으켜 모란장 폐지가 제기되기도 했다. 결국 상인들의 반대로 폐지를 면하고 현재의 위치인 성남동 대원천 하류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대원천 하류에 90년대 당시 장날에 출입하던 상인들과 성남지역 상인들을 대상으로 위치를 배정하면서 완전히 자리 잡게 되었다.

모란장은 일반적으로 ‘모란장’ 혹은 ‘모란5일장’이라 부르는데 공식적인 명칭은 ‘모란민속시장’이다. 장은 5일에 한번씩 4와 9가 들어간 날짜(4일, 9일, 14일, 19일, 24일, 29일)에 열린다. 모란장을 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모란역 5번 출구로 나가 200m정도 직진하다 보면 입구랄 것도 없이 매대가 진을 치고 있어 복작복작하다. 이렇듯 교통이 편리해 장이 서는 날이면 1만여 명이 몰릴 정도로 성황을 이룬다.

▲ 안녕?

장터 입구의 첫 번째 골목은 건강원들이 늘어서 있는데 흑염소, 개, 고양이, 닭, 오리, 오골계, 꿩 등 여러 동물이 우리 안에 있는 모습은 동물원을 방불케 한다. 흑염소나 개는 크기가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다양한데 크기가 큰 것들은 암사자만큼 큰 것도 있다. 건강원을 지나면 머릿고기나 내장고기를 파는 국밥집이 늘어서 있는데 계속 걸어가면 안쪽에 다시 개시장과 동물시장이 늘어서 골목을 걷는 내내 누린내가 난다. 원래 모란시장은 개시장으로도 유명해서 식용 뿐 아니라 애완용 강아지나 고양이도 파는데 종자에 따라 5만원에서 18만 원 정도까지 간다. 강아지들을 보며 여자 친구와 데이트를 즐기던 박민(26) 군은 “재래시장에서 데이트는 처음인데 여자 친구가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며 즐거워해 기분이 좋다”며 “시끌벅적해서 활기찬 기분이 든다”며 미소 지었다.

▲재래시장의 재미는 흥정.

시장 중심엔 잡곡이나 나물을 손질해 파는 할머니들이 많다. 양 손 가득 검은 봉지를 들고 장을 보던 김순자(56) 씨는 “약재나 화초가 싱싱하고 좋은 것이 많아 장이 열릴 때마다 찾는데 나물이나 잡곡도 대량으로 사기 좋고 마트보다 싱싱하다”고 말했다.

▲모란시장의 명물‘깜찍이예술단’의 공연.

그렇게 시장을 구경하며 가장 왼쪽에 있는 골목에 들어가면 모란장터 최고 명물로 꼽히는 품바공연이 나온다. 장사꾼들이 우스꽝스러운 복장을 하고 뽕짝에 맞춰 신명나게 북을 치는데 할아버지, 할머니, 아줌마, 아저씨 할 것 없이 인기 만점이다. 눈짐작으로도 백 명도 넘는 관람객로 공연장 주변엔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렇게 공연이 한번 끝나면 입담을 늘어놓으면서 엿을 판다. 장사꾼이 관객 속을 헤집고 다니면서 “엿 한 봉지 사주면 집안 절단나냐~”며 농을 치면 관객무리에서 누군가 “절단나지, 이놈아”하고 맞받아치는데 함께 즐기는 모습이 푸근하다. 공연을 보다 만난 김영록(59) 씨는 모란장 마니아다. “장에 오면 고향에 온 것 같아. 장에 있는 사람들이 다 고향 사람들 같고 마음이 편해져. 또 이런 공연들 보면 재미있잖아. 내가 여러 장을 많이 다녀봤는데 모란장만큼 크게 열리는 장은 거의 없지.” 이야기하는 모습에서 모란장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

품바공연을 지나면 곳곳에 행상들이 눈에 띈다. “아주머니! 이거 붙이면 돌아가실 때까지 안 아파, 일단 붙여봐. 붙이는 건 공짜. 내가 아주머니는 한 달 분 서비스로 더 줄게.” 조그만 지압 스티커를 붙이니 잘 올라가지 않던 아주머니의 다리가 번쩍 올라간다. 왠지 나도 사야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거 쑥스러운데…”부끄러워 하시는 국화빵 장사 아저씨.

구경도 좋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고 시장구경은 뭐니 뭐니 해도 먹을거리 구경이다. 사실 여느 시장이 그렇듯 모란장도 고개 돌리는 곳마다 먹을 것 천지다. 팥 칼국수, 호박죽, 칼국수, 만두, 옛날과자, 도넛 등 식사부터 주전부리까지 다양하다. 가격도 저렴해서 팔뚝만한 옥수수 빵이 천오백 원이고 엿은 한 봉지에 이천 원, 생선도 한 바구니에 오천 원이다. 막창이나 내장 등을 철판에 볶아 자유롭게 먹을 수 있게 돼있는 가게도 있는데 이곳은 술값만 내면 고기는 공짜란다. 특히 모란장 만두는 유명해서 만두파동이 일었을 때도 없어서 못 팔정도였다고 하니 말 다했다. 장터를 돌아다니면서 시식으로 내놓은 곶감이나 생과자를 집어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뻥튀기를 만들기 전 기계를 점검하고 있다.

가장 왼쪽 골목에는 술안주 겸 먹는 음식들이 많다. 웬만한 ‘깡촌’에서 살지 않았으면 먹어보지 못했을 메추리구이나 별미로만 먹던 빙어튀김도 여기선 흔하다. 자글자글 익는 돼지껍데기 냄새에 허기가 느껴진다. 칼국수와 허파볶음으로 배를 채우고 시장을 한 바퀴 도는데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는 집이 있어 가보니 뻥을 튀기는 곳이다. 뻥튀기는 겨울에 가장 많이 튀기는데 특히 구정 이후에 남는 떡을 처리하려는 사람들로 많이 붐빈다고 한다. “저 깡통 하나를 튀기면 저 봉다리 한 가득이야. 백 원이 오백 원 되는 거지. 저거 튀기면 손주네 주고 나도 먹고 겨울간식으로 그만이지”라며 웃는 할머니의 목소리에서 자식을 생각하는 따뜻함이 느껴진다.

그런데 시장을 반나절도 넘게 걸어 다녀도 젊은 사람들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부모를 따라온 아이나 젊은 사람도 간간히 눈에 띄긴 하지만 대부분의 이용자는 50~60대 사람들이다. “젊은 사람들은 시장에 많이 없지. 요즘엔 젊은이 몇몇이서 모여서 카메라 들고 놀러오긴 하는 거 같은데 그래도 평소 찾아오는 사람은 적어.” 사진을 찍으러 모란장을 자주 찾는 박진구(58) 씨의 말이다. 젊은 주부들은 대부분 대형마트를 이용한다. 겨울에도 춥지 않고 짐 이동이나 다양한 상품이 있어 편리하다는 이유에서다. 재래시장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사실 길바닥 모란장은 2012년이면 볼 수 없다. ‘성남여수지구 국민임대주택단지 택지개발계획’에 따라 모란민속 5일장을 이전하기 때문이다. 진행될 이전사업은 시장 명품화란 명칭으로 첨단 복합문화공간으로 시장을 바꾸는데 상인들의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위치를 옮기게 되면 자리 잡는 것만 몇 년이 걸려요. 이 동네에서 편해지니 이사 준비를 하는 거니까 힘들긴 하겠죠.” 음식을 퍼주던 아주머니의 말에 생각이 깊어진다. 시대에 맞춰 재래시장의 모습이 변화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그 변화가 시장 고유의 분위기까지 변하게 한다면 재래시장의 의미가 퇴색되는 것은 아닐까.

 재래시장은 물건을 파는 곳이기도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추억을 되새기는 곳이고 어떤 이에겐 고향이 되기도 하는 장소이니 말이다. 조금은 불편하고 난잡한 그래서 더 정겨운, 그런 시장의 모습이 과연 계속될 수 있을까. 5일에 한번, 하루 동안 북적이다가도 다음날이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5일장처럼 재래시장의 모습도 그렇게 사라져버리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시장을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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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j9014@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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