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갑의 시사터치
조영갑의 시사터치
  • 조영갑
  • 승인 2010.03.18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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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은 어울림이다

무상 급식은 어울림이다

월말이 되면 항상 불안했다. 교실 뒤 게시판에 공문이라도 하나 붙을라치면, 내 가슴은 두방망이질 치곤했다. 고등학교 시절, 집안이 힘들었던 나는 ‘악질적 체납자’였다. 사사분기로 나눠서 납부했던 수업료는 차치하고, 급식비도 제때에 내 본 적이 없었다. 항상 시한을 넘기는 통에 내 이름은 사시사철 게시판에 올라있었다. 특히, 급식비 미납은 참기 힘든 고통이었다. 위탁 급식업체 사장은 항상 식당의 관문에 있었다. 자리를 지키고 아이들의 식권을 받는 그는 ‘염라대왕’이었다. 나는 염라대왕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나는 졸업할 때까지 송구스러운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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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끼’가 문제다. 무상급식 논쟁이다. 헌법 제 31조 3항과 교육기본법 8조 2항에 명시돼 있는 무상교육의 영역에 식사도 포함되느냐를 놓고 말들이 많다. 야당과 시민단체는 “무상교육 안에는 급식까지 포함된다”는 입장이다. 반면, 여당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며, 사회주의적 발상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여유가 있는 학생들까지 지원해 줄 필요는 없다는 주장이다. 맞부딪히는 두 개의 논제는 이미 선거라는 열차에 올라 탄 형국이다. 6.2 지방선거의 뜨거운 쟁점이 된 셈이다. 

일리가 있다. 무상급식을 ‘포퓰리즘, 사회주의’ 라고 평가하는 것은 크게 틀리지 않은 이야기다. 선거용이라는 분석도 억측은 아니다. 공짜밥을 마다할 사람은 아무도 없고, 무상급식이라는 애드벌룬을 띄우면 띄울수록 야당에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반대하는 여당을 ‘부자정당’으로 몰아붙일 수 있고, 4대강 사업, 부자감세 등의 MB표 정책을 줄줄이 지방선거 테이블에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꽃놀이패’다. ‘강을 죽이는 데 22조원이나 쓰면서 아이들 밥 먹이는 데는 그리 인색하느냐’ 라는 공세는 매력적이다. 선거용이고 포퓰리즘의 성격이 다분하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선거판이 포퓰리즘 아닌 적이 있었나. 대선, 총선철이 되면 포퓰리즘의 유령이 전국을 휘감는다. 1992년 정주영의 ‘반값아파트’, 2008년 총선의 ‘뉴타운 경쟁’등이 대표적이다. 이 유령은 유권자를 홀리는 데 효과적일 지 모르나 대개는 유령임이 금세 드러난다. 문제는 포퓰리즘의 질이고 내용이다. 특정 계층만이 환호할 정책은 사회를 분리시킨다. 그러나 모두가 반색하는 정책은 포퓰리즘으로서 상등품이다. 더구나 보편적인 복지라는 대의를 갖춘 정책은 사회주의라고 할지언정 채택할 필요가 있다. 북유럽의 복지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자본주의의 원산인 미국에서도 전체 50%가 무상급식의 혜택을 받고 있다. 영국은 공립학교의 100%가 시행하고 있다.

확실히 하자. 한나라당은 “부자들은 돈 내고 먹게끔 차별하고 싶다”고 다소 전향적(?)인 모습을 보였지만, 이건 빈부의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의 문제다. 한나라당의 발언은 선거 이슈를 선점당한 수세(守勢)의 발언일 뿐이다. 공교육의 가치는 사회 시민이 되는 소양을 체득하는 데 있다. 조화가 바탕이 된 경쟁이 중요하다. 이런 아이들에게 부모의 소득 격차를 나눠 베풀겠다는 것은 좀 가혹하다. 어울림을 가르치기 이전에 계급격차에서 오는 체념을 가르치겠다는 발상이다. 무상급식은 어울림이다. 보편적 복지다. 그리고 보편적 복지는 보수인사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애국심’을 고양하는 데도 유용하다. 내가 졸업을 앞둔 어느 날, 그동안 밀린 급식비가 탕감돼 있는 걸 보고는 행정실에 알아봤다. “학교에서 내줬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느낀, 국가와 나의 ‘최초의 어울림’이었다. 

조영갑(언론홍보 ․ 4)

조영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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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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