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런베이, 호주의 동쪽끝에 서다 <상>
바이런베이, 호주의 동쪽끝에 서다 <상>
  • 박선희 기자
  • 승인 2010.03.23 17:28
  • 호수 1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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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피들이 모여사는 마을 ‘님빈’


 이제는 완전히 혼자다. 항상 혼자만의 여행을 꿈꿔왔지만 아무 준비 없이 홀로 서있는 푸른 새벽 멜번의 길 한가운데서 약간의 긴장감이 느껴졌다. 두려움도 없지 않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설레임에 가까웠다. 브리즈번으로 향하는 제트스타를 타기위해 아침 일찍 백팩에서 나선 나는 24인치의 캐리어, 큰 배낭과 크로스백까지 메고 있었다. 시내에서 50분가량 떨어져 있는 제트스타 전용공항인 아발론에 가는 버스를 타려면 트램을 타고 또 걸어야 했다. 이렇게 짐이 짐스러울 때가 없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지난밤 꿈같던 그레이트오션로드의 오렌지빛 노을과 5주 동안 함께 한 친구들, 짧아서 더 아쉬웠던 멜번을 뒤로한 채 어깨의 짐들은 현실이 되었다. 



 호주가 정말 큰 나라라는 것을 실감할 때는 도시를 이동할 때마다 시차가 난다는 것이다. 동쪽으로 이동할수록 시간을 벌었다. 두 시간을 비행기로 날아 도착했지만 한 시간밖에 안 걸렸으니 말이다. 브리즈번에 내렸지만 내가 가려는 곳은 바이런베이(Byron Bay)였다. 바이런베이는 뉴사우스웨일즈 주의 북쪽, 호주의 최동단에 위치해 있다. 호주를 처음 발견한 캡틴 쿡의 조부이자 영국의 유명한 시인 존 바이런의 이름을 따 이곳은 바이런베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호주를 여행한 사람들이 가장 좋았던 도시로 꼽는다는 하지만 짧게 머무르고 떠난다는 그곳. 이런 것들은 한국에 돌아와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당시 그곳으로 가는 정확한 방법은 이미 5주간 호주에 머물렀음에도 게으름으로 인해 모르는 상태였다. 여유를 부리다보니 날짜는 다가왔고 ‘일단 가보자’하고 떠난 나는 정말 대책 없는 사람이었다. 바이런베이를 추천해준 친구는 근처에 히피들이 모여 사는 님빈(Nimbin)이라는 마을이 있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내가 바이런베이에 가야할 충분한 이유가 되었다.

우리가 타고 간 님빈투어 버스


 사실 나는 일정이 빡빡한 여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여유롭게 한 도시에 며칠간 머물면서 일정이 바뀌면 바뀌는 대로, 마음 내키는 대로 가는 것이 좋다. 하지만 호주는 일찍 예약할수록 가격이 저렴한 시스템이라 돈 없는 학생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할 때가 종종 생겼다. 게다가 항공날짜 예약을 잘못하는 바람에 시드니에 가기 전까지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날이 3일밖에 되지 않았다. 다음날부터 강행군이 시작됐다. 새벽 다섯시 반 출발해 바이런베이행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백팩으로 향한 나는 짐을 방에 내려놓자마자 서둘러 님빈투어를 위한 버스로 달려갔다.

 버스에 올라타 주위를 둘러본 나는 적잖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스물여덟명의 꽤 많은 젊은이들이 버스에 있었는데 그 중 한국인, 아니 동양인은 나 하나뿐이었던 것이다. 호주엔 한국인이 정말 많아서 어디를 가든지 한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고 한국말도 많이 들린다. 하지만 이곳에 도착한 이후론 눈 씻고 찾아봐도 동양인을 볼 수 없었다. 가이드라기엔 어울리지 않게 쿨한 독일인 아저씨는 커다란 버스를 직접 운전했다. 버스는 음악으로 가득했고 에어컨 대신 창문, 심지어 문까지 연채로 신나게 달렸다. 사람들은 맥주를 마셨고 클럽이 따로 없었다. 도로 옆으로 걸려있던 플랜카드 하나가 내 눈에 들어왔다. ‘노 벨트 노 브레인’!

님빈의 길거리


 님빈은 히피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 그런지 마리화나의 재배와 판매가 이루어진다. 하지만 이곳 역시 마리화나가 합법은 아니기 때문에 경찰들이 마약탐지견을 데리고 돌아다니고 있었다. 생각보다는 규모가 작고 현대적이었지만 히피스럽게도 마을은 무지개색으로 알록달록했다. 처음 이곳에 히피들이 타고 온 미니버스와 입고 있던 옷들이 전시된 작은 박물관도 있었다.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은 복장을 한 주민들을 쉽게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친절하게 웃어주었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도 지루해보이지 않았다. 수공예품과 옷 등을 판매하는 가게들과 향 냄새로 가득한 마을이었다. 님빈을 장황하게 설명하기보다 벽에 적혀있던 스트릿 코드를 소개하고 싶다. Don’t Fight, Don’t Steal, Don’t Greedy!
 점심 바비큐와 샐러드를 만들며 몇 명의 여자애들이 나에게 뭘 샀냐고 물었다. 나는 가방과 스티커 팔찌 등을 샀다고 답했다. 의아한 눈빛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마리화나를 구입했던 것이다!


                                                                바이런베이, 호주의 동쪽끝에 서다 <하> 에 계속.

박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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