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제 감정을 저도 모르겠어요
10. 제 감정을 저도 모르겠어요
  • 이명구 스포츠서울닷컴뉴스부장
  • 승인 2010.05.26 14:53
  • 호수 12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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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하거나 편한 사랑도 사랑
 


[문] 안녕하세요. 저는 1년 넘게 한 여자랑 교제중입니다. 둘 다 학교 근처에 살아서 만나지 않는 날이 이상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서로에 대해 익숙해지고 편해졌습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지금 사귀고 있는 여자 친구를 좋아해선지 그냥 좋은 사람이라서 만나는 건지 제 마음을 알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도 아닙니다. 그래서 더욱 혼란스럽습니다. 요즘 여자 친구에게 잘 대해주지도 못하고, 이로 인해 그 애가 상처받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픕니다. 떨어져서 시간을 더 가져보는 게 좋을지, 아니면 그냥 친구로 지내는 게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떤 선택을 해도 후회할 것 같습니다.


[답]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 사람들이 경험하는 사랑은 결코 영화 같지 않다. 현실적인 사랑이 더 드라마틱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월급쟁이가 받는 급여처럼 틀에 박힌 그저 그런 사랑을 하게 된다. 물론 이런 사랑들도 다 나름의 우여곡절은 있기 마련이다. 사랑의 종류가 사람의 생김새만큼 다양한 것이지만 우선 이번 고민의 핵심은 익숙하고 편한 것이 과연 사랑이냐는 문제일 것 같다. 지금 결혼을 앞두고 있다면 바로 조언이 가능하다. 그것이 사랑이 아니라고 해도 상대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점이다. 사랑을 다룬 수많은 소설과 영화, 드라마는 사랑 이후를 대개 보여주지 않는다. 설레는 사랑, 치열한 사랑, 목숨 건 사랑의 끝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수 십 년 세월이 흘러도 열병을 앓을만큼 대단했던 사랑의 위력은 계속될까. 학교 근처에 살고 1년 정도 교제중이라면 준동거의 상태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물론 정신적 육체적으로도 사랑을 나눴는지에 대해선 알 수 없다. 많은 변수가 포함돼 있는 대목이긴 하지만 명색이 대학신문인만큼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어쨌거나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진 것도 아닌데 현재의 여자 친구에게 충성을 다하지 못한다면 사랑은 거의 끝났다고 본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떨어져 지내는 것을 고민한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효과는 없다. 부부관계도 아닌데 별거요법을 들이댄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이런 방법론을 들고 나오는 속내는 사실 죄책감 없이 이별하고 싶다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너무 편하고 잘해준 여자 친구에 대한 나름의 배려일 것이다. 친구로 지낸다? 더더욱 안될 말이다. 동양적 특성상 이성간에 친구란 존재하기 힘들다. 더구나 이미 사랑이란 개념으로 한번 뒤섞인 남녀는 결코 그렇게 쿨할 수 없다. ‘내가 먹기는 싫고 남 주긴 아깝고’ 싫증이 난 이성은 딱 이런 존재다. 질투만큼 무서운 것은 없다고 했다. 한때나마 사랑을 나누던 그녀가 너무 편해서 내가 떠나보냈던 그녀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지내고 있는 상상을 해보라. 아마도 쉽게 가라고 말을 꺼내기 힘들 것이다. 그것이 바로 남자고 그래서 도둑이란 소리를 듣는 것이다. 이것은 혼자 고민할 문제가 아닌듯 싶다. 스스로는 자신만 결정하면 끝날 이야기처럼 하고 싶지만 어쩌면 상대도 고민에 빠져 있을 지 모를 일이다. 인기 개그프로 ‘남성보장인권위원회’에 나오는 풍부한 사례들을 떠올려 본다면 지금 고민에 빠진 남자는 매우 행복한 남자가 아닐까. 연애도 결혼도 익숙하고 편한 상대가 최고다. 적어도 인간적인 측면에서 그렇다. 어떤 사랑을 상상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미래의 사랑은 전혀 보장되지 않은 사랑이다. 물론 모든 사랑이 결실을 이뤄야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사랑하니까 이별을 한다는 논리도 그렇지만 익숙하거나 편해서 사랑이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도 전혀 말 같지 않은 소리다. 익숙하거나 편한 사랑도 사랑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나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랑일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보기만 해도 가슴 설레고 목숨을 내던져서라도 잡고 싶은 사랑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랑은 거절 당할 수도 있고 내가 헌신해야 함으로 피곤한 사랑이 될 수도 있다. 시인 유치환은 ‘행복’이란 시에서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 보다 행복하니라’고 했다. 살아보면 알겠지만 사랑 역시 받는 것이 좋다. 주기만 하는 사랑은 언젠가 바닥을 드러내게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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