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의 깐느 영화제는 어수선했다. 폐막 3일전, 공식 책자에도 실리지 않았던 한 영화가 갑자기 상영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 영화는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체리향기>였다. 이란 정부가 이 영화를 국외 유출을 금지시켰기 때문에 이 영화는 빛을 못 볼 뻔했다.
제작자인 키아로스타미 감독은 자살을 하고 싶어 하는 한 남자를 영화 속에 담았다. 이란에선 자살이 종교적으로 매우 큰 죄악으로 여겨진다. 그럼에도 이 남자는 수면제를 먹은 뒤 흙구덩이에 몸을 누이려 한다. 남에게 알릴 길이 없는, 치유할 수 없는 고통 때문이다. 그는 자신에게 흙을 덮어줄 사람을 구하는데,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 해도 응해주는 사람이 없다. 군인은 도망가고, 공사장 일꾼은 욕을 내뱉고, 신학도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그를 외면한다. 결국 손자의 병원비가 절실한 한 노인이 그의 제안을 수락하는데, 그 노인은 쉴 새 없이 그를 설득한다. 목을 매달려고 했던 체리 나무 열매를 먹고 느꼈던 강렬한 삶의 의지를 그에게 전한다.
이 영화는 얼핏보면 참으로 지루하다. 한 남자가 자동차를 타고 개발이 한창 진행 중인 이란 공사현장 곳곳을 돌아다니는 게 대부분이다. 게다가 영화의 일부분은 극적인 연출을 아예 하지 않았다. 헐리우드 영화의 극적 구성은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럼에도 이 영화의 아우라는 너무도 강렬하다. 이 영화는 상영되는 내내 사람들에게 외치며 묻는다. ‘당신에겐 삶에 대한 강렬한 의지를 불러일으키는 것이 있는가?’, ‘고통을 마주했을 때 당신은 죽음을 택하겠는가?’
<체리향기>는 자살을 택한 사람들을 저주하거나, 사람들을 가르치려 들지 않는다. <아바타>처럼 특수효과도 없고, <인셉션>의 디카프리오처럼 잘생긴 배우도 없다. 다만 영화만이 가진 진실함과 순수함으로 사람들에게 잔잔하게 강렬하게 외친다. 그것이 통했는지, <체리향기>는 왕가위, 아톰 에고이양, 이안의 쟁쟁한 영화들을 제치고 황금 종려상을 거머쥐었다.
이상만(컴퓨터공·11졸) 동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