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터치 49. 블랙코미디
대중문화터치 49. 블랙코미디
  • 조수진 기자
  • 승인 2011.10.04 21:38
  • 호수 13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편의 블랙코미디가 되어가는 사회

▲영화 '세 얼간이'에서 '알 이즈 웰' 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있는 주인공들
“저는 더 빨리 먹을 수 있습니다! 저는 사장님 보다 자장면을 더 빨리 먹고 일할 수 있습니다!” 이 대사는 시트콤 ‘하이킥3’에서 가난한 여대생 백진희가 인턴사원으로 뽑히기 위해 필사적으로 외쳤던 한마디다. 저 한마디로 백진희는 자장면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10초 안에 자장면을 다 먹음으로써 인턴사원으로 뽑혔다. 이 황당하고 우스꽝스러운 상황은 사람들 입가에 웃음을 자아낸다. 그런데 이상하다. 인턴에 합격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모습이 낯설지가 않다. 웃으면서도 맴도는 이 씁쓸함은 무엇일까.
블랙코미디, 잔혹하고 기괴하고 통렬한 풍자를 내용으로 하는 희극. 문학 장르의 하나로 일반적 유머와 달리 웃음을 주면서도 날카로운 불안과 불확실성을 느끼도록 한다.
이 단어의 사전적 풀이는 우리가 10초 안에 자장면을 먹는 극중 인물을 보면서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다. 백진희라는 인물을 통해 우린 취업과 스펙에 매달려 몸부림치는 나 자신을 떠올린다. 뿐만 아니라 부도의 아픔을 겪고 가장의 권위를 잃은 안내상, 반찬 하나에 쩔쩔매며 몇 년째 9급 공무원을 준비하는 고영욱, 시트콤에 등장하는 다른 인물 캐릭터까지 모두 현실에서 찾아볼 수 있는 웃지 못 할 우리의 이웃이다.
블랙코미디는 드라마뿐만 아니라 영화에서도 볼 수 있다. ‘세 얼간이’ 라는 영화에서 란초라는 인물은 매 순간 경쟁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알 이즈 웰(All is well)”이란 간단한 주문으로 겁먹은 마음을 속여 용기를 내보라고 한다. 목욕을 하다가도 화장실에 있을 때도 란초와 친구들은 “알 이즈 웰!” 용기를 내라고 외친다. 우스워 보이는가? 하지만 나도 모르게 이미 주인공들에게 동화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린 한번도 “알 이즈 웰”이라고 외치며 사회의 틀을 깨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현실을 반영한 영화 속에서 반나체로 우스운 대사를 하는 인물들의 모습은 폭소하게 만들지만 결국 우리의 상황에 대해 다시 한 번 자각하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개인과 사회에서 짊어진 짐들을 풍자하는 것이 블랙코미디의 역할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블랙코미디 장면을 TV나 책을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블랙코미디는 우리들의 현실 속에서 이미 현재 진행 중이다.
어느 순간부터 세상이 블랙코미디가 돼가고 있다. 다양한 사건들뿐만 아니라 정치에 무심한 젊은이들, 투표하지 않는 사람들, 이 모든 것이 당연한 사회 현상이 돼버렸다. 과거에서 현재 우리를 바라본다면 어떨까. 자유를 위해 투쟁하던 사람들이 보기엔 지금의 우리들은 주인이 스스로 노예인생을 선택하고 있는 꼴이 아닌가? 삶의 노예가 되어 스스로 주인 행세를 하지 않는 사람들. 정말 한편의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과거뿐만이 아니다. 미래의 사람들이 역사책을 읽으면서 한편의 블랙코미디를 봤다는 평가를 내리진 않을지 걱정이다. 아니 어쩌면 세상이 벌써 완전히 블랙코미디가 돼버려 있진 않을까? 만약 세상이 블랙코미디로 변해버린다면 앞으로는 어떤 장르로 세상을 풍자해야 할까?

조수진 기자 ejaqh2@dankook.ac.kr

조수진 기자
조수진 기자

 ejaqh2@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