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로 인생을 말하다
축구로 인생을 말하다
  • 문성권 기자
  • 승인 2011.10.25 10:51
  • 호수 13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불운의 천재 공격수, 우리 대학에서 박사학위 취득

전 세계인들이 축구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것들은 제쳐놓더라도 화려하게 골을 성공시키는 순간만큼은 그 어떤 스포츠 경기보다 짜릿하지 않을 수 없다. 멋진 골을 선사하기위해 임무를 부여받는 자리는 다름 아닌 스트라이커. 축구의 꽃이자 주연으로 불리는 이 자리는 화려함 뒤에 막중한 중압감과 비난이 수반된다. 특히 냄비근성으로 유명한 국내 축구팬들을 생각하면 대한민국 축구팀 공격수는 그야말로 ‘독이 든 성배’와 같다. 기자가 이번에 만난 인물은 대한민국 축구팀 공격수로서 오랫동안 활약한, K리그 득점왕 출신 김도훈 코치(성남일화)다. 그와의 첫 대면에서 가장 눈에 띈 것은 검게 그을린 피부와 다리의 흉터들이었다. 말로는 형언할 수 없는 지난시간의 굴곡들을 쉽게 집작할 수 있었다. 2000년대 초 국내 최고의 공격수 반열에 올라 한국축구를 풍미하였지만, 정작 월드컵 무대를 밟아보지는 못했던 그였다. 때문에 대한민국 전체가 떠들썩했던 2002년 한일 월드컵이 그에게 만큼은 왠지 모를 씁쓸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 뜨거운 축제의 열기 속에서 홀로 신음하기도 하였지만, 이듬해 K리그 득점왕과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하며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당당히 일어섰다. 그래서인지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은 마치 이런 김 코치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닌가 싶다. 역경을 이겨내고 국내최고의 공격수가 되기까지, 그 과정에서 행복은 어떻게 찾아왔는지 조심스레 물어보았다.

■일상

현재 국내 프로축구팀 성남일화에서 코치 활동을 하고 있다. 요즘 행복한가?

처음 지도자로 입문했던 해에는 코칭스태프로서 선수단 전체를 관리한다는 것이 매우 힘든 일이라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팀의 전력이 올라가고 좋은 성적을 거두면서 그간의 고생이 자연스레 잊혀 지더라. 지도자가 느끼는 기쁨이 무엇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2011년 2월 17일 우리 대학원 체육학과 사회과학분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우리대학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단국대학교에 지인이 있었다. 그리고 단국대(죽전)가 성남과 가까워 일을 하면서 공부하기에 적합했다. 교수님들과 관계자분들의 많은 도움으로 무사히 박사과정을 마칠 수 있었다.

 ■이슈

지난 한일전에서 한국은 일본에게 패하였다. 특히 3:0이라는 스코어는 한일 축구역사상 처음 있는 일인데, 국가대표 시절 한일전 경험이 많은 김도훈 코치로서 어떻게 생각하나?

국민들이 발끈하는 이유를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더 이상 승부에 집착한 한일전은 탈피해야 한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분위기다. 아시아의 두 축구강국의 맞대결이 세계로 나서는 계기가 되는 경기로 바뀌어야 한다. 한국의 전력이 100%였다면 해볼 만 했을 텐데 아쉽다. 특히 조광래 감독의 전술적 실험이 아직 과도기고 박지성, 이영표를 대체할 만한 자원이 발굴되지 않은 상태에서 열린 경기이기 때문에 이번 한 경기를 가지고 속단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이영표의 후계자로써 김 코치의 제자 홍철(21·성남)이 여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그는 우리대학 출신이라 이래저래 인연이 깊은데, 어떤 선수인가?

내가 알기론 홍철이 학교에 재학 중일 때 단국대가 대학리그에서 우승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학교에 미안하다.(웃음) 홍철은 매우 영리한 선수다. 뛰어난 체력과 더불어 전술이해도가 높다. 발전가능성이 매우 크다. 요즘 보여주고 있는 그의 화려한 공격본능은 나의 지도가 곁들여졌기 때문이다.(웃음)

대학생들에게 EPL(잉글랜드 프로축구)의 인기가 매우 높다. 시청자가 느끼는 것처럼 K리그와 큰 차이가 있나?

몇 해 전 영국으로 연수를 간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보니 K리그와 비교 못 할 수준은 아니더라. 카메라 앵글 효과가 크다는 것을 느꼈다. 이 것 또한 기술이자 자국리그가 발전할 수 있는 협회, 구단의 역량이다. 이제 K리그도 학생들이 즐겨볼 수 있게끔 방송기술 및 마케팅에 힘써야 될 때가 왔다.

■과거

힘들었던 적이 있나?

2002월드컵에 출전하지 못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2000년 히딩크 감독 부임 후 꾸준히 국가대표팀에 이름을 올리다가 월드컵 직전에 엔트리에서 탈락했다. 내 기량이 월드컵 명단에 부적합하다고 생각 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까지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오기가 생기더라. 그 때 많이 독해진 것 같다. 이듬해 K리그 득점왕을 차지하는 등 기량이 절정으로 치솟았다. 월드컵 탈락의 아픔은 여전하지만, 그때 공격수로서의 차가움과 냉정함을 배울 수 있었던 것 같다.

왜 월드컵 대표팀에서 탈락되었다고 생각하나?

그 부분에 대해선 아직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 의문 때문에 끊임없이 성찰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지도자가 되어보니 알 것 같다. 축구는 모두가 뛸 수 없는 종목이다. 훌륭한 선수가 있더라도 더 뛰어난 선수가 있다면 그 선수가 뽑히는 것이 맞다. 슬프지만 지난 일에 감정적으로 호소할 수 없는 이유다.

격수로서 중압감을 이겨내기 위한 자신만의 방법이 있나?

축구 이외의 것들을 즐기면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노력했다. 보통 레저스포츠를 즐기거나 가족들과 여행을 떠난다. 모든 일이 즐길 때 잘 풀리는 것 같다. 즐기기 위해선 일의 노예가 되어선 안 된다. 안 풀릴 땐 체념하고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줄도 알아야 한다. 집착을 버리고 여행을 하고 돌아오면 다시금 일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축구포지션 중 공격수는 골을 넣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위치다. 김도훈 코치가 공격수로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었나?

‘냉정과 열정 사이’ 공격수는 미쳐야 한다. 정말 미쳐야만 어려운 위치에서도 감각적으로 골을 성공 시킬 수 있다. 그리고 공격수는 차가워야 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냉철한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격수는 ‘냉정과 열정사이’에 놓인 포지션이라 말하고 싶다.

가장 후회했던 순간은?

국가대표팀 경기가 있었던 날이다. 후보로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감독이 시간을 끌기위해 경기종료 1분을 남기고 나를 투입하려고 하더라. 어린마음에 기분이 나빠 경기에 안 들어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코칭스태프의 만류로 결국 교체선수로 투입했는데 들어가자마자 결정적인 기회가 왔다. 하지만 몸과 마음에 준비가 안 되어 있던 탓에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 후 엄청나게 후회를 했다. 기회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고, 언제든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 후로는 그저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는 버릇이 생겼다.

■행복

단국대 학생들에게 조언을 부탁한다.

지난 세월동안 치열하게 살아온 것이 사실이다. 국가대표 공격수로서 골도 많이 넣고, K리그 득점왕도 차지하였다. 하지만 후회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인가보다. 더 열심히 했으면 분명 더 훌륭한 선수로 남았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작은 성공으로 주춤하고 안주했던 지난날이 부끄럽다. 지금의 박지성을 만든 것은 끊임없는 고난과 역경 때문이다. 어쩌면 계속되는 고난이 더욱 감사한 것일 수도 있다.

김도훈 코치의 최종 목표는?

선수양성 뿐 아니라 지도자 양성에 큰 욕심이 있다. 축구종가 영국만 해도 지도자 양성에 많은 노력을 쏟는다. 선수를 양성하는 것은 당장에 가시적인 효과를 볼 순 있겠지만 그 선수가 은퇴하고 나면 그만이다. 하지만 지도자를 양성하게 되면 그 지도자가 수십 년에 걸쳐 무수히 많은 훌륭한 선수들을 배출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아직까지 지도자 양성에 대한 인식이 반신반의하기 때문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 이웃나라 일본만 하더라도 지도자 양성에 전폭적인 지원이 이뤄진다.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것이 내가 앞으로 해나가야 할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축구의 발전을 위해서 구체적인 노력을 하고 싶다.

김도훈 코치에게 행복이란?

나는 지도자가 적성에 맞는 것 같다. 선수들이 내 가르침을 이해하고 잘 따라와 줄때면 무척이나 행복하다. 또한 선수생활을 오래하다 보니 제자들과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아 기쁘다. 지도자와 선수사이에 괴리감이 생길 수 있지만 아직까지는 매우 가깝게, 아들처럼 지내고 있다. 이런 것이 행복이 아닌가 싶다. 이들이 국가대표가 돼서 크게 성공하면 코치로써 더욱 바랄 것이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한국축구에 진 빚이 많다. 지금의 성공이 온전히 내 힘으로만 이뤄졌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성원과 관심이 있었기에 힘들어도 다시 일어설 수 있었다. 앞으로는 이 빚을 재미있는 축구로, 앞서 말한 지도자로서의 사명감을 다하여 갚아 나가고 싶다. 지금 걷는 길이 올바른 길이고 진정 애국자로서의 길이라 생각이 드니 할 일이 태산이고 갈 길이 천리라도 그저 행복할 따름이다.

 문성권 기자 sigigrabner@dankook.ac.kr

문성권 기자
문성권 기자 다른기사 보기

 sigigrabner@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