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을 지나다 아들을 데려온 아버지가 ‘간송이야말로 우리 문화적 자존심이니 여긴 반드시 꼭 와봐야 한다’고 당부하는 걸 들었어요. 사실 지금 어디를 가도 ‘우리’는 없잖아요. 간송미술관에 오면 우리를 느끼고 가는 거죠.” 어느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간송미술관을 45년째 지킨 최완수(69) 연구실장은 “이곳에서 문화적 자긍심을 만족하고 갈 수 있다”며 우리나라 미술 문화의 긍지를 강조했다.
가을 날, 아름답게 낙엽 진 서울 성북동 길을 따라 걷다보면 역사 속의 길을 거닐어 볼 수 있는 간송미술관을 찾을 수 있다. 1938년 간송 전형필(全鎣弼)이 33세 때 세운 ‘간송미술관’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이다. 일제강점기 간송이 10만석 재산을 털어 모은 우리 문화재를 정리, 연구하기 위해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부속기관으로 만들어졌다. 서화를 비롯해 자기·불상·불구(佛具)·전적(典籍)·와당·전(벽돌) 등 많은 유물들도 미술관 주변에서 볼 수 있다.
대개 박물관이 전시를 주된 사업으로 하는 반면 간송미술관은 미술사 연구 산실로서의 역할을 주로 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연구가 주목적이며, 전시의 목적도 연구 결과를 대중에게 검증받고자 하는 데에 있다. 따라서 매년 봄과 가을, 보름 정도만 관람객들에게 문을 열고 있다. 1971년부터 연 2회 무료 전시를 열고 있는 간송미술관은 항시 개방이 아니기 때문에 전시를 열 때마다 더욱 문전성시를 이룬다.
지난달 16일부터 30일까지 열린 올 가을 정기전 ‘풍속인물화대전’도 성황리에 마무리됐다. 안견부터 이당 김은호에 이르기까지 조선 왕조가 배출한 화가 52명이 그린 인물풍속화 100여 점을 볼 수 있었다. 조선 풍속화의 기틀을 마련한 겸재 정선. 이어 관아재 조영석, 단원 김홍도, 긍재 김득신, 혜원 신윤복 등이 개성 넘치는 화폭으로 담아낸 조선 사회를 눈에 담을 수 있다.
이번 전시는 특히 영화 <미인도>나 드라마 <바람의 화원> 등이 인기를 끌며 대중들에게 익숙한 혜원 신윤복, 단원 김홍도의 주옥같은 작품들을 직접 볼 수 있어 눈길을 끌었다. 책이나 화면에서만 보던 혜원의 ‘미인도’나 ‘단오풍정’, ‘월하정인’ 등의 작품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신기하면서도 과연 명작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기자는 이한철의 ‘반의헌준(班衣獻樽, 색동옷 입고 잔을 올리다)’이 기억에 남는다. 어느 정도 나이를 먹은 아들이 아버지의 생신에 색동옷을 입고 술잔을 올리는 장면이다. 장수하는 아버지를 향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따뜻한 그림이었다. 이에 아버지는 온화한 미소로 화답을 한다. 선조가 남긴 걸작에는 우리 민족의 정서와 정체성이 담겨 있는 법. 그림을 통해 그 내면의 우리 문화까지 느낄 수 있다. 한국 전통 미술을 알고자 한다면 간송미술관은 꼭 둘러보아야 할 곳이다. 어느새 부터인가 서양 미술에 길들여져 버린 우리. 고흐와 샤갈은 알아도 장승업, 윤두서 등의 화가를 아는 사람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선조들의 그림을 통해 우리를 알아 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올 가을을 놓쳤다면 내년 봄 명작과의 두근거리는 만남을 기다려보자.
권예은 기자 silver122@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