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볼펜]수다
[백색볼펜]수다
  • 권예은 기자
  • 승인 2011.11.29 14:06
  • 호수 13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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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풀이 땅콩 소통?

 

◇답답하다.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럴 때 혼자 끙끙 앓아서 좋을 게 없다. 이 답답한 심정을 어디든 토해내야 한다. 친구가 필요한 때이다. 친한 친구 앞에서 이러쿵저러쿵 얘기를 털어놓다보면 어느새 짜증나고 힘들었던 감정이 정리되고, 조금은 마음이 풀리는 듯하다. 속에 담아두기보다 누군가에게 공개함으로써 일정 부분 해소가 된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으로는 과연 먹는 것 다음으로 ‘수다 떨기’가 최고인 것 같다. 21세기인 오늘날, ‘수다의 장’은 더욱 더 확대됐다.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등. 굳이 친구를 앞에 앉혀놓지 않아도 자신의 의견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은 우주만큼 무한해졌다.


◇표현의 욕구는 그 어느 시대보다 강해지고, 표현의 방법 역시 다양해졌다. 그러나 욕구와 방법만의 발전만 있을 뿐. 어디까지나 ‘소통의 장’이라 내세운 공간은 우리들이 심심풀이 땅콩삼아, 스트레스 해소삼아 떠들어대는 ‘수다의 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다. 페이스북의 뉴스피드 페이지, 새로 올라온 맛있는 음식 사진이 눈에 띈다. 그리고 누군가는 오늘의 안 좋은 일을 고백한다. 수많은 축구, 야구 팬들은 그 날의 경기 결과에 따른 일희일비 감정을 보여준다. 새벽의 많은 페이스북 유저들은 우울한 감성에 흠뻑 젖어 있다. 마치 누군가에게 보여주려고 쓰는 일기 같다.


◇‘좋아요’를 누르고 싶다. 오늘날 ‘수다의 장’은 놀이다. 확실히 재미는 있다. 친구랑 만나서 수다를 떨 듯이 서로 재밌는 사진이나 글을 올려 농담을 나눈다. 일종의 댓글 놀이다. 그러나 ‘놀이’는 언제나 놀이에서 끝날 뿐, 문제는 재밌고 흥에 겨우면 그걸로 끝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느냐에 있다. 실시간, 발 빠른 정보 공유를 자랑하는 SNS와 각종 커뮤니티가 진정한 ‘소통’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 대학 커뮤니티 단쿠키 역시 욕이 고팠던 사람들만 모은 것 같다. 가볍고, 재밌는 흥미 위주의 게시글은 인기가 많다. 특히 누군가를 비난하는 글은 베스트 댓글과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한다. 누가 봐도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댓글인데, 왜 올렸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때도 많다.


◇ 지난 27일은 김수영 시인이 태어난 지 90주년 되는 날이었다. 그는 60년대 대표 시인으로 험난한 사회 속에서도 자신의 날카로운 목소리를 서슴없이 내뱉었다. 시인은 삶의 맥박을 언어로 짚어내는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가 뛰어난 시인들처럼 우리의 삶을 아주 멋진 언어로 짚어보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러나 사고(思考)하는 일을 게을리 해선 안 되겠다. 그 어느 때보다 표현의 방식이 자유롭게 보장되는 요즘,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세상에 관심을 갖고, 현안을 관찰하고 사회인으로서 통찰력을 길러야 한다. 세상이 더 좋아지기를 바라면서 수다 떨듯 여기저기서 비난만 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또 있을까. 그렇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게 나을지도. “재앙과 불행과 격투와 청춘과 천만인의 생활과/그러한 모든 것이 보이는 밤/눈을 뜨지 않은 땅속의 벌레같이/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김수영, 「봄밤」 중에서) 얄팍한 입놀림이 지겹다. 깊이 있는 시 한 구절이 더 와 닿는 요즘이다.


<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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