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人문화in 48. 영화<건축학개론>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첫사랑이었다
누군가 당신에게 ‘당신의 첫사랑은 누구입니까?’ 라고 물어본다면 머릿속에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아, 그때 그 사람! 그리고 대부분은 이렇게 답할 것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보다 지금이 더 중요하죠.”
누군가는 첫사랑에 큰 의미부여 하지 않은 채, 단지 내 곁에 잠시 머물다 떠나갔던 사람, 심지어는 천하의 ‘나쁜X’으로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영화 속의 승민(엄태웅)도 마찬가지였다. 서른다섯의 그는, 건축프로젝트를 밤새워 설계하며 하루하루 일상을 살아가는데 찌들어 있었다. 현재 애인과의 결혼준비에도 버거운 상태여서 첫사랑의 추억, 기억은 그에게 사치였다. 오랜 세월 속에서 스무 살의 풋풋함은 아예 지워버린 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의 첫사랑인 서연(한가인)이 찾아와 다짜고짜 집을 지어달라고 한다.
이때 영화는 서른다섯의 승민과 서연에서 스무 살의 승민(이제훈)과 서연(배수지)으로 돌아간다.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현재와 15년 전의 과거가 자연스럽게 교차한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았던 네 남녀들이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영화 속 장면들이 조화를 이룬다. 현재에서 과거로 왔다갔다 시간여행을 다니면서, 영화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왜 이들은 지금 이런 사이로 만나게 됐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숫기 없던 스무 살 시절, 건축학개론이라는 같은 수업을 들으며 알게 된 그들. 승민은 점점 서연이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다. 서연에게 좋아하는 마음을 고백하지 못한 채 친구로서 곁을 맴돈다. 이때 관객들은 자신의 첫사랑에 대한 향수를 떠올리기 쉽다. 특히나 가수 전람회와 무스, 삐삐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스무살 시절의 에피소드는 철저히 승민의 시점에서 보여주지만, 서른다섯의 에피소드는 서연의 시점에서 보여주기 때문에 이는 영화를 보는 또다른 재미다. 스무 살 시절의 서연에 대한 설명은 서른 다섯의 서연을 보는 관객들에게 맡긴다.
다시 서른다섯의 삶으로 돌아온 그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을 증명하듯 각자의 삶을 살아가던 그들이 조금씩 자신들의 마음 속 한구석을 내주기 시작한다. 겉으로 쿨한 척 하는, 의사와 결혼했다는 서연의 삶은 어딘가 모르게 지쳐 보인다. 결혼 후 미국행을 해야 하는 승민은 어딘가 모르게 힘겨워 보인다. 서로가 처한 사정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며, 미묘한 감정도 느끼기 시작한다. 서연이 다시 승민을 찾아온 이후부터 승민에게는 오직 서연의 집과 서연으로 머릿속이 가득 찬다.
집을 짓는 것으로 그 둘이 다시 엮이게 돼 이야기가 시작됐다면, 집이 다 완공되어가면서 영화도 마무리를 향해 달려간다. 집이 다 완공되고, 그들은 스무 살 때 간직했던 추억 하나 때문에 감정의 끝을 달린다.
영화 속 이들의 미묘한 감정전선을 잘 따라 가다보면, 어느 샌가 영화 속에 빠져드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과연 이 둘의 사랑은 다시 이뤄졌을까. 이 둘의 스무 살 시절에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조금 힌트를 주겠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 첫사랑이었다.
박윤조 기자 shynjo03@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