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문화큰잔치>, <서울한지문화제>
우리 문화의 멋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는가? 너무나도 익숙하기에 그만큼 과소평가되어 왔다는 생각이 든다. 기자는 우리 문화의 가치를 다시 한 번 일깨울 분기점을 찾아 다녀왔다. 광화문부터 시청 앞까지 펼쳐진 <한글문화큰잔치>와 <서울한지문화제>는 시민 모두의 한글과 한지에 대한 사랑을 다시 한 번 샘솟게 했다. 친숙하기에 더욱 사랑스러운 우리 한글과 한지를 독자들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필자 주>
지난 9일, 한글날. 들뜨고 설레는 마음으로 5호선 광화문역에 도착했다. 10월 중순도 얼마 남지 않아 선선한 가을 날씨와 낭만을 기대했지만, 오후 3시 반에 도착한 광화문광장은 무척 덥고 북적였다. 한글날에 광화문을 가야겠다고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친구가 좋아하는 ‘비정상회담’ 출연자 타일러의 출현 소식 때문이었다. 이 행사는 미국 대학에 한국어 도서관 건립을 위해 책을 기증한다는 좋은 취지를 갖고 있어 광화문을 향한 발걸음이 더욱 즐거웠다. 기증행사는 4시까지였기에, 우리 일행은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부스를 찾아 헤맸다. 다행히도 금방 부스를 찾았다. TV를 뚫고 나온듯한 타일러의 모습과 넘치는 책 꾸러미가 우리를 반겼다. 기자가 기증한 책은 책꽂이 속 잠자고 있던 책이었지만, 이제는 우리나라와 미국의 가교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니 뿌듯한 마음이다.
도서 기증을 마치고 넘치는 인파를 피해, 그나마 한산해 보이는 청계광장 행사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과 동시에 시끌벅적한 기운이 느껴졌다. 무슨 행사를 하는가 싶다. 행사장 바로 앞무대에서 ‘한글날 예쁜 엽서공모전’시상식을 하고 있었다. 요즘 대세인 개그맨 조세호가 진행을 맡아 관람객들로 북적였다. 초등학생, 중고등학생, 성인 등 다양한 연령대의 시민들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바로 옆 부스에서는 엽서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어 참여열기가 더욱 뜨거웠다. 그밖에도 △한글팔찌 만들기 △가훈 쓰기 △한글네일아트 △엽서 전시 등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 엽서전시는 유명인들이 기부한 것들도 있었다. 배우 박유천, 아나운서 조우종, 교수 조국, 성악가 강형규 등 내로라하는 유명인들이 한글사랑의 메시지를 엽서에 담았다.
엽서를 구경하고, 체험을 하기 위해 둘러보던 중 기자는 한글 네일아트에 관심이 가서 줄을 섰다. 이번 행사가 예쁘고 색감을 가득 머금은 한글을 보여주고 있어, 형형색색의 네일아트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워낙 행사 참여도가 높아 우리 순서는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무대에서 들리는 가수 ‘김거지’의 목소리와 한글가사가 작은 위로가 되는 듯했다. 장장 40분의 기다림 끝에 드디어 네일아트를 받게 됐다. 두 명의 여자 분들이 손톱 하나하나에 정성들여 ‘한글’이라는 글자를 쓰고 한글 자음을 손톱 위에 예쁘게 수놓았다. 내 바로 앞 순서였던 초등학생 자녀를 둔 A(42)씨는 “모처럼 휴일을 맞아 잠깐 나와 봤는데, 아이들이 너무 재밌어한다. 체험할 것도 많고 선물꾸러미를 받은 기분이다”라고 전했다. 잠깐의 인터뷰를 마치고 조금 한산해진 틈을 타 북측광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도착과 동시에 아까 낮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아이들이 대부분이던 광장은 어느새 연인들로 북적이고, 중앙 무대는 공연 준비에 한창이었다. 찬찬히 둘러보던 중 중앙길 좌우로 피켓들이 놓여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한글 멋글씨전.’ 캘리그라피로 그려낸 한글과 꾸며놓은 그림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발길을 머물게 했다. 각 작품마다 의미와 감동이 있는 문구가 쓰여 있어 마음에 드는 작품 앞에서는 몇 분씩 사색하게 만든다. 워낙 탁 트여있는 광장이다 보니 시간·공간의 제약이 있는 미술관과 다르게 여유로운 감상을 할 수 있어 좋았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은 “살사리 꽃밭에서 우리 다솜할래요”라는 문구의 작품. 순 우리말이라 솔직히 무슨 뜻인지는 몰랐지만, 왠지 사랑스러운 기운이 느껴져 작품을 계속 보게 됐다. 찾아보니 ‘다솜하다’는 ‘사랑하다’의 옛말이라 한다. 또 작품에 코스모스가 그려져 있어 유추는 얼추 됐지만 ‘살사리꽃’은 코스모스의 북한말이다. 그간 외래어와 축약어에 익숙해있던 나의 언어 세계가 정화되는 듯 느낌이 들었다. 앞으로 ‘다솜해’라는 말을 많이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또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북측광장 중간에는 ‘꽃찬길 프로젝트’라고 그려진 그림이 있었다. 한글날을 맞아 즐거워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 ‘꽃찬길 프로젝트’는 도로와 거리를 캔버스 삼아 꽃잎과 나뭇잎, 색 모래 등으로 완성시키는 커다란 꽃의 그림이었다. 이탈리아말로 ‘인피오라타’인 이것은 전문 아티스트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의 참여로 만들어지는 참여형 예술 축제로 명성이 자자하다. 그림이 한글의 멋을 강조한 행사와 조화를 이뤄 참 예쁘다.
광화문을 넘어와 서울한지문화제를 하고 있는 시청 앞으로 향했다. 도보를 따라 10분 정도 걷다보니 어느덧 시청에 도착했다. 이미 오후 7시가 넘은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많았다. 이유인즉 한지패션쇼 개막공연 때문. 퓨전 국악그룹 ‘주아랑’의 해금과 바이올린, 동서양 악기들의 이색적인 연주가 흥미로웠다. 한지 옷감으로 만든 옷들이지만 현대 복장의 모양을 갖춘 이번 패션쇼의 서막다운 연주였다. 디자이너 이무열의 패션쇼 무대가 시작했다. 한지 섬유로 스포티함을 연출했다는 인터뷰영상처럼 한지섬유로 이처럼 편하고 활동성 있는 옷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패션쇼를 보면서 한지에 대해 무지했던 나를 반성하게 됐다. 패션쇼가 길어지고, 밤이 깊어져 한지 전시장 쪽으로 눈을 돌렸다. 상품 전시는 가히 충격적이다. 양말, 속옷, 옷뿐만 아니라 된장, 바디로션까지 상상의 한계를 뛰어넘는 한지 상품들이 많았다. 그리고 작품 전시장에서 본 한지로 만든 가방들도 이색적이였다. 물에 젖기 쉽다는 고정관념을 깬 것이 정말 대단했다. 한지 시장이 무한대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한글날을 맞아 광화문 일대의 열기를 몸소 느낀 하루였다. 우리나라의 중심지답게 우리 문화의 전통성을 다시 한 번 일깨워준 이번 행사에 감사함을 느꼈다. 익숙한 것이어서, 지루한 것이라고만 느껴졌던 우리 문화의 새로운 면모를 보았다.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 것’이라는 요즘 유행하는 글귀처럼, 우리 것을 한 번 더 소중히 여길 수 있는 좋은 문화제가 계속되길…
김소현 기자 52120554@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