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를 찌르는 약품 냄새, 윙윙거리는 기구 소리. 많은 이에게 치과와 치과의사는 성인이 된 후에도 꽤나 두려운 존재다. 졸업 후 3년 만에 송파구 거여동에 개인 치과의원을 개업, 어언 25년 차를 바라보는 베테랑 치과의사 안승호(치의학·90졸) 동문. 지난달 31일, 의원 근처의 한 음식점에서 그를 만나 치과의사에 관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들어봤다. <필자 주>
영화나 드라마에서 치과의사는 날카롭고 예민한 캐릭터로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안 씨는 “단 0.1mm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세밀한 작업이 요구되기 때문에 성격이 대범하지 못하고 예민해지는 것이 사실”이라며 “그런 점에서 비롯되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아 경제적 보상이 충분치 않다면 분명 기피 업종이 될 것”이라 말했다.
그간 받아온 진로직업교육을 돌이켜볼 때 ‘적성’은 꽤 중요한 요소로 다뤄진다. 치과의사가 적성에 맞느냐는 질문에 “살아갈 길을 찾아 최선을 다할 뿐, 애초에 직업을 선정할 때 적성은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며 “대학 시절에도 짜인 커리큘럼에 맞게 공부했기에 적성에 대해 크게 고민해보진 않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필요한 자질에 대해서도 같은 생각이다. “굳이 꼽자면 꼼꼼한 성격 정도이고, 그 외의 것들은 본인이 노력만 한다면 충분히 습득할 수 있는 부분이다.”
그가 가장 보람을 느낄 때는 바로 치료에 만족한 환자들에게 감사의 말을 듣는 순간이다. 반대로 직업에 회의감을 느끼는 순간 역시 환자들에게서 온다. 그는 “의사가 아닌 장사치 취급을 받을 때 가장 속상하다. 가끔 ‘돈 줬으니 똑바로 해’라는 듯의 태도를 보이는 환자가 있는데, 그럴 때 마음에 큰 상처를 입는다”고 답했다. 이어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면 배부른 소리라고 하지만, 30살 때부터 한결같이 ‘원장’ 소리를 듣는 것도 아쉽긴 하다. 직업적 성취가 없는 느낌이다”라는 그의 말을 들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치과의사의 장점에 대해, 경제적 안정을 누릴 수 있다는 것과 개인 의원이기에 누군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을 꼽은 그. 반면 “동료 의사가 없으니 혼자서 모든 일을 책임져야 하는 만능엔터테인먼트가 돼야 한다”는 남모를 고충도 존재했다.
20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치과의사로서 굳건히 자리를 지켜올 수 있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진정성과 꾸준함을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가끔 비즈니스 마인드가 지나친 의사들이 있는데 대부분 오래 가지 못한다. 눈앞의 작은 이익을 좇기보단 성실하게 본인의 자리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 된다”며 “이렇게 해야 본인도 환자도 모두 만족할 수 있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치과의사의 전망에 대해선 “70년대부터 국민소득이 증가하고 보건건강에 대한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치과대학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그 이후로 한동안은 호황을 누렸지만, 지금은 과포화 상태에 이르러 경쟁이 심화됐다”며 다소 현실적이고 부정적이게 평가했다.
끝으로 치과의사를 꿈꾸는 우리 대학 학생들에게 “누구든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될 수 있는 직업이다. 시작한 이후에는 맨땅에 헤딩하며 시행착오를 겪고, 버텨내야 한다. 치열하게 부딪히며 성장하길 바란다”며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조언을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