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몽골의 침입과 부대성으로의 천도
3. 몽골의 침입과 부대성으로의 천도
  • 장두식(일반대학원)초빙교수
  • 승인 2017.09.19 19:38
  • 호수 14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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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수도는 부다페스트다. 그런데 헝가리왕국의 최초의 수도는 부다페스트가 아니었다. 머저르족이 처음 정착한 곳은 옛 로마의 점령지였던 판노니아 평원이었다. 5세기 전반 훈족이 주인이었던 이 지역에 9세기 머저르족이 이주를 하였던 것이다. 서진한 아시아계 두 민족이 공교롭게 모두 판노니아 평원을 기반으로 국가를 건국하였다.

이 지역의 중심도시는 에스테르곰이었다. 부다페스트에서 북서쪽으로 50Km 거리에 있는 에스테르곰은 두나 강변의 비셰그라드 성채와 함께 초기 헝가리 왕국의 중심이었다. 이슈트반 1세가 에스테르곰 바실리카(대성당)에서 교황 실베스테르 2세가 하사한 성스러운 왕관으로 대관식을 올림으로써 왕도가 되었다.

 

헝가리 왕국 건국 초 머저르인들의 생활은 아래 민요와 같이 유목민의 문화를 간직하고 있었다.

 

“세 개의 언덕 아래 그 곳에/우리 가축들이 한가로이 어슬렁거린다네/풀을 뜯으면, 풀을 먹게 해 주오/장미 같은 내 사랑이 그 옆에 있으니”(헝가리민요 <세 개의 언덕 아래 그 곳에 amoda le hármas halom> 중)

 

세 개의 언덕은 골고다 언덕과 십자가를 상징하며 헝가리 국장의 중심문양이다. 그런데 민요에 등장하는 세 개의 언덕은 로만 카톨릭적인 의미만이 아니라 기마유목민들의 정체성도 함축돼 있다.

 

건국 후 평화 상태를 유지했던 헝가리 왕국에 먹구름이 몰려온 것은 벨라 4세 때였다. 징키스카한 사후 후계문제를 해결하고 2대 카한으로 추대된 어거데이가 1236년 유럽 원정을 시작한 것이다. 바투를 총사령관으로 하는 몽골군은 러시아의 키예프 등 여러 공국을 정복하고 독일기사단과 폴란드 연합군을 격파한 후 1241년 헝가리를 침입하였다. 유럽에서 아시아 기마유목민족들이 격돌을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전쟁은 허무하게 끝났다. 수레로 방어진지를 구축한 헝가리군은 바투의 전술에 넘어가 궤멸하고 벨라 4세는 크로아티아의 달마티아 지역으로 겨우 피신을 할 수 있었다. 헝가리군 마저 몽골군에 대패하자 전 유럽은 공포의 도가니가 됐다.

벨라 4세는 힘으로 몽골군을 대적하지 못하자 몽골군을 물리쳐 주면 공주 중 한 명을 신에게 바치겠다고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이 기도가 통했는지 1242년 몽골군이 갑자기 철군을 하였다. 벨라 4세는 기도에서 약속한 것처럼 머르기트 공주를 수녀가 되게 했다. 부왕이 뜻에 따라 머르기트 수녀는 두너강의 하중도(지금의 머르기트섬) 도미니끄 수도원에서 병자들을 돌보다가 1271년 29살에 요절을 했다. 교황청은 후에 성녀로 추서하였다. 그런데 몽골군이 물러간 것은 신의 뜻이 아니라 어거데이 카한이 급서했기 때문이었다. 카한 계승권을 가지고 있던 바투가 쿠릴타이(귀족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무조건 퇴각을 한 것이다.

벨라 4세는 에스테르곰에서 전략적으로 유리한 부다로 천도를 하고 돌로 견고하게 부다성을 건설했다. 수도 부다페스트의 출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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