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이 따스해졌다. 두꺼운 점퍼를 입고 한껏 움츠리며 학교를 향한 셔틀버스에 몸을 싣던 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어느새 가벼운 옷을 걸치고 돌아다녀도 기분 좋은 따스함을 살갗으로 느낀다.
수업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괜스레 늑장을 부리고 싶어지는 오후. 강의실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하다 가지 끝 먹음직스럽게 달린 새하얀 목련이 눈에 들어온다. 아, 봄인가보다.
◇ 새삼 ‘봄’이 찾아왔음을 느끼는 순간은 무척이나 많다. 단대호수 위 하얗게 부서지는 햇살, 살랑거리는 하늘색 바람. 코끝에서 느껴지는 포근한 향기와 고양이의 느긋한 기지개. 그리고 ‘초미세먼지’…….
지난달 25일, 서울과 경기도의 초미세먼지 평균 농도는 각각 95㎍, 100㎍으로 2015년 관측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봄을 체감하기 무섭게 공기를 가득 메운 초미세먼지 탓에, 사람들은 반가운 봄을 마스크로 맞이했다.
◇ 연례행사 격으로 매년 고역을 치러온 만큼, 초미세먼지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는 진땀을 빼고 있다. 지난 1월 16일부터 사흘간 서울시는 미세먼지 저감 조치를 발령해 대중교통을 무료로 운행했고, 지난달 29일 환경부는 ‘미세먼지 관리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환경재난’으로서의 미세먼지를 심각하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만 해도 있었던 ‘황사’는 수천 년 전부터 계속돼온 자연 현상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무분별한 개발, 화석 연료의 사용, 배려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공장의 매연 배출 등등. 황사에서 초미세먼지로 위협요소가 바뀐 지금, 그 원인은 자연 현상이 아닌 엄연한 인재(人災)이다.
◇ 옛날, 환경오염이 그리 심하지 않던 시절에는 ‘생수’를 돈 주고 사 먹는다는 것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생수를 구입해 소비하는 지금, 문득 이대로라면 공기조차 돈 주고 사야 할 지도 모르겠다는 섬뜩한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좀 있으면 캠퍼스에 가득 울려 퍼질 ‘벚꽃 엔딩’, 그 노랫말 속 ‘봄바람 휘날리며 흩날리는’ 것은 비단 벚꽃 잎만은 아닐 터. 언제쯤이면 마스크를 벗어 던지고 마음껏 봄바람을 즐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