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사회를 지키는 방법
민주주의사회를 지키는 방법
  • 박성순(교양학부) 교수
  • 승인 2018.09.19 13:12
  • 호수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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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순(교양학부) 교수
          박성순(교양학부) 교수

 

21세기 인류는 발전된 물질문명 위에서 폭넓은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인류의 자유를 확장시킨 우월한 제도라는 점은 인정하지만, 이에 대한 경고는 일찍부터 있어왔다. 부익부 빈익빈의 파국을 경고한 마르크스주의가 고전의 반열에 오른 지는 이미 오래다. 자본주의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타이틀을 얻으면서 상업적 이기심을 옹호한 것으로 잘 알려진 애덤 스미스도 사실은 시장을 통한 국부의 증진으로 달성된 보편적 풍요가 절대 빈곤으로 인한 도덕적 타락에서 인간을 해방시켜 줄 것을 기대한 것이었다. 공공선에 대한 스미스의 이상은 케인스의 수정자본주의로 구현되어, 냉전 기간 동안 사회주의의 도전을 훌륭히 막아냈다.


1990년대 초반 소련과 동구권이 몰락하였고, 대국굴기를 표방한 중국은 일부 인사들의 신비주의적 전망과는 달리, 확실히 자본주의적 근대화의 길을 뒤따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위용은 거칠 것이 없어 보인다. 문제는 천민자본주의의 도전이다. 권력과 명예, 법원의 판결, 언론, 그리고 심지어 사랑과 우정까지 세상의 모든 가치를 돈으로 살 수 있다는 천박함이 우리사회를 멍들게 하고 있다.
프린스턴 대학의 석좌교수인 마이클 왈저는 이러한 몰지각한 배금주의가 사회적 가치 간의 평등성을 해칠 것이라고 경계하였다. 인간의 사회는 정치·경제·교육·예술 등과 같은 다양한 영역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정치는 권력, 경제는 돈, 교육은 명예, 예술은 창조성과 같은 각자의 영역에 어울리는 정의의 가치가 있다. 이처럼 영역과 영역 사이에 높은 담장이 있어 하나의 가치가 그 영역 안에만 머물 때 사회적 정의가 실현될 수 있다. 왈저는 이것을 ‘다원적 평등’이라고 불렀다.


민주주의 사회는 이와 같이 다원적 평등이 보장되어야만 하는 사회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푸코는, 권력이 진리라는 명목 아래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시키는 지식을 재생산하고, 이렇게 재생산된 지식은 권력을 정당화시키는데, 이런 지식과 권력의 관계를 ‘진리의 레짐(regime)’이라고 명명했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는 매일같이 배금주의에 세뇌되고 있는 ‘자본주의 레짐’의 시대를 살고 있지는 않은 지 되돌아볼 일이다.


현재의 대학생들이 역사 발전의 구조적 이해와 이에 근거한 이상향의 모색이라는 지성인의 의무를 방기하고, 무한경쟁의 틀에 갇혀 각자도생의 미로를 헤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 지 오래다. 한 시대의 청년들이 천민자본주의의 프레임 안에만 매몰되어 있으면, 그 피해는 본인들에게뿐 아니라, 민주주의 사회의 몰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천민자본주의가 우리 사회의 다원적 평등을 해치지 못하도록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시야를 넓혀서 시대의 문제, 인류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선의지를 실천하는 지성인으로 거듭 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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