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스트리트의 마녀 ⑫ 헨리에타 하울랜드 로빈슨
월스트리트의 마녀 ⑫ 헨리에타 하울랜드 로빈슨
  • 이주은 작가
  • 승인 2018.10.10 20:22
  • 호수 14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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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의 두근두근 세계사

머리 위에 걸려있는 굴비, 두 번은 보지 마라. 너무 짜서 밥 많이 먹는다고 호통을 쳤다는 자린고비도 두 손 두 발 들게 될 미국 월스트리트의 구두쇠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1835년 태어난 헨리에타 하울랜드 로빈슨은 훗날 미국을 넘어 세계에서도 가장 부자인 여성으로서 명성을 크게 얻게 되지만 당시 무역과 포경 사업 가문의 엄청난 부자였던 부모님은 그저 첫째가 아들이 아니라는 점에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그렇게 딸이라는 이유로 외할아버지에게 맡겨진 헤티는 할아버지의 교육 아래 돈에 큰 관심을 갖게 되었고 6살부터 주식 투자 현황, 해운업 통계 자료 등을 할아버지께 읽어드리고 8살에는 스스로 계좌를 만들러 가는 등 돈 관리에서 즐거움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태어난 남동생이 어린 나이에 사망하면서 헤티는 집안의 유일한 상속자가 되었습니다.

▲ 헨리에타 하울랜드 로빈슨

 

하지만 정작 유산을 받을 때가 되자, 아버지는 딸을 사실상 금융 전문가로 키웠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돈을 헤프게 쓸 것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570만 달러의 유산 가운데 약 500만 달러는 신탁으로 돌리고 나머지만 현찰로 주었습니다. 자존심이 구겨진 헤티는 화가 나서 펄펄 뛰었죠. 심지어 이모가 유산을 주치의에게 주고, 나머지는 기부한 것을 알게 되자 헤티는 돈을 되찾으러 법정에 서기도 했습니다.

아버지 사망 후 부유한 남편, 에드워드 그린과 결혼도 했지만 둘의 소비성향은 영 맞지 않았습니다. 남편은 모임이나 취미에 돈을 잘 썼지만 헤티에게 취미는 투자하는 것이요, 돈은 쓰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헤티는 남편과 재산을 철저하게 분리하여 관리하였습니다.

헤티 그린의 악명 높은 구두쇠 일화들을 몇 가지 소개해보겠습니다. 그녀는 난방을 떼거나 온수를 전혀 사용하지 않았고 늘 한 벌의 검은 옷과 속옷만 입고 살았습니다. 항상 가장 싼 15센트짜리 파이만 먹었으며 옷을 세탁할 때도 비누를 아끼기 위해 소매와 밑단만 빨라고 시켰습니다. 불이 난 잔해를 보면 쓸 수 있는 못을 뽑으러 들어갔고 세금을 아끼기 위해 늘 떠돌아다니며 살았습니다. 사무실 임대료를 내지 않기 위해 은행에 앉아서 업무를 보는 검은 옷의 헤티 그린을 두고 사람들은 월 스트리트의 마녀라며 수군덕거렸습니다.

▲ 사랑했던 강아지 듀이와 함께 있는 헤티그린
▲ 사랑했던 강아지 듀이와 함께 있는 헤티그린

 

헤티 그린의 일화 중 가장 충격적인 것은 아무래도 아들에 관한 이야기일 것입니다. 어린 아들이 썰매를 타다 무릎을 다치는 사고를 겪자, 헤티는 빈민을 위한 무료 병원으로 갔습니다. 하지만 정체가 들통나 쫓겨난 탓에 아들의 치료는 늦어졌고 결국 아들은 훗날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습니다. (또는 이는 악의적인 소문이며 아들의 다리는 이 당시 의술로는 고칠 수 없는 부상이었다고도 합니다) 아내가 이렇게 돈을 아껴가며 재산을 늘리는 동안 헤티 그린의 남편은 사업 실패로 은행에 무려 70만 달러나 되는 빚을 졌습니다. 헤티는 이를 갚지 않으려 발버둥 쳤지만, 은행이 파산 직전에 다다르자 자신의 예금을 받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남편의 빚을 갚아주었습니다. 그 뒤로 남편은 집에서만 지냈다고 합니다.


부끄러움이 많은 딸 실비아가 누구와 결혼할지 걱정이 됐던 헤티 그린은 딸이 은행 총장의 아들과 연애하자 딸에게 ‘돈은 잔뜩 물려받게 될 것이니 성실하고 정직한 남자를 만나라. 아버지 재산에 안주하는 젊은이와는 만나지 말라’고 충고하기도 하였습니다. 재산을 무려 2억 달러까지 늘린 해티 그린은 노년에 이를 전부 자식들에게 물려준 뒤 81살의 나이에 뇌졸중으로 사망하였습니다. 헤티 그린의 아들은 이 엄청난 재산을 저택을 짓고 보석, 우표, 예술품 등을 수집하고 동네 사람들을 위한 파티를 여는 데 사용했으며 딸은 공공 도서관, 하버드대, 예일대, 여러 병원 등에 기부하는 데 사용하였습니다.

이주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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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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