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이른바 ‘양심적 병역 거부’ 사건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판단한데 이어, 국방부에서도 “좀 더 협의하는 시간을 가진 후, 관계 부처 실무 추진단의 안을 확정·발표하고 관련 법률의 제·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려 한다"고 밝힌 것을 보니, 지금까지 소위 ‘양심적’ 병역 거부자들이 주장해 온 대체 복무제의 도입 및 시행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하기야 각종 병역 특례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병역 거부자들을 위한 대체 복무제의 시행은 보기에 따라서는 다소 늦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인데, 이는 독일, 영국, 네덜란드 등을 포함한 57개국의 헌법에 병역 거부권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거니와, 이유야 어찌 됐건 자발적 의사로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매년 600명 정도에 달한다는 통계로 미루어 볼 때, 이들을 무조건 교도소에 가두는 것이 능사가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대체 복무제가 시행된다 하더라도 병역 거부자들을 향한 곱지 않은 시선이 그렇게 쉽사리 수그러들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이러한 배경의 가장 큰 이유로는 다음과 같은 문제 제기에 대해, 어떤 식의 답변이건 심각한 모순이 유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에 유사시 상황이 발생할 경우, 누군가는 국가를 지키기 위해 전장에서 무력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보면, 그 누군가가 지켜야 할 국민들 중에는 병역을 거부한 이들이 포함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바로 여기서 심각한 모순이 발생한다. 우리나라에 군대가 존재하는 이유가 유사시에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한 것임은 어린아이조차 다 아는 사실임에도, 자발적으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군에 입대한 사람들이 그 모든 역할을 떠맡아야 할 뿐만 아니라, 상황에 따라서는 희생을 강요당하는 꼴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모순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지 의아스럽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병역 거부자의 99%가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일진대, 그들이 자신의 소신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는 것인지의 여부는 또 어떻게 가려낼 수 있을 것인가?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각종 문제가 산적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역 거부자들을 위한 대체복무제의 도입이 국민 화합에 도움이 될 수 있으므로 도입이 불가피한 것이라면, 차제에 한 가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으로서, 과연 ‘양심적’이란 용어의 사용이 적절한지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병역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양심적 병역 거부자’라 한다고 해서, 언론과 국가 기관에서조차 이 용어를 그대로 답습해서는 곤란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용어의 사용으로 필요 이상의 오해가 초래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는, 특정인 내지는 특정 부류의 사람들을 옹호하기 위한 용어를 아무 비판 없이 일반화하기보다는, “개인적 ‘신념’ 내지는 개인적 ‘판단’에 의한 병역 거부”라는 용어가 합당할 것으로 여겨진다. 언론 및 관계 기관에서 적극적으로 반영해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