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나를 죽여다오 ⑭ 샤를 6세 -1-
부디 나를 죽여다오 ⑭ 샤를 6세 -1-
  • 이주은 작가
  • 승인 2018.11.14 15:28
  • 호수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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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살에 프랑스 왕위에 올랐던 ‘친애왕’ 샤를 6세는 바이에른의 이자부와 17살에 결혼하여 자식들도 낳고 잘 사는 듯 싶었습니다. 하지만 1392년 여름, 샤를 6세를 평생 괴롭힐 병의 증상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어느 날 갑자기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극심한 고열에 시달려 머리카락과 손, 발톱이 빠지기까지 했던 왕은 가까스로 회복하였으나 자신이 아픈 사이 측근이 정적에 의해 살해될 뻔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물론 화가 날 만한 일이었지만 지나치게 흥분한 왕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군사를 끌고 복수를 하러 나섰습니다. 해가 쨍쨍 내리쬐는 여름날, 갑옷을 입고 더워서 허덕이는 왕 앞에 한 걸인이 나타나 외쳤습니다.

▲ 불이 붙은 야만인들
▲ 배신자를 처단하라며 칼을 휘두르는 왕

 

“더 나아가시면 안 됩니다! 귀하신 왕이여! 전하께선 배신당하셨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말일까요? 왕의 신하들은 그저 미치광이일 뿐이라고 생각하여 걸인을 밀어냈지만, 걸인은 계속 뒤를 따라오며 배신당했다고 외쳤습니다. 아직 다 낫지도 않은 데다 날은 너무 덥고, 배신당했다는 소리를 계속 들으니 정신이 혼미해진 샤를 6세가 정신을 다잡으려는 순간, “와장창!!”하는 어마어마한 굉음이 들렸습니다. 수행원 중 하나가 실수로 깃발을 앞사람의 투구에 떨어뜨린 사고일 뿐이었지만 깜짝 놀란 왕은 허리에서 칼을 뽑아 주변에 휘두르며 “배신자를 공격하라!”라고 외쳤습니다. 그 탓에 왕의 바로 곁에서 왕을 호위하던 기사들이 왕의 칼에 맞아 사망하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놀란 신하들이 왕에게서 허겁지겁 칼을 빼앗고 왕을 포박한 뒤에야 일은 마무리되었습니다.

▲ 불이 붙은 야만인들
▲ 불이 붙은 야만인들

 

이때부터 샤를 6세는 평생 오락가락하는 정신상태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흔들리는 정신상태인 샤를에게 1393년, 더욱 큰 충격을 안겨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한 귀부인의 결혼식에서 왕을 포함한 남자들이 야만인으로 분장하고 춤을 추기로 한 날이었죠. 옷에 송진과 밀랍을 바르고 털을 붙여 만든 야만인 분장은 불이 잘 붙을 수 있었기에 행사장 안에는 횃불반입이 금지되었습니다. 하지만 늦게 도착한 왕의 동생은 주의를 듣지 못했는지 불을 갖고 들어왔고 곧 불똥이 튀어 야만인들은 모두 불길에 휩싸여 4명이 사망하였습니다. 왕 역시 위험할 뻔했으나 다행히 한 공작부인이 치맛자락으로 왕의 몸을 덮는 기지를 발휘한 덕분에 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친구들이 불에 타 죽는 것을 목격한 왕은 큰 충격을 받았고, 심약해진 마음을 파고든 정신병은 더더욱 심각해져 갔습니다.

그 외에도 샤를 6세는 자신의 몸이 유리로 되어있다고 믿어 의자에 털썩 앉지도 못했고 자기 이름은 샤를이 아니라 조르주라고 하는가 하면, 함께 아이를 열둘이나 낳은 아내를 보고 저 여자는 누구냐고 묻기도 하고 자신은 왕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탓에 샤를은 국민의 사랑을 받는 ‘친애왕’이 아니라 ‘광인왕’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차라리 계속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면 도리어 나았을 수도 있을 텐데, 그가 정상과 정신 질환 상태를 계속 오갔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 얼마나 괴상한 행동을 하는지 잘 알고 있던 샤를은 수치심에 “이 중에 내가 겪는 지독한 병에 연루된 자가 있다면 부디 나를 더 이상 괴롭히지 말고 죽여다오!”라고 소리치고는 했다고 합니다.

왕이 정신병으로 인해 나라를 제대로 통치하지 못하자 신하들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파벌싸움을 벌였고, 이는 왕의 사망 후에도 계속되어 역사에 수많은 싸움과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샤를 6세가 앓았던 정신병은 자식들에게도 물려 내려갔고 특히 그의 손자에게 유전되어 또 다른 역사의 줄기를 바꾸어놓게 됩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만나보아요.

이주은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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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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