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역하는 의사들
부역하는 의사들
  • 서민(의예) 교수
  • 승인 2018.11.14 15:28
  • 호수 14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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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의사에게도 인성은 필요하다
▲출처: 장병완 의원실
▲출처: 장병완 의원실

 

2018년 5월 30일 밤, 대기업 직원이던 김 모(38) 씨는 택시를 타고 귀가하는 중이었다. 경기도에 있는 대기업에 다니던 그에겐 교사 아내와 9살짜리 아들, 그리고 5살짜리 딸이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날 밤 가족을 만나지 못했다. 혈중알코올농도 0.176%로 만취 상태였던 노 모(27) 씨가 자신의 벤츠 승용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역주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 씨의 차는 하필이면 김 씨가 탄 택시를 정면으로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김 씨는 그만 현장에서 사망하고 만다. 난데없는 사고에 김 씨의 가족들은 풍비박산이 났다. 가해자를 처벌한다고 해서 남편이 살아 돌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엄한 처벌은 남은 가족들의 마음을 조금은 위로해 주며, 사람들이 음주운전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해 추가적인 피해를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노 씨에 대한 구속영장은 법원에서 기각됐다. 노 씨의 몸이 좋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사실 노 씨는 별로 다친 곳이 없었다. 비싼 차인 벤츠의 위력이겠지만, 손목과 골반을 약간 다친 게 고작이었다. 하지만 의사는 그에게 8주 진단과 더불어 병원에 입원해 있어야 한다는 소견서를 제출했는데, 이는 법원이 구속영장을 기각한 이유였다. 피해자 가족이 정신적 고통으로 신음할 때, 노 씨는 병원에 누워 있었다. 그래도 시간은 점점 흘러갔고, 약속한 8주가 다 됐다. 하지만 노 씨는 구속되지 않았다. 의사가 그에게 추가로 3개월의 입원이 필요하다는 소견서를 써줬기 때문이었다. 입원 도중에 노 씨의 병세가 악화하기라도 한 것일까? 그럴 것 같진 않다. 문제는 노 씨가 말한 대로 소견서를 써준 의사였다. 결국 구속되긴 했지만, 자신이 배운 의학적 지식을 내팽개친 채 범죄자에게 부역한 그 의사로 인해 피해자 가족들은 3개월을 더 고통 속에서 살아야 했다.

위 의사가 좀 극단적인 경우이긴 하지만, 비양심적인 의사들은 의외로 많다. 민간보험사는 되도록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 보험사들이 최근 찾아낸 것이 비양심적인 의사들이었다. 공사 현장에서 일하는 박 모 씨가 공사장에서 일어난 사고로 양쪽 발목이 마비됐다. 당연히 보험금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보험사는 의사에게 자문했고, ‘부상이 심하지 않다'는 소견서를 받아낸 뒤 보험금을 주지 않았다. 물론 보험으로 사기를 치는 이들이 많으니 신중해야 하는 것은 맞지만, 문제는 해당 의사가 환자를 보지도 않고 보험사가 내민 자료만 보고 소견서를 작성한다는 데 있다. 이렇게 한다면 보험회사의 의도대로 소견서가 만들어질 확률이 높지 않겠는가? 의사들이 협조적이어서 그런 것이겠지만, 이런 류의 의료자문은 나날이 늘어나고 있어서, 2014년 5만여 건에 불과하던 의료자문은 2017년 9만여 건으로 급증했다. 유리한 소견서를 등에 업은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 지난해 의료자문을 했던 건수의 절반에서 가입자가 보험금을 받지 못했다. 그 의사들은 고액의 자문료를 챙기는 데 바쁜 나머지 보험금 지급을 거절당해 괴로워할 수많은 가입자를 생각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의사의 인성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우리 학교 의대에서도 인성과 관련된 과목이 여럿 만들어져 있다. 하지만 인성은 가르쳐서 되는 건 아니며, 많은 사람의 운명을 의사의 인성에 맡기는 것도 좋은 방법은 아니다. 의사의 부역을 막을 법과 제도의 완비가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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