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 없는 공론장, 외면받는 화자들
참여 없는 공론장, 외면받는 화자들
  • 손나은·한예은 기자
  • 승인 2019.04.03 22:49
  • 호수 14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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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내 35개 대학 가운데 8개교는 총학생회가 존재하지 않는다. 교내 공식 기구 중 가장 주체적으로 학생자치를 이끌어갈 수 있는 기구가 실종된 것이다. 이는 곧 청년 세대의 대학 사회에 관한 무관심을 가시화하는 증거로 학생 자치에 경보를 울렸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현재 20대는 이전 세대와 비교하면 사회에 관심이 많고 적극적이라는 진단을 받고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통계에 따르면 20대 투표율은 2012년 대선 당시 65.7%였지만, 2017년 대선에 이르러서는 74.9%로 증가해 30대 투표율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이는 최근 10년 내 가장 높은 수치로 청년층의 사회관심도가 상승했음을 증명한다.

이처럼 대학생의 사회 참여율이 점차 높아지고 있지만 정작 교내 자치에서만큼은 예외다. 학생들은 어떤 이유로 교내 자치를 외면하게 됐을까. 대학생의 상반되는 태도 속 학생 자치에 대해 점검해봤다.


# 대학 내 자치 기구 알아보기
우리 대학은 구국·자주·자립의 창학이념을 바탕으로 학생 자치 기구를 운영하고 있다. 현재 우리 대학에서 운영되는 학생 자치 기구로는 총학생회, 총대의원회, 동아리연합회 등이 있다. 총학생회는 대학에서 학생을 대표하는 기구로서 자체에서 수립하거나 대의원 회의에서 결정된 사업을 집행한다. 총대의원회는 학생 의결 기구로, 학생들의 여론을 수렴해 모든 학생 자치 기구의 올바른 정책과 노선을 견지할 수 있도록 견제 및 감사를 시행하기 위한 조직이다. 동아리연합회는 각 동아리의 운영을 보좌하고 민주적 의사결정 및 집행을 위한 자치 기구다.

이 중 학생사회의 중심인 총학생회는 1948년 한남동 캠퍼스에서 ‘학생회’를 조직하며 시작됐으며, 이것이 바로 우리 대학 최초의 학생 자치 기구였다. 그러나 계속된 정부의 억압으로 그 명맥을 이어가지 못하다 1967년도 ‘총학생회’로 명칭을 변경하며 운영됐다. 이후 비상계엄으로 인해 총학생회에 정부가 개입하는 학도호국단 체제로 바꼈으나 재학생의 반발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1985년 3월 총학생회가 부활하게 됨으로써 재학생이 학내 자치의 주도권을 되찾게 됐다.


#공론장 밖 가득한 목소리, 정작 비어있는 공론장
그러나 현재 총학생회는 존립조차 힘든 상황이다. 3년 연속 총학생회의 공백을 겪고 있는 연세대학교 이민상(사학·2) 씨는 “작년 캠퍼스 일원화 논란 당시 총학생회가 없어 비상대책위원회 차원에서 대처했지만 처리에 어려움이 많아 총학생회의 부재를 크게 느꼈다”며 “학생들을 위해서는 총학생회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우리 대학도 총학생회 부재 위기를 마냥 외면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지난 5년간 양 캠퍼스 모두 총학생회 투표율이 절반을 넘은 적이 없으며, 단일후보 출마의 경우 유효투표율인 33.3%를 넘기지 못해 투표일을 연장하는 경우도 빈번했다. 이에 대해 구교남(토목환경·3) 씨는 “학생 자치 기구를 잘 모른다는 점이 참여도 저하와 연관이 있다”며 “관심이 없는 학생은 학생 자치 기구가 큰 영향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총학생회의 영향력이 미미하다는 문제를 지적했다.

하지만 과연 학생 자치에 대한 재학생의 참여율이 적은 이유가 단순히 총학생회의 영향력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까. 한국일보에서 지난 2월, 대학생 51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대학 사회 관련 설문조사에서 ‘총학생회가 일상에 영향을 미친다’고 응답한 대학생은 303명으로 절반을 넘겼다.

한편 작년 ‘중앙선데이’와 수도권 13개 대학 학보사가 연합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총학생회에서 활동할 의향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은 약 13%에 불과했다. 대부분의 대학생이 총학생회의 활동에 대한 중요성은 인지하고 있지만 직접 행동하는 일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중요성은 알고 있지만 행동하지 않는 모순적인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대학 사회 문제점을 다각도로 진단하다
1987년도 학생운동을 시작으로, 과거 우리 대학 자치는 민주화라는 목표 아래 재학생을 공동체로서 존립하게 했다. 학생사회에 학생운동이 중심으로 작용하며 단일성을 유지한 것이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선 대학의 탈정치화는 학생사회를 더는 하나로 엮지 못했다.

이에 대해 청년 담론 김창인(29) 대표는 “단일 대학에서 학생의 단결력이 떨어진다는 점과 어떠한 의제에 관해 대학 간의 연합이 쉽지 않아 단결력이 떨어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제는 학생회가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할 만한 시스템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들의 요구를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조직과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앞서 논의된 바와 같이 현재는 단일성보다는 다양성을 존중하며 인권국, 여성국 등의 부서 세분화를 추진하게 됐다. 학생 복지에 노력을 쏟으며 재학생의 편의를 우선으로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는 곧 재학생에게 학내 자치 기구로서 대의를 호소하지 못하는 역풍이 돼 총학생회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이에 죽전캠퍼스 박원엽(커뮤니케이션·4) 학생회장은 “총학생회는 정책적인 부분과 복지적인 측면을 조율해 안건을 진행해야 한다”며 “학생들이 직접적으로 총학생회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는 부분은 주로 복지행사이지만 그 이외의 교육, 학사 관련 정책에도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소외 없이, 와해 없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학생사회
우리 대학 임재형(정치외교) 교수는 대학의 존립 근거 및 역할이 왜곡됐다는 점을 지적하며 “시대적으로 취업난이 심한 지금, 학생들이 학생 자치 기구나 동아리에 참가하는 것을 시간 낭비라고 여기게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대학이 학문연구와 진리탐구라는 교육 기관이 아닌 직업인을 양성하기 위한 직업 교육의 장으로 전락했기에 학생사회가 응집력을 갖지 못한 채 외면받게 됐다는 것이다.

대학연구네트워크 고준우(24) 대표는 “대학 자치는 대학의 삼주체 중 거의 전적으로 학생에게 부여된 작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학생자치가 잘 되려면 정치적인 상호작용을 촉진하기 위한 질문을 던져야 하고 실천해 학생들이 변화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며 “학생자치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대학을 삶의 현장으로 느낄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또한 천안캠퍼스 김용덕(산업공‧4) 학생회장은 “학생과 학교의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기 위해 교수와 교직원, 더 나아가 자치기구 모두가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며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교내 정책 수행을 위한 큰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현재 학생 자치는 보는 이에 따라 다르게 진단됐지만, 공통적으로 재학생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다” 지난 27일 죽전캠퍼스에서 열린 전체학생총회에서 한 재학생이 외친 말이다. 이 말에 당당해질 수 있도록, 지금 우리는 학생 자치를 증명해야 할 시점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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