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보다 중요한 이별, 또 다른 의미의 사랑
만남보다 중요한 이별, 또 다른 의미의 사랑
  • 최은지·안서진 기자
  • 승인 2019.05.08 00:06
  • 호수 14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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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려동물 장례식
▲ 반려동물의 장례식이 진행 중이다

Prologue


가히 반려동물 천만 시대다. 우리나라 국민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반려동물을 키우는 시대인 셈이다. 그러나 높아진 관심과 달리 농림축산검역본부에 등록된 고정형 동물장묘업체 현황은 33개로 장묘시설은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의 합법적인 장례 방법은 세 가지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기, 폐기물 소각장을 통해 소각하기,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통한 장례 치르기. 누가 사랑하는 가족을 쓰레기나 폐기물로 여기고 싶을까. 그러나 죽은 반려동물을 땅에 묻고 싶어도 이는 폐기물관리법에 의해 불법으로 간주된다. 그래서일까. 사랑하는 가족의 마지막인 장례를 제대로 치러주기 위해 전국에 몇 되지 않는 반려동물 장례식장 중 하나인 ‘에이지펫’에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계속되고 있다. 이에 본지는 지난 2월, 반려동물을 떠나보내는 가슴 아픈 현장을 동행 취재했다.


#반려동물 장례식장에 가다

올해 우리나라에 정식 등록된 동물 장례 업체 33개 중 하나인 에이지펫을 방문하기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를 찾았다. 얼핏 보면 대형 할인매장 같기도 한 분위기 속에서 반려견과 주인이 그려진 사진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밝게 웃고 있는 강아지와 주인을 그린 일러스트가 이곳이 반려동물과 관련된 장소임을 깨닫게 한다.


‘장례식장’이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 때문일까. 선뜻 문을 열고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몇 분쯤 문 앞에서 서성거리던 기자를 보고 관계자가 나와 말을 건넸다. 얼떨결에 직원의 안내를 받아 들어간 장례식장.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소파에는 장례식을 기다리는 가족들이 앉아 있었다.


1층에는 가족들을 위한 대기공간과 장례 시설들이 마련돼 있었다. 2층에 올라서자 반려동물들의 물품이 가득한 추모실과 납골당에는 슬픈 공기가 감돌고 있었다. 납골당 한 칸씩 자리 잡은 강아지들의 사진과 꽃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담고 있는 듯했다.

▲ 추모실에서는 반려동물의 물품과 생전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 사랑하는 가족과의 이별

오늘의 첫 번째 장례는 오전 11시에 시작됐다. 바로 A 씨가 키우던 16살 시츄의 장례식이다. 시츄 ‘짱아’는 나이가 많은 노견이었지만 평소 산책을 좋아해 규칙적인 운동을 꾸준히 하던 강아지다. 그렇게 건강한 줄만 알았던 짱아가 지난 새벽 숨을 거뒀다. 최근 1주일 동안 밥도 제대로 못 먹고 물 마시는 것조차 힘들어 하던 것이 강아지가 보낸 신호였다.


그렇게 하루하루 불안한 밤을 보내던 중 결국 짱아는 한 마디의 비명을 남긴 채 죽었다. 16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함께한 자신의 반려를 위해 장례식을 치러주기로 한 A 씨는 “이렇게 마지막을 잘 보내줘서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할 수 있었다”며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심경을 밝혔다. 그녀의 눈은 밤새 얼마나 울었는지 짐작도 하기 힘들 정도로 퉁퉁 부어있었다.


# 장례를 치러주는 사람들

이와 같은 장례식을 포함해 에이지펫을 이끄는 조영두(53) 단장은 2011년부터 수백 번의 장례를 치러왔다. 지난 9년간 강아지, 고양이, 심지어는 고슴도치의 장례식까지 치러봤던 그는 수백 수천 번의 장례식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례로 70세 가까이 되신 할머니가 키우던 강아지 장례식을 꼽았다. 조 단장은 할머니에 대해 “젊어서 남편을 잃고 딸이 출가한 후 16년 정도 강아지와 함께한 분이셨다”며 “그분께 강아지는 남편이자 자식 그 이상을 의미하는 존재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루에도 이러한 장례를 2~3번 정도 치러야 하는 그는 자기 일에 보람을 느낀다고 말한다. 반려동물의 사체를 잘 처리해주고 유족들이나 보호자들의 슬픈 마음을 달래주는 것이 바로 그와 에이지펫 관계자들의 임무다. 또한 상상할 수 없는 슬픔을 겪고 있을 보호자지만 너무 슬픔에만 잠기지 않도록 누군가가 말도 걸어주고 어떤 추억이 있었는지 물어봐 주는 것이 실제로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 국내 반려동물 장례식 실태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 장례 업체는 33개뿐이다. 한 해 발생하는 반려동물의 사체가 68만8천여 마리임에도 불구하고 이토록 동물 장례 업체가 적은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이유는 님비(NIMBY)현상이다. 님비현상이란 ‘내 뒷마당에서는 안 된다(Not In My Back Yard)’의 약자로 위험시설이나 혐오시설 등이 자신이 속한 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하는 시민들의 행동을 일컫는다.


실제로 지난 2017년 대구에서 화장장을 갖춘 동물장례식장 건립 문제를 놓고 업체와 지역 간의 입장 차이가 팽팽하게 맞섰다. 연면적 632.7m, 지상 2층 규모의 동물장례식장을 강력히 반대하는 주민들에 의해 소송까지 가게 됐고 결국 주민들의 승소로 동물장례식장은 건립되지 못했다. 이외에도 우리나라 곳곳에서는 여전히 동물화장장 설치 반대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 동물장묘업의 차가운 현실

우리나라에서 동물장례식장은 혐오시설로 인식되기 때문에 지역주민들은 동물장례식장이 자신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들어서는 것을 반대한다. 주민들의 반대 때문에 사립으로 동물장례식장을 세우기는 쉽지 않은 일이라 지자체 차원에서 나서기도 하는데 그마저도 쉽지 않은 실정이다. 실제로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공공 동물장묘시설 설치지원 공모사업을 통해 경남 김해시와 전북 임실군 2곳을 대상지로 선정했으나, 김해시의 경우 대상 지역주민들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허가를 받기 위해 소송까지 가게 되면 2~3년 정도 걸린다. 이렇듯 개발행위의 허가를 받아내기는 어려운데 시설은 투자해놨고, 시간도 오래 걸리니 정식으로 등록하지 않고 불법으로 운영하는 업체들이 많다. 그러나 불법인 곳을 이용했다고 해서 고객들이 직접 과태료를 내는 게 아니다. 그러다 보니까 불법 업체라도 저렴하고 깔끔하게만 진행되면 상관없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러한 불법 업체들을 이용한다. 불법업체가 적발될 경우 사업자들한테만 500만원 이상의 벌금이 부과될 뿐이기 때문이다.


#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늘어난 만큼 반려동물 장묘시설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동물장묘문화 활성화를 위해서는 지자체의 노력뿐만 아니라 지역주민과 업체의 갈등, 님비현상을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 그중에서도 인식의 변화는 가장 먼저 개선돼야 할 문제다. 과거에는 인간이 주로 즐거움을 누리기 위한 대상으로 사육하는 동물을 일컫는 ‘애완동물’이라는 단어가 사용됐다. 하지만 요즘은 사람과 더불어 사는 동물을 뜻하는 ‘반려동물’이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그만큼 이제는 동물을 더이상 인간의 즐거움을 위한 것으로 여길 것이 아니라 함께 생활하며 정서를 나누는 가족으로 생각해야 할 때이다.


Epilogue

가족처럼 사랑하는 반려동물이 죽은 뒤 경험하는 상실감과 우울 증상을 말하는 ‘펫로스 증후군(Pet loss syndrome). 펫로스 증후군은 주로 반려동물을 좀 더 잘 돌보지 못했다는 죄책감, 반려동물의 죽음 자체에 대한 부정, 죽음의 원인(질병, 사고)에 대한 분노, 그리고 슬픔의 결과로 오는 우울증 등을 겪는 현상을 일컫는다. 그러나 누군가 만남보다 이별이 더 중요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죽은 반려동물을 잘 보내주는 것도 또 다른 의미의 사랑이다. 잘 키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반려동물과의 마지막 역시 중요하기에 아름다운 이별이 될 수 있도록 건강한 이별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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