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례법 마련과 형법 개정 사이의 갈등
특례법 마련과 형법 개정 사이의 갈등
  • 이다현
  • 승인 2019.09.17 09:21
  • 호수 146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요시선 50. 장애인학대처벌 특례법

● [View 1] 학대를 받은 장애인의 가족

우리 아들은 지체장애인이다. 지적장애와 신체장애를 모두 가지고 있어 일상적인 생활에 어려움이 많다. 따라서 사회성을 길러주기 위해 다른 장애인과 어울리며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시설에 보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아들이 불법으로 전단지를 뿌리다가 잡혔다는 경찰의 연락을 받았다. 알고 보니 그 시설에서는 아들과 같은 지체장애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고 있었다. 심지어 시설 CCTV 확인 결과 신체적·정신적 학대의 정황도 보였다.

이에 나는 `장애인의 신체에 상해를 입히거나, 장애인을 폭행·협박·감금 그밖에 정신상 또는 신체상의 자유를 부당하게 구속하는 수단으로써 장애인의 의사에 어긋나는 노동을 강요할 시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7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는 현행 장애인복지법을 찾아내 해당 시설을 고소했다. 하지만 지체 장애가 있는 아들이 ‘장애인의 의사에 어긋나는 노동’을 강요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란 쉽지 않았다.

가정폭력, 아동폭력 등 다른 영역은 특별법을 통해 체계화된 대응과 가중처벌, 피해자 지원의 근거 등이 비교적 풍부히 마련돼있다. 반면 장애인 학대는 타 영역보다 오히려 더 특수한 성격을 가짐에도 장애 특성을 반영한 별도의 법체계를 가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 답답했다.

현재 제정된 법이 아들을 보호할 수 있는 정도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장애인 학대 범죄를 규정해 가중처벌할 수 있는 ‘장애인학대처벌특례법’ 제정이 필요하다.

● [View 2] 장애인 피해자의 재판을 맡은 판사

나는 이번 재판에서 장애인 피해자의 재판을 맡았다. 이번 사건에서 시설 측에서 피해자를 학대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자료는 있었지만, 동의 없이 노동력을 착취했음을 밝힐 수 있는 증거가 없어 그 부분을 제외한 처벌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판사로서, 이 사건에서 특례법 마련이 필요했다는 점은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특례법에 의존할 수는 없다. 주체별로 따로 법률을 제정하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든다. 본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특례법 제정보다는 장애인복지법 개정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현재 국회에 발의된 장애인복지법 개정안에는 진술 조력인, 학대 피해 장애아동 전용 쉼터, 가중처벌 등 특례법을 대체할 내용이 많다. 특례법은 많은 상황에서 꼭 필요한 요소지만 신중해야 한다. 형사사건에 관한 해결의 준거법은 기본법인 형법에 따라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200여개의 양산된 특례법에 의존하는 기형적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례법에 의존하게 되면 형법을 해치게 된다.

범죄의 해결책을 특례법 마련에서 찾다보니 특례법으로 채워진 법 체계 속에서 형법을 개정하기란 더 어려워졌다. 차분하게 현행법의 문제점과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을 우선적으로 개선해 나가면서 그럼에도 해결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특례법을 사용해야 한다.

※실제 사례를 재구성한 내용 입니다.

● [Report]

지난 7월 22일, 국회의원회관 제2세미나실에서 ‘장애인 학대 가해자 처벌 강화와 피해자 지원 방안 토론회’가 개최됐다. 토론회에서는 장애인 학대 범죄를 규정해 가중처벌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견과 기존 법 개정부터 해결하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엇갈렸다.

장애인 학대는 이미 오래전부터 사회적인 문제가 돼 왔다. 최근 서울 노원구 소재에 한 사찰에서는 장애인이 30년 넘게 노동력 착취와 폭행, 명의도용 등의 피해를 본 사건이 발생한 바 있다. 지난해 장애인권익옹호기관에 신고, 접수된 학대 의심 사례는 1천 828건에 달하며, 노동력착취 사례는 총 27건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이슈에도 불구하고 아직 근본적인 대책은 제대로 마련되지 못해 가해자들은 집행유예로 풀려나는 경우가 많다. 또한 피해자는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사후 지원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유사 사례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특례법이 제정되면 현재 장애인복지법상 ‘학대’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학대 범죄를 지정할 수 있으며, 구체적인 내용을 신설해 장애인에 대한 인권침해의 법적 범주를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기존 제정된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피해자들을 모두 포괄할 특례법을 제정하면 형법을 해치는 기형적인 구조는 더욱 악화될 것이다.

특례법 제정을 줄여 피해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지만 기존의 형법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의 해답을 특례법에서만 찾아서도 안 된다. 기형적인 법 구조를 개선하려면 모든 주체와 상황을 포용할 수 있는 법안 발의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다현
이다현 다른기사 보기

 gracodms@dankoo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