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해가는 학원가 풍경
변해가는 학원가 풍경
  • 박상엽·노효정 기자
  • 승인 2019.09.25 23:53
  • 호수 14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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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구열의 메카 대치·강남·노량진을 조명하다

 

Prologue
OECD 주요 회원 23개국의 성인(25~64세) 학력 수준을 비교한 결과 한국은 부모 세대보다 자녀 세대 학력이 높거나 같은 경우가 96%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의 특성과 자녀 세대에게 가난을 물려주지 않으려는 부모 세대의 강한 의지가 교육열에 반영된 결과로 볼 수 있다. 현재 그 어느 세대 보다 높은 스펙을 보유하고 있는 대한민국 청춘의 이면에는 대한민국의 높은 사교육이 있다. 우리나라 사교육을 대표하는 학원가 대치, 강남, 노량진을 방문해 오늘도 쉼 없이 달리고 있는 청년들의 발걸음을 조명해 봤다.


대한민국 입시 ‘명가’ 대치동

# 입시의 중심에서 대치동을 외치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이 이어져 오듯,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교육에 대한 열정과 집착이 컸다. 현재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교육 열기의 중심에는 대치동이 있다. 대치동은 강남 8학군을 대표하는 지역으로 단대부고, 휘문고, 경기여고 등 소위 명문고라 불리는 학교가 위치한 지역이다. 이와 더불어 과외가 전면적으로 허용된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대한민국 입시의 명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이러한 대치동의 명성에 수많은 맹모는 자녀들의 입시를 위해 대치동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대치동은 원룸 단기 임대가 다른 지역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며 자녀들의 입시를 위해 7, 8월 방학 시즌에 맞춰 단기 임대를 구하는 부모들이 많다고 밝혔다. 

# 전문가의 시선에서 대치동을 바라보다
본격적인 대치동의 분위기를 알아보기 위해 대치 로고스 논술 강사 조경미(36)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조 강사는 “학구열의 사전적 의미를 그대로 본다면 요즘 학생들은 공부하고자 하는 열의, 연구하고자 하는 열의는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또한 직접겪은 현장 분위기를 언급하며 “하지만 학구열을 대학에 가고자 하는, 입시에 대한 열정으로 본다면 과열돼있는 것이 맞다”고 전했다. 이와 더불어 조 강사는 “거제도, 여수 등 부모들이 새벽같이 올라와 자녀를 데리고 주말 학원 투어를 다니고 있으며, 작년의 경우 제주도에서 매주 주말마다 올라오는 학생도 있었다”며 전국 각지에서 대치동 학원가로 학생들이 찾아오고 있음을 알려줬다. 한편 이러한 현상에 대해 조 강사는 “부모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학원 강사들에게 희망을 간구하고 있다”며 “학교에 대한 불신으로 인해 더 많은 정보를 찾아 대치동으로 몰려들고 있다”고 과열된 입시 사회에 관해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 학구열 과열이 불러온 대치동의 반작용 ‘교통 문제’
과열된 학구열로 인해 대치동은 평일, 주말할 것 없이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인다. 부동산 관계자들은 대치동을 7일 상권으로 분류해 조명하고 있지만, 밤만 되면 교통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대치동은 학원가가 문을 닫기 시작하는 밤 10시를 기점으로 근처 사거리 일대에 교통대란이 찾아온다. 이에 교통관리를 담당하고 있는 모범기사 박기만(71) 씨는 “학원이 10시에 일제히 끝나기 때문에 이 시간에 자녀를 데리러 온 부모들로 인해 교통량이 급증하고, 갓길에 차를 정차하는 부모들 때문에 교통체증이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며 교통대란의 근본적 원인을 지적했다. 이와 더불어 박 씨는 “이러한 혼잡한 교통 속에 학생들이 안전에 위협을 받고 있다”며 “작년 4월부터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 교통 단속에 나서고 있다”고 이야기해줬다. 가방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입시의 무게가 그들을 누르고 있기 때문일까. 대치동의 밤거리는 어지럽고 난잡했으나 학생들은 분주함을 느낄 여유조차 없어 보였다.

 

 

명함을 내밀기 위한 필요조건 ‘어학’, 외국어 학원의 ‘메카’ 강남 

# 외국어 학원의 메카 강남을 살펴보다
입시의 중심이 대치라면 성인 어학원의 메카는 강남이다. 강남역에서 나와 큰 골목으로 들어가니 많은 어학원이 높은 빌딩에 자리 잡고 있었다. 어학원 근처를 돌아다니며 본 풍경은 고등학교를 방불케 했다. 자신의 몸만큼 큰 책가방을 등에 지고 다니는 사람, 길을 다니며 단어를 외우고 있는 사람들은 서로 구분가지 않을 정도로 일관된 모습이었다. 또한 유리 너머로 보인 어학원 로비에는 빼곡하게 자리가 차 있는 자습실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기자가 잠시 쉬기 위해 어학원 앞에 설치돼있는 벤치에 앉아있는 동안에도 옆자리 벤치에 앉아있던 학원생은 공부가 한창이었다. 학원과 반마다 분위기가 다르다곤 하나, 한참 청춘일 나이에 저렇게 필사적으로 공부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졌다.

# 취업과 어학원의 연계성
어학원에서 취업을 위해 토익·토플 등의 어학을 준비하는 이들의 목표 성적은 어느 정도일까.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2017년 신입직 1천375명 대상으로 조사한 ‘천대 기업 신입직 합격 스펙 분석’에 따르면 신입직 토익 평균점수는 842점, 영어 말하기 점수 보유자는 전체의 64.8%, 제2 외국어 점수 보유자는 전체의 8.5%로 나타났다. 이외에도 대부분의 기업은 필수적으로 토익 점수 제출을 요구하거나, 최소 점수의 기준을 제시하기도 한다. 공기업을 토대로 살펴보면 올해를 기준으로 공기업 중 토익 최소 점수가 가장 낮은 곳은 전력거래소로 600점을 요구했고, 가장 높은 최소 점수는 한국조폐공사에서 요구한 850점이었다. 하지만 사실상 이는 형식적인 기준에 불과하며 사기업은 해당되지 않는다. 따라서 취업 시장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높은 점수를 제출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생긴다. 남들을 앞서야 한다는 생각에 휩싸여 학원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 우리 대학 학우들이 생각하는 어학을 들어보다
본지가 우리 대학 4학년 2학기 재학생 2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20명의 학생 중 19명이 어학원에 다닌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어학원에 가는 가장 큰 이유로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공부하기 위해서’라고 응답했다. 주동원(경영·4) 씨는 “학원에서의 체계적인 학습 방법과 주변 학우들의 학구열이 단기간에 성적을 향상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된다”며 학원을 찾는 이유를 설명했다. 이와 더불어 어학원의 체계적 시스템을 설명해 줬는데 “어학원을 가면 수준별 반을 나눠주고, 각 목표점수에 맞게 전략을 세워주기 때문에 바쁜 취업 준비생들에게 어학원은 매력적 선택임이 틀림없다”며 취업 준비생들이 어학원을 찾는 상황을 토로했다.    

 

 

무너져 가고 있는 공시생들의 ‘성역’ 노량진

# 노량진의 거리를 조명해보다
9호선을 따라 마지막으로 도착한 노량진.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풍기는 바다의 향기, 저 멀리 여의도 공원에 보이는 63빌딩. 볼거리와 먹거리로 가득 차 보이는 이곳은 역설적으로 공시생들의 성역이라 불린다. 한 때 ‘노량진 유학길’이라 불리며 노량진을 빽빽이 매웠던 수험생들. 그러나 지금 노량진은 어딘가 적막함이 흐른다. 한국직업개발능력원이 발표한 연도별 공무원 시험 준비자 추이를 살펴보면 지난해 공무원 준비생 수는 2017년 대비 2만6천명이 감소했다 밝혔다. 이것이 원인이었을까 노량진의 점심시간, 강의가 끝난 시간임에도 거리는 한적하다. 거리에는 건물임대라는 현수막이 하나둘 보인다. 학원들이 사라진 거리 한편에는 학업과는 이질적으로 보이는 거리의 간판들이 즐비하다. 학원들 주변 노래방, 당구장, 포차 등 다양한 놀거리와 즐길거리가 거리 곳곳을 채우고 있었다.  

# 노량진역에는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는다
동영상, SNS 등의 발달로 인해 공시생을 위한 강의도 온라인으로 점차 확장되고 있다. 이에 수험생들은 굳이 공시 준비를 위해 노량진으로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러한 실정과 맞물려 공무원 학원들도 노량진을 떠나 타지에 분점을 내는 추세이기에 노량진을 찾는 학생들의 발걸음은 더욱더 드물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경찰 공무원을 준비 중인 최장훈(27) 씨는 “노량진에서 현장 강의를 듣는 것보다 인터넷 강의와 독서실을 이용하는 것이 훨씬 저렴하다” 또한 “최근 현장 강의를 실시간으로 인터넷 통해 볼 수 있게 돼 더욱 노량진에 갈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며 공시생들이 노량진을 떠나고 있는 이유를 지적했다. 이처럼 공시생들이 줄어드는 상황 속에 최근 노량진의 슬럼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노량진 인근 부동산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노량진으로 오는 공시생들이 줄어들어 방이 남아돌고 있어 월세가 10만원 이상 떨어진 집도 있다”며 “역이나 번화가가 위치한 곳이 아니면 사실상 빈집이 대다수”라며 노량진 쇠퇴에 대한 우려를 내비쳤다. 

 

Epilogue
취재 후, 숨 막히는 학원가를 벗어나 노량진과 가까운 여의도 공원을 방문했다. 고즈넉한 가을밤의 정취를 느끼고 있는 수많은 사람, 그 옆에 자태를 뽐내고 있는 이름 모를 아름다운 꽃들이 기자의 눈에 띄었다. 어디서 왔고, 어떻게 자랐는지 알 수 없는 들꽃들. 문득 대한민국의 청년들이 바로 이 들꽃이라 생각했다. 들꽃이 아름다운 이유는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힘들게 꽃을 피워냈기 때문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학업의 고충을 견디고 있는 청년들도 그와 같다. 지금도 보이지 않는 학업의 자리에서 만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그들이 있기에 내일의 찬란한 대한민국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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