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박, 오락과 중독 사이의 위태로운 줄다리기
도박, 오락과 중독 사이의 위태로운 줄다리기
  • 이도형·박예진 기자
  • 승인 2019.11.06 10:22
  • 호수 14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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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원랜드 카지노 및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 카지노 내의 화려한 도박 테이블
▲ 카지노 내의 화려한 도박 테이블

Prologue

‘올인(All in).’ 가진 모든 돈을 거는 주인공의 행동은 여유로움이 가득하다. 기자가 미디어에서 처음으로 접한 도박은 한없이 화려하면서도, 누군가에게는 인생 역전의 기회를 주는 천국이었다. 하지만 도박의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는 뉴스를 접하며 생각이 달라졌다. 미디어는 국내 도박중독의 심각성과 위험성을 지적하며 한순간의 베팅(내기에 돈을 거는 행위)으로 가족과 친구 등 모든 것을 잃은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했다. 확률이라는 불확실성에 의해 생과 사를 오가게 만드는 도박은 기자에게 위험한 외줄타기나 다름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박을 즐기는 사람들의 수는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은 채 꾸준히 유지되고 있다. 사람들이 도박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도박으로 비롯되는 더 큰 사회적 문제를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기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보고자 국내 유일 내국인 출입 카지노 ‘강원랜드’와 도박문제해결을 위해 설립된 정부기관 ‘한국도박문제관리 서울북부센터’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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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랜드 카지노는 왜 합법일까
두산백과를 참고하면, 도박의 사전적 정의는 ‘우연성이 큰 비중을 차지하며 금품을 걸고 승부를 다투는 일’이다. 도박은 바둑·화투·트럼프와 같이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게임부터 기계를 이용한 카지노·복권·경마·소싸움·최근 성행하는 인터넷 도박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우리나라에서 도박을 할 경우 형법 제246조(도박, 상습도박)에 의거해 도박을 한 사람은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며, 상습으로 죄를 범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그러나 이 조항은 ‘일시오락 정도에 불과한 경우’를 예외로 둔다. 따라서 명절에 친척들의 화투 놀이는 불법도박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 일시오락 여부는 시간, 장소, 함께한 사람들, 배팅 액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된다.

앞선 기준으로부터 자유로운 도박 현장이 있는데, 바로 법으로 정해 놓은 ‘합법 도박장’이다. 국내는 강원랜드의 카지노, 한국 마사회의 경마, 복권위원회의 복권 등 단 다섯 곳의 운영 주체만이 합법적 사행산업 운영을 승인받았다. 이중 강원랜드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내국인 출입이 가능한 카지노다. 폐광지역의 경제 회생과 관광산업 육성을 위해 정부와 강원도가 합작해 설립한 강원랜드는 테이블 게임 180대, 슬롯머신 및 비디오게임 1천360대 등으로 블랙잭·바카라·룰렛·포커 등 거대한 게임 규모를 자랑한다.


 
▲ 입장 전 부터 북적이는 사람들
▲ 입장 전 부터 북적이는 사람들

# 조금은 다른 카지노의 시간

지난 8월 13일 강원랜드로 가는 길, 최근 강원랜드 방문객 수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택시 기사 A씨는 “주말에는 5천명에서 1만명까지도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하며 여전히 문전성시를 이루는 카지노 근황을 알렸다.

개장 50분 전, 카지노 앞에는 게이트가 세워지며 분주한 입장 준비가 시작됐다. 중앙홀에는 음악회가 한창이었는데 카지노 개장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건물 안은 사람들로 가득 메워졌다. 카지노 이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위해 사진 촬영은 금지라는 보안관의 설명을 듣는 동안에도 카지노 입장 가능 시간을 물어보는 손님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개장 30분 전, 미리 이용권을 발권하기 위해 매표소에 갔으나 전자 발매기를 비롯한 안내 데스크의 모든 곳에 사람들 줄이 길게 늘어져 있었다. 도착 한시간만에 택시 기사의 말이 실감되는 순간이었다. 매표소 직원에 따르면 일반적인 성수기에는 평균 8천명, 비성수기에도 평균 6천명의 사람이 카지노를 즐기러 오고 있다고 한다. 기자의 입장 번호는 4568. 발권을 마치고 카지노 입구로 향하니 중앙홀부터 게이트 앞을 막아둔 곳 바로 앞까지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개장을 알리는 신호와 동시에 전광판에는 입장 가능 번호가 차례대로 띄워졌다. 기자가 그 순간 느꼈던 감정은 충격이었다. 게이트 바로 앞까지 대기하고 있던 방문객들은 개장과 동시에 성급히 뛰어 들어갔다. 20분도 안 되는 시간 만에 다시 카지노 밖으로 나온 한 방문객은 입구 바로 옆에 위치한 ATM기에서 돈을 새로 뽑기 바빴다. 기자는 ‘사람들이 왜 이토록 서두르는 것인가, 카지노에 입장하는 순간 시간이 몇배속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것인가’라며 자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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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순간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희비
빠르게 지나가는 입장 순서 덕분에 어느새 기자도 카지노로 입성할 수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마주한 카지노는 미디어에서 여러 차례 접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낯섦, 그 자체였다. 게임 머신을 차지한 사람들, 화려한 조명과 대리석이 풍기는 분위기는 기자가 살아온 세상과의 괴리감을 가져다주기 충분했다. 들어가자마자 눈에 들어온 것은 슬롯머신이었다. 숫자와 모양을 일치시키는 슬롯머신 앞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기계적으로 버튼을 누르며 게임을 끝없이 이어갔다. 카드 게임이 운영되는 테이블에는 앉아있는 8명을 비롯해 서서 참여하는 사람들, 뒤에서 구경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게임 참여자들의 손에는 칩이 쥐어져 있었는데, 사람들이 건넨 돈 뭉치를 기계에 넣으니 120만원이라는 금액이 기계 위로 떴다. 한 경기에 쉽게 사용되는 금액을 직접 목격한 순간 하루 동안 카지노에서 이뤄지는 베팅 총액은 기자가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취재를 함께 한 동료 기자는 긴 수색 끝에 발견한 슬롯머신에 앉아 게임을 시작했다. 기자가 시도한 슬롯머신은 오직 확률에만 기대어 버튼을 누르면 게임 조합 결과에 따라 금액이 변동되는 시스템이었다. 그 결과 1분도 안 되는 시간에 만원을 잃게 됐다. 2번째 버튼을 눌렀을 때 2천200원을 얻어 즐거워했던 순간이 무색하게 더 큰 돈을 얻어 보겠다는 기자는 수중의 만원까지 모두 잃었다. 뒤이어 시도한 룰렛 게임 역시 넘어갈 듯 말 듯, 숫자를 가리키는 바늘의 움직임이 끝나니 한칸 차이로 베팅 실패를 알리는 결과만이 남아 있었다. 함께 게임에 참여했던 한 남자는 결과에 따라 칩을 다 잃은 뒤 수심 가득한 얼굴로 자리를 박찼다. 두 게임을 진행한 기자는 “도박이 정말 무서운 것 같다”며 “벌써 눈에 룰렛의 잔상이 아른거린다”고 도박의 중독성을 체감했다.

 
▲ 가로등에 불법 부착된 담보대출 전단지
▲ 가로등에 불법 부착된 담보대출 전단지

# 나만 알고 싶은 도박? 폐쇄성과 중독

기자가 사람들이 도박을 하는 이유를 취재하기 위해 방문객들에게 질문을 건네니 불편한 기색으로 거절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실제 게임을 장시간 이용 중인 사람에게 다가가자, 그는 게임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게임 몰입에 방해된다며 기자에게 호통을 치기도 했다. 인터뷰를 수락한 경우에도 익명이라는 전제하에 ‘재미를 위해’ ‘돈을 따기 위해’와 같은 피상적인 답변만 들을 수 있었다. 이는 도박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지배적인 우리나라의 특성이 잘 나타나는 모습이다. 내부 기계 모습도 촬영이 불가하다는 강원랜드의 입장을 고려한다면 오락성이 강한 문화가 무색하게 느껴지도록 폐쇄적인 성격이 강했다.

강원랜드 머신팀 김도환(42) 씨는 “도박은 게임이고 레저라고 생각한다”며 사람들이 도박을 하는 이유로 오락성을 들었다. 그러나 “과하게 몰입하는 몇몇 사람들로 인해 도박의 순기능이 퇴색돼 아쉽다”고 이야기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KLAC(강원랜드 도박관리센터)에서는 상담 및 다양한 입장 제한 제도 등을 통해 도박중독 예방에 힘쓰고 있다.

도박을 오락 문화로 운영하고자 하는 강원랜드 측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박의 어두운 면은 강원랜드와 멀지 않은 곳에서 쉽게 발견됐다. 전당포가 모여있는 곳으로 가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택시 기사 B씨는 “이 근처에 전당포 골목이 많아 찾기 어렵지 않다”며 가까이 위치한 전당포 사거리로 향했다. 전당포에는 ‘차량 대출, 신용카드, 귀금속’ 등이 써 있었으며 전당포 간판에 ‘대부’라는 표현도 여러 차례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가로등이나 나무에도 ‘신용불량자 가능’ ‘현금 당일 지급’ 등과 같은 위험한 유혹이 깃든 전단이 부착돼 있었다.

 
▲ 건전한 도박을 위해 힘쓰는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 건전한 도박을 위해 힘쓰는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 국내 도박 문제의 현주소 및 대처법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뚫고 사람들이 도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정확히 알아보고자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 서울북부지부로 향했다. 서울북부지부에서 예방치유팀장을 맡은 임정민(44) 씨는 “사람들이 도박을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 스릴과 함께 금전 획득도 추구할 수 있다는 점과 용이한 접근성 때문”이라며 “평소 스포츠 도박 관련 홍보나 불법도박 사이트, 애플리케이션 광고에 수시로 노출되면서 사람들에게 도박이 가벼운 놀이나 문화 정도에 불과하다는 사회적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가 실시한 지난해 조사 결과 도박중독 유병률이 5.4%로 나타났다. 우리나라 성인 인구 중 222만명이 도박중독을 안고 사는 것이다. 작년 의무교육 재학생 청소년 14만명 정도가 도박 중독 문제가 있다고 드러났다. 또 최근 3년 사이엔 20대의 유병률도 6.4%에서 17.7%로 급속도로 증가하며 위험한 상승곡선을 띠는 중이다. 또한 이는 도박이 불법인 나라 중에서 꽤 높은 수준에 속한다.

이에 한국도박문제관리센터는 전국 14개의 지역 센터를 운영 중에 있으며 예방 교육 및 도박중독자 치유 및 재활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중독은 완치 개념이 존재하는 외과적 수술과 달리, 단계적인 회복을 목표로 치료가 이뤄진다. 지나친 승부욕과 주변 유혹에 의한 과도한 투자를 경계해야하며 본인의 운을 과신하지 않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건전한 여가생활을 가지도록 치료를 돕는다. 따라서 도박으로 문제가 생길 경우 전문 기관에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도박중독 회복의 단초가 된다.


Epilogue
승리의 환호성과 실망의 한숨 소리가 뒤엉킨 시끄럽고 복잡한 카지노를 상상했던 기자는 상상 밖의 광경을 마주하고 꽤 놀랐다. 카지노의 내부는 여러 가지 조명으로 반짝이며 너무도 화려했지만, 사람들의 눈동자는 공허함으로 가득했고 초점을 잃은 채 버튼을 누르는 그들은 마치 표정 없는 기계 같았다. ‘오늘은 드디어’, ‘내게도’라는 어두운 희망의 그림자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손엔 돈 뭉텅이가 가득 들려있었다. 기자에겐 입이 떡 벌어질 액수였지만 그들에겐 단지 잭팟행 종이 티켓에 불과했다.

도박의 승패는 한순간에 결정된다. 단 한 번의 버튼과 단 한 번의 룰렛. 그래서 많은 도박중독자들이 이 짜릿한 쾌감에 매료돼 도박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하지만 그들은 깨달아야 한다. 그들이 그 순간을 위해 베팅한 것이 돈 뭉텅이가 아니라 자신의 인생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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