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 끝없는 질문으로 양파를 까다
소크라테스, 끝없는 질문으로 양파를 까다
  • 이준형 칼럼니스트
  • 승인 2020.06.17 19:00
  • 호수 147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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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소크라테스
▲ 소크라테스의 산파술과 비슷한 양파
▲ 소크라테스의 산파술과 비슷한 양파

한때 멕시코 음식점에서 주방 보조를 한 적이 있다. 멕시코 음식에는 코를 자극하는 재료가 많이 사용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주방 사람들을 괴롭히는 재료가 바로 ‘양파’였다. 동선을 줄이기 위해 최소화된 주방 통로(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사장님의 세심한 배려가 돋보였다)에 양파 냄새가 가득 차면, 너도 나도 실연한 사람처럼 눈이 빨개지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 양파라는 놈을 까다 보면 생각나는 철학자가 한 사람 있다. 세계 4대 성인중 한 명이며, 온 생애를 통해 애지(愛知)를 실천한 그분! 그렇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바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다.

양파를 다 까면 뭐가 나올까?

열심히 양파를 까다 보면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양파를 다 까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 우리의 손에 남는 건 자그마한 식칼과 허공 뿐, 양파 껍질 속에는 양파도, 양파 씨도 없다. 소크라테스의 대화법으로 유명한 ‘산파술’ 역시 이 양파와 비슷하다. 산파술은 산파가 아이를 받듯, 끊임없이 대화 상대에게 질문을 던져 결국 상대방이 ‘알고 있는 게 아무것도 없음’을 깨닫게 하는 대화법이다.

‘아니, 그렇다면 대화는 해서 뭐하나? 결국 아무것도 알아낸 게 없는데’라는 생각이 들 때쯤에는 도마 위에 놓인 양파 조각으로 시선을 돌리면 된다. 양파 껍질을 다 까면 아무것도 나오지 않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무수히 많은 양파 조각을 얻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와 대화한 상대방은 질문과 답의 무수한 반복을 통해 최종적으로 내가 무지하다는, ‘무지(無知)의 지(知)’를 깨닫게 된다.

무지, 그다음은 뭐?

그의 제자인 플라톤의『국가』를 보면 소크라테스는 늘 상대방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과정을 통해 소크라테스와 대화 상대는 이상 국가의 ‘정체(政體)’를 만든다. 즉, 무지로 향하는 터널을 지남으로써 보편적 진리와 절대선으로 조금씩 다가감은 물론, 다양한 현실적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무지의 지를 깨달은 것만으로도 그 사람의 앎은 크게 한 걸음 나아갔다고 할 수 있다. 그전까지는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몰랐지만, 적어도 이제는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지의 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양파 조각을 얻었으니 뻔하지 않을까? 지지든 볶든 뭐라도 해서 먹어야지. 별다른 저서도, 특별한 학설도 남긴 것이 없는 그가 여전히 서양 철학의 주요 인물로 분류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서양철학이라는 요리를 위해 양파 조각, 즉 질문하는 법(철학하는 법이라 불러도 무방할 게다)을 남긴 이가 바로 그, 소크라테스이니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죽었다

소크라테스는 죽었다. 알다시피 그는 70세의 나이에 법정에 올라 시민들의 재판을 받고 자신의 손으로 독배를 마시고 죽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그가 끝까지 철학을 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음……. 어쩌면 ‘철학한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겠다. 그럼 이렇게 다시 풀어보면 어떨까? ‘지혜(Sophia)에 대한 사랑(Philos)’을 그치지 않았다고 말이다. 소크라테스는 무수한 질문이 반복되는 우리의 삶을 끝까지 탐구하고 답을 찾으려 노력한 철학자였다. 그리고 그 끝에서 자신의 무지마저 겸허히 인정한 사람이었다.

삶에 대한 끝없는 질문과 끝없는 대답. 심플해가는 것 같지만 갈수록 알 수 없는 시대 속에서, 우리가 소크라테스에게 배워야 할 건 그런 자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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