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태엽을 감아줘야 걸어가는 인형이 아니다
인간은 태엽을 감아줘야 걸어가는 인형이 아니다
  • 송정림 작가
  • 승인 2020.09.09 00:51
  • 호수 147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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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앤서니 버지스의 『시계태엽 오렌지』
▲ ‘시계태엽 오렌지’의 저자 앤서니 버게스
▲ ‘시계태엽 오렌지’의 저자 앤서니 버게스

 

15살의 비행 청소년 알렉스는 친구들과 함께 코로바 밀크바(1950년대 음료를 파는 곳)에 앉아서 그날 저녁에 무엇을 할까 고심한다. 알렉스는 패거리와 거리를 방황하며 아무 이유도 없이 온갖 잔인하고 끔찍한 악행을 일삼는다. 그런 어느 날, 노인을 살해하고 친구들의 배신으로 혼자서 교도소에 수용된다. 죄질이 무거운 그에게 교도소장이 한 가지 제안을 한다. “2주가 지나면 넌 죄수가 아니라 다시 저 넓은 자유 세상에 나가 있을 거야.” 그러면서 서명을 요구한다. “네 남은 복역 기간을 갱생요법으로 대체할 것이라고 쓰여 있어. 서명하겠나?”

그는 루드비코 요법이라는 수술을 받게 된다. 루드비코 요법은, 수술을 통해 인간의 범죄적 속성을 통제하는 것. 그를 찾아온 신부가 말한다. “신은 선 그 자체와 선을 선택하는 것 중에서 어떤 것을 원하시는 걸까? 어떤 의미에서는 악을 선택하는 사람이 강요된 선을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보다는 낫지 않을까?” 그러면서 신부는 침통하게 말한다. “넌 윤리적 선택을 내릴 수 있는 능력을 제거당하겠다는 선택을 한 거야.” 

알렉스는 그가 저지른 범행보다 더 끔찍한 치료 과정을 겪는다. 성분을 알 수 없는 주사를 맞아야 했고, 무시무시하게 끔찍한 범죄 영화를 단 한 장면도 눈을 감지 못한 채 봐야 했고, 혹독한 고문을 당하는 훈련을 받아야 했다. 잔인하고 혹독하고 끔찍한 치료를 통해 알렉스는 점점 악을 저지를 수 없는 몸이 돼간다. 

교육이 끝나고 임상 시험을 하는데, 알렉스에게 어떤 사람이 다가와 그를 때리고 짓밟는다. 하지만 알렉스는 그 어떤 반항도 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의 신발을 핥기까지 하며 그러지 말라고 사정한다. 그 임상 시험을 보며 신부가 말한다. “저 애는 더 이상 나쁜 짓을 하지 않겠지요. 그러나 또한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신의 피조물도 더는 아니지요.” 알렉스는 저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온다. “내가 무슨, 태엽 달린 오렌지란 말이야?” 

이제 악을 행할 수 없는 인간이 돼 출소한 알렉스에게 복수의 손길들이 기다린다. 모두 알렉스가 그전에 저지른 악행에 대한 끔찍한 복수가 이어진다. 그러나 그 어떤 폭력에도 저항하지 못하는 알렉스. 그는 순수한 기쁨으로 채웠던 교향곡이 고통스러운 구토로 찾아오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아파트 창에서 몸을 날린다.

병원에 있는 동안 그는 다시 옛날의 알렉스로 돌아가는데, 선과 악을 선택하는 자유 의지가 가능해진 그는 결혼한 친구를 보면서 자기도 모르게 행복을 느낀다. 일상의 행복이 가장 큰 행복임을 깨닫게 된 알렉스.


때려야 말을 듣는 건 인간이 아닌 짐승도 할 수 있다. 자극을 줘야 알아차리는 것은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도 할 수 있다. 자기 생각을 통해 선인지 악인지 판단하고, 자신의 사유를 통해 선의 중요성을 알고, 자신의 선택을 통해 그 선을 행하는 것, 그것이 인간이 인간다운 점이다.


외부의 힘으로 태엽이 감겨야 움직일 수 있는 수동적인 기계 장치, 그것이 인간이라면 너무 슬픈 일이다. 누군가 태엽을 감아줘야 걸어가는 인형이 아니라 나 스스로 선택한 길을 걸어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선’이어야 한다고 혹독한 청춘의 터널을 통과한 알렉스가 전해준다.

송정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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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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