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의 크기는 제각각이다. 너무 작아서 손에 잘 잡히지 않는 알약부터 손가락 한 마디를 넘는 크기의 약까지 그 크기의 다양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캡슐 역시 작은 것부터 시작해 너무 커서 삼키기 힘들 정도의 크기까지 다양하다. 이쯤 되면 약의 크기와 약효 간에 무슨 상관관계라도 있는 걸까 싶기도 하다.
같은 성분의 약을 비교하자면 물론 사이즈가 큰 약이 상대적으로 주성분 함량이 높을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타이레놀8시간이알서방정의 경우 325mg과 650mg의 크기는 상당히 다르다. 두 약제의 주요 함량은 두 배 차이가 나지만, 크기나 부피는 정확히 두 배라 보기 어렵다. 하지만 사이즈가 큰 650mg의 효과가 더 크다고 할 수는 있다. 단, 그 효과가 2배라고 보기는 힘들다.
이처럼 똑같은 함량의 동일 브랜드 약제의 경우 크기가 커질수록 약효 역시 더 큰 것으로 기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동일 질환에 사용하는, 같은 효과를 기대하는 약제들의 경우에는 사정이 다르다. 당뇨병에 사용하는 메트포르민(Metformin)은 혈당을 낮추는 대표적인 약제다. 일반적인 상용량은 1회 500~1,000mg 수준으로 약제의 크기 역시 큰 편이다. 그러나 메트포르민으로 혈당 수치 조절에 실패하게 되면 2차 약제 중 하나인 글리메피리드(Glimepiride) 성분의 약을 사용하게 된다. 이는 보통 상용량이 2~4mg 수준이며 약제의 크기는 상당히 작다. 하지만 이 작은 글리메피리드 약의 효과가 메트포르민보다 떨어질까? 오히려 혈당을 낮추는 효과는 더욱 강렬해 상당 기간 당뇨병 치료제의 핵심 약제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약제의 함량은 높아지지만, 그 크기는 같은 약들도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쎄레브렉스 캡슐이다. 쎄레콕시브(Celecoxib) 성분의 진통제인 쎄레브렉스는 100mg과 200mg의 캡슐 크기가 동일하다. 그래서 색상으로 구분하지 않으면 함량 자체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다. 크기는 같지만, 약효에는 차이가 있는 이들 약제는 어떻게 봐야 할까?
결국 약의 크기는 주요 약효 성분과 부형제를 섞어서 만들어진 결과물일 뿐 약효와는 명확한 상관관계를 가진다고 볼 수 없다. 약의 크기보다는 주요 핵심성분이 무엇이며, 그 양이 어느 정도 들었는지가 약효를 좌지우지할 뿐이다.
만일 약효가 약의 크기에 비례한다고 했다면, 먹는 항암제의 크기는 무시무시하게 커야 했을 것이다. 약은 크기보다 핵심 내용물이 중요한 것이고, 이걸 얼마나 더 작게 담아내는지가 현대 약 연구에 있어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여러 제약회사에서 약을 좀 더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더욱더 작게 만드는 방법들을 적용하고 있다. 어느 날 평소 먹던 진통제의 크기가 줄어든 것을 경험했다면, 그 약을 만드는 회사가 나름의 노력 끝에 사이즈를 줄인 것으로 생각해도 좋다. 이제는 약의 크기가 작으면서도 강력한 효과를 내는 약제를 만드는 것이 제약회사의 기술이고 가치가 돼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