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처럼 그 역시 외롭다
나처럼 그 역시 외롭다
  • 송정림 작가
  • 승인 2020.11.24 16:02
  • 호수 147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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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카슨 매컬러스의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
▲ 싱어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믹
▲ 싱어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믹

 

1930년대 미국 남부의 한 작은 마을에 귀가 안 들리고 말을 못 하는 두 사람이 함께 살아간다. 싱어(Singer)와 안토나폴로스다. 그들에게 다른 친구는 없었지만, 전혀 외롭지 않았다. 그런데 안토나폴로스가 점점 이상한 범죄 행위를 일삼게 된다. 결국 정신병원으로 떠나는 버스에 오르는 안토나폴로스.


그렇게 친구가 떠나고 외톨이가 된 싱어는 믹 캘리라는 소녀의 집 2층에 하숙을 한다. 믹에게는 음악가가 되고 싶은 꿈이 있다. 그러나 그 꿈이 생생한 만큼 외로움과 절망도 생생했다. 그녀는 2층 계단을 올라가 벙어리 싱어 아저씨에게 꿈을, 절망을, 설렘을, 막막함을 털어놓는다. 싱어 아저씨는 늘 평화롭게 웃어주었고 믹은 마음에 위로를 받곤 했다. 

 

싱어의 주변에는 그렇게 사람들이 늘 몰려들었다. 아내와 심각한 불화를 겪은 남자, 사회의 변화를 꿈꾸는 급진주의자, 흑인들의 불행을 덜어주는 목적으로 살아가는 박사. 그 외로운 사람들은 가슴에 품고 있던 말들을 청각 장애자인 싱어에게 풀어놓기 시작했다. 


싱어는 늘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했다. 주머니에 손을 찌르고 창가의 의자에 앉아서, 고개를 끄덕이거나 미소를 지어서 이해한다는 것을 표시했다. 가끔 생각에 잠긴 표정을 지었다가도 결국은 미소를 지었다. 다만 느렸다. 그뿐이었다. 사람들은 그가 정말 알아듣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몇 번 농담을 던져봤다. 그러면 몇 초가 지나 싱긋 웃었다. 그러다가 우울한 말이 나오면 좀 늦다 싶게 미소가 사라졌다. 싱어의 눈매는 누구도 듣지 못하는 것을 듣는 듯한 느낌을 줬다. 사람들은 차츰 그들이 무슨 말을 하든 싱어가 알아듣는다고 느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치 그가 하느님이라도 된 듯 고해를 하고 고백을 했다. 감정을 그에게 폭포수처럼 쏟아냈다. 그러나 싱어는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저 싱긋 웃거나 슬퍼하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할 뿐. 사람들은 싱어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그가 지어주는 평화로운 미소 속에서 고독과 불행에 맞서 싸울 힘을 얻어갔다.

 

그러나 그에게도 아픔이 있다. 병원으로 간 친구 안토나폴로스가 너무나 그리운 것. 그는 면회 날짜가 되면 친구에게 달려가 그를 보고 오곤 한다. 어느 날 싱어는 그에게 이렇게 편지를 쓴다. “사람들은 모두 바빠. 밤낮없이 일해서 바쁜 게 아니라 마음속의 일 때문에 쉬지를 못해.

 

그들은 내 방에 와서 말을 늘어놓지. 난 사람이 지치지 않고 입을 놀릴 수 있다는 데 놀라곤 해” 그러면서 싱어는 이렇게 그리움을 토로한다. “이제 다섯 달 21일이 지났군. 내내 나는 자네 없이 혼자였어. 다시 자네와 있게 될 날만 꿈꾸고 있어.”

 

싱어는 그 친구의 얼굴만 떠올랐고, 이렇게 고백한다. 다른 건 다 참아도 자네를 그리워하는 마음만은 참을 수 없는 고독이라고. 그 역시 다른 사람들이 쏟아내는 고독의 분량만큼 고독한 존재였다. 다만 말을 하지 못할 뿐, 아니 말을 하지 않을 뿐.

 

어느 날 싱어는 병원으로 친구를 만나러 간다. 그런데 친구는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했다. 싱어는 친구를 위해 가져간 선물 꾸러미를 그의 방에 놓고 거리를 배회한다. 그리고 기차 안에 타서 친구를 위해 가져갔던 과일바구니에서 딸기를 꺼내 먹는다. 마을에 도착한 후에도 밤이 되도록 거리를 걷다가 집으로 돌아와 냉커피를 마신다. 그런 다음 재떨이와 컵을 씻고는 마지막 선택을 한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청각 장애인 싱어(Singer)다. 귀먹고 말 못 못하는 남자의 이름이 ‘가수’라니.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말없이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일. 그것은 고독한 사람들에게 노래와 같은 위로였고 위안이었다.

타인이 자신을 완전히 이해해주리라 믿으면서 내 혼란과 내 의문을 털어놓고 싶어 하는 우리들. 그러나 고독도, 외로움도, 상실도, 허무도 모두 나의 몫일 뿐, 아무리 타인을 둘러봐도 그들의 귀는 닫혀있고 삶은 여전히 내 몫일 뿐이다. 그러니 인간은 누구나 ‘마음은 외로운 사냥꾼’이다.

송정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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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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