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저런 일로 기분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날이면 이른 아침부터 장바구니를 챙겨 나간다. 터벅터벅 가까운 마트 혹은 시장으로 걸어가 싱싱한 부추와 지방이 적당히 붙은 돼지고기, 유통기한 넉넉히 남은 두부를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집에 도착해서부터 느긋하게 재료를 손질해주면 된다. 깨끗이 씻은 부추는 적당한 크기로 썰어두고 돼지고기는 잘게 다져주자. 두부는 마른 팬에 올려 나무 뒤집개로 사정없이 조각내 준다. 소금 한 자밤에 약한 불로 가급적 뒤집개 바닥을 쓰는 것보단 날을 세워 조금씩 으깨주는 것이 좋다. 그렇게 불 위에서 수분이 잘 날아간 두부가 속에서 이따금 씹힐 때 만두에 맛을 더한다.
밀가루를 넉넉하게 뿌린 넓은 쟁반까지 옆에 뒀다면 준비는 끝났다. 이제는 만두를 빚을 차례다. 정성껏 손질한 부추와 돼지고기, 두부, 그리고 굴 소스 한 큰술을 넣고 어디 하나라도 뭉친 곳 없게 잘 섞어준다. 만두피는 재료들과 함께 사 온 왕만두용 만두피를 사용한다. 자신 있다면 밀가루 반죽부터 시작해 봐도 좋겠지만 여간한 자신감이 아니라면 추천하지 않겠다. 특히나 TV에서 본 이연복 셰프의 현란한 손놀림이 본인 손에서도 나올 것으로 생각한다면 오산. 잘 나가는 대기업이 공장 만들어 밀가루 반죽을 찍어내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만두피에 차곡차곡 속을 담아 만두를 빚어내기 시작하면 생각이 많아지기 마련이다. ‘대체 무얼 잘못했더라?’, ‘어떻게 해결하면 되지?’, ‘가능한 걸까?’, ‘혹시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어쩌지?’ 등등. 그런 생각들을 피 안에 넣고 하나하나 봉해버리면 된다. 만두는 그런 음식이니까. 이제 슬슬 찜기에 물을 올릴 시간이다. 이미 시간은 정오를 훌쩍 넘겨 버렸고, 난 여전히 한 끼도 입에 넣지 않은 상태니까.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순간, 정성껏 만든 만두를 하나씩 찜통 안에 넣어주면 이제 정말 끝이다.
알맞게 익어 속이 비치는 만두를 꺼내 물자 ‘툭’하고 육즙이 터져 나온다. 만두의 매력은 무궁무진하지만, 이런 날 만두에서 느껴지는 매력을 하나만 고르라면 이게 아닐까? 바로 ‘공들인 만큼 맛이 나온다’는 사실. 두툼한 크기와 얇은 피를 자랑하는 포장 만두도 매력적이지만 직접 빚은 만두에 비할 바는 아니다. 싱싱한 재료 넣어 갓 찐 만두를 무슨 수로 이길 수 있겠나.
우물우물 씹으며 로맹 롤랑의 ‘언제까지 계속되는 불행이란 없다’는 말을 떠올린다. 그의 소설 속 주인공인 장 크리스토프는 고통받는 천재다. 아버지의 방탕한 생활로 집안은 파산했고, 첫사랑도 여느 통속 소설과는 달리 신분 차이를 극복하지 못한 채 이별로 끝을 맺는다. 고뇌하던 장 크리스토프는 깨닫는다. 인생의 의미는 행복해지는 것이 있는 것이 아닌, 제대로 된 ‘인간’이 되는 데에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는 마지막 순간 “(나의) 이름이 아닌 작품이 남겨지길 원한다”고 유언을 남긴다.
우리는 때때로 끊임없는 불행과 역경에 놓여 있는 것만 같은 느낌을 받곤 한다. 그 순간순간은 너무나 힘들고 견디기 어렵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그 또한 지나가게 되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금 한없이 우울하다면 손수 만두를 빚어보는 건 어떤가? 그리고 그날의 불행을 만두 안에 담아 꼭꼭 삼켜버리면 된다. 되는 일 하나 없는 세상에 내 맘대로 되는 음식도 하나쯤은 있다는 사실을 되새기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