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 밥을 굶다
철학자, 밥을 굶다
  • 이준형 칼럼니스트
  • 승인 2021.03.23 11:27
  • 호수 147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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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칼 마르크스
▲ 사람마다 다른 의미를 갖는 밥 한 끼
▲ 사람마다 다른 의미를 갖는 밥 한 끼

‘내가 왜 좋냐’는 상투적인 물음에 누군가가 했던 대답을 종종 떠올린다. “넌 적어도 날 밥 굶길 것 같지 않아.” “그게 이유야?” “응.” ‘에이….’ 그때는 그 대답이 정말 불편하게 느껴졌다. 아니, 서운했던 건지도. 그때 그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의 형태가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그 대답이 당신이 내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찬사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시간이 꽤 흐른 뒤부터였다.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먹고 산다는 것의 무게를 알게 된 즈음이지 아마. 그때나, 그걸 깨달았을 즈음이나, 지금이나 난 여전히 내 한 몸 건사하기도 버거워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며칠은 안 감은 듯 부스스한 머리와 너저분한 옷, 24시간 입에서 뿜어져 나오는 담배 연기까지. 우리 상상 속의 철학자들에게 밥 굶기는 일상인지 모르지만 대개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그들에게 특별한 능력이나 경영 지식이 있었냐고? 그럴 리가. 그럼 이유가 뭐냐고? 뭐긴 뭐야, 태어나면서부터 돈이 많았던 게지. 철학계는 금수저투성이다. 플라톤은 정치 명문가의 자제로 태어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아버지는 왕의 주치의였다. 프랜시스 베이컨의 아버지는 법무장관, 비트겐슈타인의 아버지는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철강왕’으로 불리는 사람이었단다. 예나 지금이나 사색에도 돈이 드는 법이다.


물론 모든 철학자가 다 부자에, 귀족에, 왕족이었을 리 만무하다. 어디에나 다 예외는 존재하기 마련이니까. 공산주의의 대부 마르크스는 가난한 철학자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특히 본인은 물론, 가족까지 굶겼다는 점에서 기준을 차고 넘치게 부합한다고 볼 수 있을 터. 젊은 시절부터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외친 그는 권력의 입장에선 눈엣가시였다. 모국 독일에서 ‘라인 신문’의 편집장을 맡아 활동하던 중 급히 정권의 핍박을 피해 프랑스로 거처를 옮겨야 했고 다시 혁명을 위해 독일로 발걸음을 옮겼지만 돌아온 건 실패뿐이었다. 결국 그는 영국 런던으로 떠나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망명만큼이나 마르크스도 가난해졌다. 가구와 옷을 저당 잡히는가 하면, 막내딸이 죽었을 때는 관을 짤 돈도 없었다니 가족들 입장도 ‘할많하않’이었을 게다.


마르크스의 선택은 친구의 피를 빨아먹는 거였다. 그가 숙주로 삼은 존재는 『공산당 혁명』과 『자본론』의 공동 저자인 엥겔스. 엥겔스는 저널리스트가 되겠다는 야망도 포기하고 친구를 도왔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직물회사 ‘에르멘&엥겔스’에 취직해 20여 년간 자리를 지킨 것(심지어 횡령도 저질렀단다)이다.


다른 이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이런 상황을 부끄러워하거나 이를 핑계로 적당히 타협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마르크스는 외려 엥겔스를 닦달했다. “나는 곤경에 처해 있네. 가계에 12파운드를 지출해야 하는데, 내 수입은 글을 쓰지 않아 줄어들었기 때문이지.” 심지어는 큰 집으로 이사한 뒤, “이게 아이들이 장차 안정된 미래를 확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네, 순수하게 프롤레타리아적인 생활을 한다는 것은 적당치 않네”라며 자신의 선택을 옹호하기도 했다. 물론 이를 우리가 ‘철학적’ 태도로 볼 수 있는지, 프롤레타리아의 해방을 외친 사람이 지녀야 할 자질인지는 각자 생각해 볼 나름이다.


밥, 그러니까 끼니를 해결하는 일은 너무나도 어렵고 또 중요한 문제다. 당신은 어떻게 오늘 하루의 식사를 해결했는가. 한 끼 거한 상차림으로? 아니면 편의점에서 산 2+1 라면과 천 원짜리 삼각김밥으로? 밥값은 어떻게 당신의 손으로 들어오게 됐는가. 밤낮없이 열심히 일한 보상으로? 아니면 가족 혹은 누군가의 도움으로? 당신에게 오늘의 밥 한 끼는 어떤 의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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