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다문화'는 공교육을 거친 우리 세대라면 누구나 익숙하게 들어본 단어다. 그러나 이는 국민이 다문화를 받아들이는 일에 익숙해져 있다는 것은 아니다. 2019년 ‘국가통계포털(KOSIS)’에서 다문화 가정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국 다문화가족 실태조사」에 따르면 주위에서 차별받은 경험 여부 질문에 ‘1년에 1~2회 경험했다’는 응답이 50.8%로 과반수에 달했다. 급격하게 변하는 다문화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우리 사회가 놓친 사람들의 목소리는 정말 없는 것일까. 한국에 상륙한 다문화의 과거와 현재를 살피고 미래를 설계해 본다.
한국의 다문화가 걸어온 길
불과 한 세대 전 순혈주의를 강조하던 교과서와 비교해 본다면 현재의 흐름은 달라졌다. 우리나라는 자문화 중심주의를 버리고 문화 상대적인 태도를 지향하며 국제사회 속 세계 시민으로 성장하고 있다. 이렇듯 우리 사회가 변화의 중심에 위치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 성장으로 인한 국내 노동자들의 인건비 상승 및 기피업종의 인력 부족으로 노동력 공급이 필수적인 상황에 이르렀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외국인고용허가제’, ‘방문취업제’와 같은 정책을 펼쳤고 많은 외국인이 우리나라로 건너와 노동자가 됐다.
또한 1970년대 이후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촌 남성의 결혼이 어려워지자 정부는 1990년대 후반부터 ‘농어촌 총각 장가보내기’ 사업을 추진했다. 그 결과 동남아 여성과의 국제결혼이 급증했다. 조금 지난 2000년대 이후엔 공부와 사업을 위해 한국에 정착하는 외국인이 증가함에 따라 한국에서 다문화 가정을 이뤄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우리나라는 더는 단일 민족이 아니며 다문화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 자리 잡았다. 이제 어떤 방식으로든 다양한 외국 문화와의 사회적 통합을 거쳐 장기적인 정책 방향이 세워져야 할 순간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다문화 사회의 오늘을 정의하다
다문화 사회란 민족이나 인종, 문화적으로 다원화된 사회를 말한다. 한 국가나 사회 속에 여러 다른 생활양식이 존재하는 것이 다문화 사회의 사전적 의미이지만, 현재 우리나라를 보면 다문화 사회에 대한 인식과 정책이 사전적 정의와는 사뭇 다르게 흘러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문화 가정이 빠르게 늘고 있는 우리나라는 다양한 문화가 용광로처럼 하나로 녹아들어 새롭게 창조된다는 의미의 ‘멜팅 팟(Melting Pot)’보다, 각각의 고유한 문화를 그대로 유지한다는 ‘샐러드 볼(Salad Bowl)’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현 정책은 다문화 가정이 한국 문화를 수용할 수 있도록 고용과 교육 면의 지원을 활발히 시행하고 있기에 문화 간의 교류와 통합을 중시하는 샐러드 볼과는 실질적으로 다르다. 일례로 교육 프로그램의 경우에는 한국어나 한국 사회·문화에 대한 내용이 많다. 결국 지금의 정책은 ‘로마에 왔다면 로마법을 따라야 한다’는 일방적인 강요일 수밖에 없다.
다수가 회피하던 것
얼마 전 한국인 어머니와 나이지리아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방송인 한현민 씨가 한 예능에서 다문화 가정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았던 일을 언급했다. 방송을 본 시청자들은 다문화 가정을 보는 우리 사회의 인식에 반성의 목소리를 냈다. 다수의 다문화 가정이 의사소통 장애, 경제적 어려움, 문화적 차이, 자녀 양육과 교육의 어려움 등을 겪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인 모두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외국인에 대한 편견과 다문화 가정에 대한 차별은 아직도 대한민국에 만연하다. 즉 이들이 겪는 문제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문화에 대한 차별적 인식을 중심으로 사회 전반과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안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어려움을 겪는 다문화 가정을 지원하기 위해 ▲결혼 이주 여성과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교육 ▲경제적인 어려움 해소를 위한 취업 교육 및 전문기관 연계 ▲상담과 다양한 교육으로 문화적인 어려움 해소 ▲편견과 차별을 줄이기 위한 인식개선사업 ▲ 이주 배경 청소년을 위한 심리 정서프로그램 및 부모지원 등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다문화 가정을 향한 근본적 문제인 차별 인식의 해결은 여전히 난제다. 이에 안산시다문화가족지원센터 류수자 팀장은 “다문화 가정 지원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며 “다문화 가정의 자녀들이 자라 우리나라의 일꾼이 될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단국 In The World
본지가 재학생을 대상으로 「다문화 인식 조사」를 실시해 다문화에 대한 단국인의 생각을 알아봤다. 한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라고 생각하는지 질문한 결과 설문조사 응답자의 70%가 ‘그렇다’고 답했다. ‘여러 문화권에서 온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정착해 있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반면 ‘그렇지 않다’는 응답은 전체의 30%였으며 ‘많은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와 살고 있지만, 외국의 문화 및 인종 차별은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한국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변모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묻자 80%의 긍정 답변과 20%의 부정 답변이 나왔다. 다문화 가정이 공동체 속에 자연스럽게 뒤섞이며 존중받는 사회가 진정한 다문화 사회라고 생각한다는 황지현(중동·1) 씨는 “다문화 가정을 많이 접하고 함께 생활해야 편견을 줄일 수 있다”면서 다문화로의 이행에 긍정적인 인식을 표했다. 반면 이유찬(법학·1) 씨는 “흔히 생각하는 다문화 사회는 실상과 큰 차이가 있다”며, “자국보다 비교적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는 한국에 노동자로서 일자리를 구하러 온 외국인은 목표한 액수를 모으거나 더 좋은 조건에 취직할 수 있다면 타국으로 떠날 확률이 높다”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이러한 부분에서 한국 사회는 그들을 완전히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는 데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 국가 속 다른 인종, 민족, 계급 등 여러 집단이 지닌 문화가 함께 존재한다는 다문화 사회의 사전적 정의가 보여주듯 한국은 이미 다문화 사회다. 그러나 응답자 10명 중 3명은 다문화 가정에 대한 차별과 편견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아직 한국이 완전한 다문화 사회라고 볼 수 없다고 말한다. 본격적인 외국인 인구 유입이 이뤄진 1970년대를 전후로 50년 이상이 흘렀건만 아직도 청년 세대 전부가 현재의 한국 사회를 다문화 사회라고 당당히 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변화를 만들어야 할까.
더 앞을 바라보며
유럽계, 중남미계, 아프리카계, 아메리카 원주민, 아시아 이주민의 문화 공존을 이룬 미국의 사례는 한국 사회가 지향해야 하는 다문화 정책의 방향을 보여준다. 미국이 다문화의 모범이 된 배경에는 문화 동화 정책의 실패와 방향의 수정이 있었다. 19세기 말 이민자가 급증한 미국은 백인 주류문화를 바탕으로 동화주의 모델을 차용해 멜팅 팟 정책을 펼쳤으나 결국 인종차별과 사회적 갈등을 야기했다. 이에 미국은 이주민들의 문화적 다양성과 공존을 인정하는 샐러드 볼 정책을 시행했고, 문화적 다양성을 중심으로 다문화주의를 표방했다.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원 손인서 교수는 “현재 한국의 ‘다문화 정책’은 타문화와의 통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민정책 혹은 인력정책에 가깝다”며 “차별을 없애고 진정한 다문화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 전방에 녹아있는 차별을 범죄로 인식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국계 74%, 말레이계 13%, 인도계 9.1%, 기타 3.3%로 구성된 싱가포르는 한국의 다문화가정이 가장 큰 어려움을 꼽은 ‘언어의 장벽’을 이중 언어 정책으로 해결했다. 싱가포르는 공교육 정책으로 다문화 학생들이 표준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등 각 민족의 모국어를 배우고, 그와 함께 민족 간 소통을 위한 공용어로써 영어 학습을 시행해왔다. 이러한 교육은 싱가포르를 아시아와 서구의 교량으로 만든 발판이 됐으며, 현대 사회에 들어서는 다국적 기업이 비교적 쉽게 싱가포르에 진출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는 다문화의 언어적 통합이 가져올 수 있는 긍정적인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Epilogue
다문화가 ‘다’ 문화로 인정받는 통합정책이 적극적으로 시행된다고 해도 이러한 정책을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의 시선이 평탄하지 않다면 다문화 가정의 어려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와 반대로 긍정적인 성과를 낸 타국의 다문화 정책이더라도 우리 사회에 적용할 경우 반드시 좋은 영향을 갖고 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도 섣부르다. 일각에서는 다문화 가정을 위한 일부 시혜적 조치가 국민 역차별을 초래한다는 비판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이러한 시선은 다문화 가정을 받아들이는 데에도 마음의 벽을 만들 터. 사회적 통념에 부합하면서도 언어·문화면의 통합을 추구하는 정책이 다문화를 다 문화로 인정받게 만드는 열쇠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