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고라니, 부엉이, 두루미까지 종을 가리지 않고 야생에서 살아가는 동물들도 안심이다. 인공 구조물 충돌, 농약 섭취, 병충해 등의 이유로 야생에서의 삶을 위협받는 그들을 지켜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야생동물들을 신속히 구조하고 재활과 방생을 돕는 국가기관, ‘야생동물구조센터’다. 기자가 방문한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이하 구조센터)에서는 작년 한 해 동안 충남지역 야생동물 2천15마리를 구조했다. 1년에 몇백 마리 남짓을 구조하는 데 불과했던 10년 전에 비하면 비약한 수치다. 기자는 하루도 쉬지 않고 야생동물을 위해 힘쓰는 이들을 알아보고자 충남 예산으로 향했다.
365일 불 켜진 구조센터의 하루
구조센터 입구 앞에 선 기자의 오른쪽에는 야외 계류장이, 전면엔 야생동물구조 차량과 카메라에 한 번에 담기지 못할 정도로 긴 센터 건물이 있었다. 건물 입구 앞에 세워진 두 대의 구조 차량을 보니 구급차가 떠오르기도 했다. 원색의 조화로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던 건물의 창문엔 알록달록한 그림과 기호가 그려져 있었다. 이는 조류의 유리창 충돌 사고를 막기 위한 직원들의 작품이었다. 기자는 이런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동물을 향한 직원들의 애정과 세심함을 눈치챌 수 있었다.
창문의 그림들을 지나 내부로 들어간 기자는 구조센터의 김리현(26) 재활관리사를 만났다. 김 재활관리사는 구조센터의 하루가 오전 9시부터 시작된다고 전했다. 그의 뒤로는 이미 일과가 시작돼 정신없이 분주한 구조센터의 직원들이 보였다. 이들의 오전 업무를 자세히 알기 위해 그를 따라 복도에 걸린 화이트보드 앞으로 향했다. 화이트보드에는 내·외부 계류장의 도면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고, 각 공간에는 계류된 야생동물의 종이 빼곡히 적혀있었다.
재활관리사들은 매일 센터에 계류 중인 동물들을 대상으로 ‘일일사육기록표’를 기록하고 있으며 그와 동시에 하루의 업무를 계획한다. 화이트보드에 걸린 기록표에는 동물의 입원 초기 체중과 현재 체중, 동물 먹이 투여 방법, 진행 중인 처치와 관리 방법 등 전반적인 진찰내용이 담겨있었다. 찬찬히 계류장 리스트를 둘러보니 너구리가 많아 보였다. 이에 대해 김 재활관리사는 “겨울에 너구 리가 많이 구조되는데, 그 친구들이 현재까지도 치료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화이트보드를 지나 오른쪽 복도로 들어가니 곳곳에 빨래가 쌓여있었다. 빨래들은 동물들의 입원실 패드로 쓰인 듯 동물들의 배변과 먹이 냄새가 섞여 퀴퀴한 냄새가 났다. 빨래들을 지나쳐 들어간 야생동물 입원실에는 그물에 걸려 날개를 다친 새가 앉아있었다. 사람을 경계하는 눈빛과 불안정하게 들려있는 날개를 보니 기자에게도 고통이 느껴지는 듯했다. 투약이 필요한 동물들을 선별해 관리하는 업무도 맡는 김 재활관리사는 “이 친구의 날개 붓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3일간 날개에 꿀을 발라줬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척추 이상으로 고개를 움직이기 어려운 큰고니, 재활 중인 수리부엉이와 같이 많은 야생동물이 실내 계류장에서 재활과 진료를 받고 있었다.
살리자, 어떤 수를 써서라도
재활관리사가 구조 신고를 받고 긴급하게 동물을 구조했다면 다음은 수의사들의 차례다. 기자는 구조센터에서 동물 치료가 이뤄지는 방식을 알아보고자 진료실로 들어갔다. 방 한가운데에 파란 수술 침대와 마취 및 수술 도구, 초록 헝겊, 치료제들이 정리돼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것 같은 모습에 기자는 엄숙한 느낌을 받았다.
이곳에서 왼쪽으로 틀자, 더 위급한 동물의 치료를 위한 작은 수술실이 있었다. 두 공간이 분리된 이유가 궁금했던 기자는 수술실 내부에서 업무를 보던 이진영(29) 수의사에게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더 위급한 치료의 경우 멸균된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수술실이 분리돼있다”고 답했다. 개방형 치료 공간은 병원의 응급실, 내부 수술실은 병원의 수술실 기능을 하고 있다.
이 수의사에 따르면 응급 동물이 들어온 뒤 기본적인 검사가 이뤄진다. 검사를 통해 신장, 체격과 BCS(신체충실지수)를 확인하며 출혈, 감염, 외상 등의 여부를 판단한다. 이후 방사선실에서 내부 장기 이상 여부에 대한 검사까지 마친 뒤에야 진단과 처치를 시작할 수 있다. 그는 “고라니의 경우 차량 충돌로 인해 들어오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골절 상태가 심하면 마취를 건너뛴 상태에서 바로 수술을 진행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치료실과 붙어있는 집중치료실에는 개선충에 감염된 너구리가 입원 중이었다. 비전공자인 기자가 언뜻 보기에도 피부의 갈라짐과 각질이 심각했다. 안타까운 마음에 치료법을 묻자 김 재활관리사는 “진드기에 의해 발생한 것이다 보니 구충약 접종 치료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며 “계류장은 온도, 습도, 환풍 조절 시스템이 있어 상태가 위급하고 응급상황인 친구들을 치료하기에 적합한 공간”이라고 답했다.
그러나 구조센터를 거치는 모든 동물이 야생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센터 내에는 ‘동물 안락사 가이드라인’이 있다. 구조센터가 야생동물을 방생하기에 앞서 이들이 자연으로 돌아가 이전처럼 살 수 있을지를 판단한 후, 이에 부합하지 않는다면 안락사 결단을 내린다. 야생동물을 위해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야만 하는, 일종의 딜레마를 겪고 있다.
자연으로의 방생을 돕는 조력자
김 재활관리사는 기자가 센터 내에서 하루 동안 만난 모든 야생동물의 구조 원인 및 장소, 상해 명, 입원 기간 등의 정보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야생동물들에게 ‘동물’보다는 친구들이라고 호명하고 있었다. 짬, 베이, 광주 등 단순히 동물을 종으로 부르는 것이 아닌 애정을 담아 그들의 이름을 짓고 부르며 재활을 돕고 있었다. 이들은 단순히 보호자와 의사가 아닌 가족 그 이상의 보살핌을 주고 있다.
회복 중인 동물들을 뒤로 하고 복도로 다시 나오자, 구조센터의 자원봉사자들이 나뭇가지에 고기를 끼워 넣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작업을 구경하던 기자에게 자원봉사자 길도원(20) 씨는 ‘행동 풍부화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야생동물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먹이활동을 할 수 있도록 나뭇가지 속에 먹이를 숨겨 주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동물들의 야생성 회복을 위해 인공적으로 환경을 조성한 모습이었다.
평일에 2번씩 구조센터 봉사 업무를 하는 자원봉사자 민다영(31) 씨에 따르면, 구조센터 자원봉사자는 계류장, 입원실을 비롯한 공간의 청소와 동물의 이불 빨래, 설거지 등의 업무를 주로 한다. 그는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이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며 이곳에서의 봉사를 통해 “야생동물을 주워 키웠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그러면 안 되는 이유를 논리적으로 전달할 수 있게 됐다”고 봉사를 통해 얻은 강점을 전했다.
자원봉사자들은 동물들의 행동 풍부화를 위해 제작한 나뭇가지와 먹이를 들고 야외 계류장으로 나섰다. 야외 계류장에서는 수리부엉이와 독수리, 벌매 등 비행 조류들의 재활 치료가 진행되고 있었다. 김 재활관리사는 “자연적인 비와 눈을 맞고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는 아이들이 이곳에 계류한다”고 덧붙였다. 실내와는 달리 새가 횃대에 오르고, 자유롭게 비행하는 모습을 보니 자연으로의 방생이 코앞으로 다가온 것 같아 기자도 함께 쾌활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사랑하되 표현하지 않기
회복이 잘 된 야생동물일지라도 방생이 어려운 경우가 있다. 조류 계류장을 지나 내려오며 본 한쪽의 야외 계류장 안에는 각인된 너구리들이 오후의 여유를 즐기고 있었다. 이윽고 기자를 발견한 너구리 ‘너울’은 철창 앞으로 다가왔다. 이전의 동물들과 달리 기자를 경계하는 모습은 없었다. 이에 김 재활관리사는 “야생동물들은 사람과 정이 들면 사람을 위협 요소로 생각하지 않아 방생 후 도심으로 출몰할 여파가 크다”며 방생 후에도 야생성을 되찾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를 건넸다. 재활 치료에서 가장 명심할 점은 ‘좋아하는 마음을 들키지 않는 것’이다.
너구리들의 모습을 뒤로하고 건물 앞으로 돌아오니, 구조센터가 매우 조용해진 상태였다. 기자는 단번에 직원들이 야생동물 구조를 떠났다는 사실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또 다른 생명을 구하러 갔다는 생각에 잠시 풀어졌던 긴장의 끈을 다시 잡고, 그들이 구조에 사용하는 도구들을 알아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야생동물들을 구조하기 위한 포획 도구는 크기와 종류에 따라 다양했다. 야외에는 구조에 쓰이는 포획 망과 포획 틀, 올가미가 놓여 있었다. 포획 틀은 주로 너구리를 구조할 때 쓰이며, 포획 망과 올가미는 종 구분 없이 사용되고 있다. 김 재활관리사는 주로 포획 망을 사용한다고 했는데, 올가미는 힘이 세 동물에게 2차 피해를 남길 수 있기에 잘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올가미는 주로 “수달, 삵과 같은 힘과 저항이 강한 동물들을 포획할 때만 사용한다”고 덧붙였다. 동물을 포획해 이송할 수 있는 캐리어도 크기별로 다양했는데, 사람이 들어갈 수도 있을 만한 크기의 캐리어를 보니 그 압도감이 전해졌다.
그는 동물 구조를 할 땐 ‘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며 “대부분 야생동물은 아무리 다쳐도 반사적으로 사람에게서 도망가려고 하기에 추격전의 상황이 다분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어 그에게 구조 현황에 관해 묻자 “야생동물 인식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구조 신고 연락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답했다. 다치거나 고립된 야생동물을 발견할 때의 연락 절차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점차 확립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인간의 무분별한 쓰레기 투기, 야생동물 불법 밀렵 및 사육 등은 여전히 야생동물의 존속을 어지럽히는 주요한 원인으로 손꼽힌다. 따라서 우리는 자연에 설립된 인공 구조물과 쓰레기 투기에 경각심을 가지며 그들의 존속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더불어 인간의 서식지가 아닌 곳에서 그들이 독립적으로 살도록 관심을 끄는 것이 생태계를 지키는 방안이 아닐까.
Epilogue
전국의 야생동물구조센터는 구급대, 병원, 보호 등 야생동물에 대해서라면 여러 기관의 몫을 모두 해내는 국가기관이다. 야생동물 구조대는 이 순간에도 신속히 숲과 마을에서 구조 활동을 하고 있다. 잠시도 쉴 틈 없는 이들의 고충은 많이 다친 야생동물을 매일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조대의 궁극적인 목표는 위험에 처한 야생동물의 수가 줄어 더는 구조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이들은 야생동물을 위해 티를 내지 않는 무심한 사랑을 하고 있다. 야생동물이 온전히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