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혁명이 위스키 살리고 브랜디 망가트렸다
산업혁명이 위스키 살리고 브랜디 망가트렸다
  • 명욱 칼럼니스트
  • 승인 2023.01.03 16:05
  • 호수 149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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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별 볼일 없는 증류주였던 위스키

전 세계 증류주 시장의 절대강자라고 한다면 위스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코틀랜드의 스카치 위스키부터, 아일랜드의 아이리쉬 위스키, 미국의 아메리칸 위스키까지 다양한 나라에서 위스키를 만들고 있다. 현재 위스키 시장의 전 세계적인 규모는 약 70조 원이다. 현재는 위스키가 브랜디에 비해 시장보다 크지만 19세기 초만 해도 브랜디 시장이 더 컸다. 


위스키 시장을 키운 것은 한자 동맹 등으로 자본주의 발전에 특출한 역할을 한 네덜란드 상인이었다. 그들은 일반적인 장기 저장 및 관리가 어려운 와인 대신 획기적인 제품을 취급하려고 했는데 때마침 발견된 것이 증류주인 브랜디였다. 이때 수입한 제품의 명이 브랜드 바인(Brandewijin)으로 영어식으로 표현하자면 구운 술(Burned Wine)이었고, 이것이 나중에 브랜디가 되었다. 알코올 도수가 20도가 넘어 상하지 않는 이 술은 날개 돋친 듯 영국으로 팔려 나갔다.


영국의 가정에서는 이 술을 활용해 우리나라의 청, 또는 담금주와 유사한 코디얼(Cordial)이란 음료를 만들었다. 또 영국은 증류한 코냑 원액을 수입, 영국에서 숙성해 판매도 했는데, 이러한 코냑을 얼리 랜디드 코냑(Early Landed Cognac)이라고도 불렸다. 이처럼 증류는 프랑스, 숙성은 영국, 판매는 네덜란드에서 하는 독특한 문화가 탄생했다. 

영국의 담금주 코디얼의 모습이다.
▲영국의 담금주 코디얼의 모습이다.

위스키는 18세기까지만 하더라도 아직 고급문화로 평가받지 않던 상황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브랜디보다 위스키의 시장 확장성이 클 수 있었을까? 이것은 와인와 브랜디의 아픈 역사에서 유래됐다. 1864년 프랑스의 포도나무에 심각한 병충해가 발생했다. 북미에서 들여온 포도나무 묘목에 필록셀라(Phylloxera)라는 해충이 붙어왔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 해충은 프랑스 포도의 씨를 마르게 했고 포도밭의 4분의3을 파괴했다. 결국 와인이나 브랜디를 만들 재료를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참고로 필록셀라의 서식지는 북미였다. 대항해시대만 하더라도 이 병충해가 유럽으로 들어올 일은 없었다. 왜냐하면 범선으로 유럽과 북미를 왕래하는 덴 2달이 걸렸고 그사이에 병충해가 다 죽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산업혁명을 통해 증기선이 발달했고 1~2주일이면 유럽과 북미를 왕래할 수 있게 되며 필륵셀라가 퍼져나갔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증류주 자체를 만들지 못했고, 맥주 효모의 배양 및 균질적인 맥주 제조 등 관련 산업이 비약적인 발전과 저장성이 좋은 보리로 위스키를 만들던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 위스키 산업에 청신호가 켜졌다. 시장의 아류로 등장한 위스키가 일류로 도약할 기회를 잡은 것이었다. 


결국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의 와인 및 브랜디 산업에 대재앙이 생기게 된 이유는 산업혁명이 가져온 비극이었다. 뭐든지 빨라지는 것이 좋아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과 이런 빠름이 브랜디에겐 불행, 위스키에겐 행운이었다는 것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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