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장한 체구의 남자 갑, 을은 초췌한 모습의 X의 팔장을 끼고 어두운 복도를 걸어가고 있으며, 조금 나이가 들어 보이는 병은 그들의 앞에서 묵묵히 걸어가고 있다. 그러던 중 갑자기 X가 울부짖으며 더 이상 가지 않겠다고 풀썩 주저앉는다.
이를 지켜보던 병의 양 미간의 주름이 깊어진다. 어느 작은 방에 들어간 이들은 X의 머리에 용수를 씌우고 손발을 묶는다. 곧이어 X의 목에 올가미를 건 후, 5명의 남자들이 작은 버튼을 누른다. 덜컹하는 소리와 함께 X가 앉아있는 발밑이 꺼지면서 X의 모습은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하였다. X의 목에 걸은 밧줄이 제대로 걸리지 않아 그대로 바닥에 떨어진 것이다. 당황한 남자들은 피투성이가 되어 비명을 지르는 X의 목에 다시 올가미를 걸고 끌어올려 매달아 올린다. 20여분 후 한 남자가 나지막한 소리로 “갔어?”라고 말하니, 다른 남자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들은 교도관들이었고, X는 사형수였다. 최근 한 연쇄살인범사건을 계기로 정치권 일각에서는 사형제를 부활하자는 말이 나온다. 아니 사형제를 폐지한 적이 없으니, 더 정확한 말은 그동안 미루어 놓았던 사형을 이제는 집행하자는 것이다.
1997년 12월 30일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김대중 대통령에게 정권을 이양하기 전에 한꺼번에 23명의 사형수에 대해 사형을 집행하였다. 이후로부터 사형집행은 단 한차례로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현재 우리나라의 사형수는 2009년 2월 현재 59명으로 서울구치소와 대전교도소 등 전국의 교도소 및 구치소에 수용되어 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11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사실상의 사형폐지국가’(the death penalty abolitionist in practice)가 되었다. 전세계적으로 법률상 사형을 폐지한 국가는 102개국, 법률상 사형을 인정하고 있지만, 지난 10년간 사형을 집행하지 않아 사실상 사형을 폐지한 것으로 보는 국가는 36개국으로 법률상, 사실상 사형폐지국은 모두 138개국이며, 사형제도를 인정하고 집행하고 있는 국가는 현재 59개국이다.
사형을 집행하라는 정치권의 주장에 대해 최근 전국의 형사법교수들의 성명이 발표되었다. 그들은, 지속적이고 깊이 있는 연구를 바탕으로, 사형의 재집행은 결코 허용될 수 없다는 확신에서 이를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사형제도가 철학적으로, 법학적으로, 과학적으로도 타당하거나 실효성이 있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은 많은 형사법교수들에 의해 증명되고 있다.
사형의 정치적 남용의 사례, 오판가능성, 사형제도가 범죄발생의 억제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못한다는 점, 사형폐지가 전세계적인 추세라는 점, 인간생명의 존엄성이라는 폐지론의 주장근거가 있지만, 여기에서 다루고 싶은 것은 바로 직무상 사형집행에 관여할 수밖에 없는 교도관들의 인권이다.
교도관과 사형수는 같은 환경에서 같은 시간을 보낸다. 우리들의 상상과는 달리 그들은 감독자와 피감독자의 관계가 아니라 공동체이다. 그런데 그들에게 사람을 죽이라고 국가가 명령하는 것은 또 하나의 살인을 교사하는 것이다. 더욱이 교도관에게는 그를 살해할 아무런 동기조차 없다. 흉악범도 자신이 저지른 죄값을 당연히 받아야 하지만 흉악범에게 죄 값을 치루게 하기 위해 잔악한 형벌을 직접 집행하도록 명령 받는 교도관의 인권 또한 고려를 해야 한다.
“교정직에 선택한 것부터가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죄를 지었지만, 사람이 사는 곳이잖아요. 물론 수형자들끼리의 다툼도 있죠. 그럴 때마다 중재자 역할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 저의 일이자 보람입니다.” 어느 한 교도관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