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사자성어] ⑦ 偕老同穴
[이야기사자성어] ⑦ 偕老同穴
  • 조상우(교양학부) 교수
  • 승인 2009.08.02 20:08
  • 호수 12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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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서는 같이 늙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힌다는 뜻으로
생사를 같이하자는 부부의 사랑을 비유한 말.

偕 : 함께 해,  老 : 늙을 로,  同 : 같을 동,  穴 : 구멍 혈

약간 멀리서 믿고 따라주자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입니다. 그렇기에 그 배필을 신중하게 결정하고 선택해야합니다. 그런데 우리 조부모나 부모 세대들은 얼굴 한 번 보지도 않고 결혼하신 분들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탈없이 잘들 살아오셨습니다. 이는 집안 어른들이 중신 역할을 제대로 하셨기 때문일 수도 있고, 부부의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21세기의 부부관계는 어떠한 가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유명했던 소설 중에 <아내가 결혼했다>가 있었습니다. 얼마나 호응이 좋았던지 영화로도 만들어졌습니다. ‘아내가 결혼을 한다!’ 실제로 남편이라면 누가 이것을 허락하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시대는 이러한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자유로운 세상입니다.

<아내가 결혼했다>와는 다르지만 남편과 시댁에 복수하는 드라마인 <아내의 유혹>이 인기가 많습니다. 유부남이 자기 처와 동기간처럼 함께 자란 여자와 바람이 나서 본처의 애를 유산시키고 죽이려 하였기에 그 남편에게 본처가 복수한다는 스토리입니다. 이렇듯 지금 세상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부부가 서로에게 공격을 하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모 세대는 부부의 인연에 대해서 아주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이와 관련한 고사성어가 ‘해로동혈(偕老同穴)’입니다. ‘해로동혈’은 살아서는 같이 늙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힌다는 뜻으로 생사를 같이하자는 부부 사랑의 맹세를 비유한 말입니다. 우리 말에 ‘백년해로(百年偕老)’와 같은 말입니다. ‘해로동혈’은 『시경』 패풍(    風) <격고(擊鼓)>에 나옵니다. 원래 패풍은 위(衛)나라 주우(州    )가 전쟁을 일으켜서 용맹하기만 하고 예가 없음을 국민들이 원망한 시입니다.
死生契闊, 與子成說. 執子之手, 與子偕老. (죽든 살든 멀리 떨어져 있든, 그대와의 약속 이루자고 하였노라. 그대의 손잡고, 그대와 해로하자고 하였노라.)
于嗟闊兮, 不我活兮. 于嗟洵兮, 不我信兮.(아 멀리 떨어져 있음이여, 우리 함께 살지 못함이로다. 아 약속함이여, 우리 이 약속 펴지 못함이로다.)

위 시는 <격고>의 3, 4번째 구절입니다. 이 시는 부역에 종사한 자가 그 아내를 생각하며 처음에 아내를 맞이할 때는 죽든 살든 멀리 떨어져 있든 서로 잊거나 버리지 말자고 약속하였으며, 또 서로 손을 잡고 백년해로 하자고 약속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역이 길어져 백년해로를 약속한 아내와 그 약속을 지킬 수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두 부부의 문제로 헤어진 것이 아니라 제삼자에 의해 두 부부의 약속이 깨어져서 같이 살지도, 같이 묻히지도 못하는 마음이 간절하게 드러납니다.

요즘 부부들을 보면 연애이건 중매이건 간에 사랑해서 결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이 오래토록 지속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옛날이라고 해서 다 ‘해로동혈’과 같은 부부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시경』 용풍(    風) <군자해로(君子偕老)>에 보면 부인이 음란하여 군자 섬기는 도리가 없음을 풍자하는 시도 있기는 합니다. 시대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꿈꾸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것이 진정성이 있는가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합니다. 한 번도 얼굴을 보지 않고 결혼하였지만, 오랜 기간 잘 사셨던 분들은 서로의 믿음을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부부의 연을 오래 지속했다고 봅니다.

학생들이여! 아직은 여러 학생들에게 ‘해로동혈’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사귀는 이성 친구에게 믿음이 있나요. 요즘 학생들을 보면 너무나 이성과 같아지려고 애쓰는 듯 보입니다. 예를 들어 이메일을 같이 쓰는 학생이 있는 등 이성 친구에 대해 무엇이든 다 알고 공유하려고 합니다. 사소한 한 것까지 다 알려고 하는 것보다 약간은 멀리서 믿고 따라주는 것도 사랑의 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학생들이여! 자신의 선택을 소중히 여기고 믿고 따라 주기 바랍니다.    
 

조상우(교양학부) 교수
조상우(교양학부) 교수

 dknew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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