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글은 칠흑 같은 어두움을 뚫고 질주하는 버스 안에서 반짝거리는 네모난 모니터 위에 써지고 있다. 지난 번 상하이의 난징동루에서 만난 대만인 친구와 중국인 친구와의 대화를 복기하고 있다. 나는 대만인 친구 챠이에게 물었다. “붉은 혁명 이후 홍군은 장개석을 밀어냈고 현재까지 중국은 이분화되어 있잖아. 현재 너는 대만과 중국이 하나의 중국이라고 생각하니?”, 챠이는 대답했다. “아니. 하나의 중국이 되려면 한 10년은 걸릴 걸. 물론 중국 정부가 변한다면 말이야.”, 같은 질문을 중국인 친구에게 했다. 그는 보다 명쾌하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중국은 하나야.”, 대만친구 챠이는 중국인 친구를 가리키며 웃는 얼굴로 내게 이야기했다. “이 친구와 난 생각이 달라.”
이 짧은 대화에는 중국의 소수민족에 대한 공간 분할 정책과 중화문화 전략을 통한 통합주의, 억압적인 공산당의 국가 통제 기제, 대만의 시장주의에 대한 아집 등 많은 곁가지 질문이 따라와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충분할 정도의 개방적인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시간이었다. 이들 아시아의 친구들과 함께 했던 시간은 상하이의 이질적인 공간 특성 안에서 묘한 여운을 남겼다. 상하이는 이민자들의 공간이다. 그 만큼 상하이는 개방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다. 상해는 베이징과 경쟁하면서 동시에 홍콩과 우열을 가리고자 하는 공간이다. 본토의 베이징과는 다른 식민주의에 대한 뿌리 깊은 인식론적 공간 기억이 빼곡이 도시공간 곳곳에 스며져 있다. 그렇다고 홍콩 만큼 친서방주의적인 색깔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상하이는 상하이 특유의 색채를 가지고 있다. 서울 역시 식민지의 기억을 지녔지만 상하이 만큼 인종적으로 복잡하지는 않다. 아시아 도시들이 가지고 있는 근현대의 혼란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지만 모든 도시들이 각자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상하이 푸동(지역) 개혁 및 발전연구원 사무총장 Yang Zhouyi(양저우이,2008)는 이민사회의 특징을 젊음, 남자가 많음, 경쟁이 치열함, 불안정성, 빠른 정보, 인재 중심, 관용적 태도, 능력중심, 다원화 문화, 교육 중심 이렇게 10가지로 요약하였다. 각각의 테마를 가지고 상하이를 논한다면 어떨까.
인터컨티넨털 호텔이 상하이 역 부근에 지어지고 있으면서 바로 옆 필지가 지붕이 다 부서져 버린 2층 양옥집으로 남국특유의 무더위와 함께 펼쳐 보여지는 이 이국의 땅. 상하이가 선사하는 장면화는 와이탄의 즐비한 근대 제국열강자본의 건물군, 프랑스와 일본의 차별적 공간인 조계지의 흔적, 강남지방 최고의 정원이라고 불리우는 예원의 침략주의 역사가 한데 뭉뚱그려져 이 도시가 가지고 있는 역사성을 그대로 반영한다.
혼재된 공간 상하이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오브제는 상하이를 가로지르는 쑤저우 강변의 버려진 방직공장 및 곡식창고이다. 이들 시설을 수선하여 화어권 예술가들이 촌락을 이룬, 일명 상하이 모간산루 M50. 1930년대 방직공장 건물군을 도시재생 프로젝트로 부활시킨 이 공간은 말 그대로 국적불명의 네오 상하이, 하이파 상하이로서의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공산주의 시당국에서 이런 문화적 인식론을 펼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상하이가 가지고 있는 이러한 역동적 기운은 상하이가 아직 풀지 못하고 있는 시장주의의 어두운 풍경과 부딪힌다. (한편으로 민주화의 상징 중 하나인 광주광역시의 구 도청 건물을 철거하려는 우리 사회의 개발주의는 현대사적 건물군에 대한 우리 사회의 문화적 인식론이다. -참고로 시민단체에서 현재 철거반대 및 보존을 위한 운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고교생들 운동가들의 활동이 활발하다.)
상하이의 역동성은 극동아시아가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파벌주의, 가족주의, 편파적 인종주의에 대한 한 가지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가 되고 있다. 아시아가 가지고 있는 공통분모 중 하나는 식민주의이다. 이 기억을 지우고 덧붙이고 가야하는 우리에게 상하이는 질문한다. 하노이와 싱가폴, 따이페이와 방콕, 난징과 홍콩에서 어떤 배움을 얻어가고 있느냐고. 여름이 지나갔고, 무더위 속에서의 배움을 결산해야 한다. 지금!
(끝.) 2009. 8.26.
이원상(도시계획 부동산 05 졸) 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