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적인 노이즈가 '뮤직'으로 인식되는 바탕엔 정치․경제의 영향력도 작용
극단적인 노이즈가 '뮤직'으로 인식되는 바탕엔 정치․경제의 영향력도 작용
  • 이원상동문
  • 승인 2009.09.15 20:18
  • 호수 1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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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유럽에 뿌리를 둔 것은 18세기 산업화의 영향

 

 

 

 

 

 

 

 

 

 

 

 

 

공간의 영혼 26회차 - An Observer : Sound! Sound!

  ‘세상사의 진행을 멈추는 일이야말로 보들레르의 가장 큰 소망이었다.’ - 발터벤야민

  ‘인류 전체가 나를 반대하게 하고 싶어요. 전 이럴 때 모든 것을 위로해 주는 기쁨을 느낀답니다.’ - 보들레르

  장면 하나. 좁은 공연장은 사람들로 꽉차있었다. 실내를 들어선 검정색 커다란 앰프들은 마치 중세 문지기처럼 미동도 하지 않고 서 있었다. 잠시 정적. 그리고 고막을 강타하는 전자 사운드. 공연시작 30초 안에 10여명의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공연장을 빠져나갔다.(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정말 도망친 것이다.) 공연 전 전자 사운드 워크숍에서 허스키한 목소리로 뮤지션(칼콥스키)에게 질문을 해댔던 레게머리 청년 역시 사운드에 강타당한 채 도망치듯 공연장을 나갔다.

  안노 히데아키의 에바가 폭주할 때 울부짖는 소리 혹은 지하철이 급정거하면서 내는 날카롭고 기다란 소음. 전자신호를 내추럴 사운드로 증폭하여 만든 바로 이러한 노이즈는 이것 자체를 곡으로 볼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이 노이즈-사운드가 울려대는 공연장이 하나의 퍼포먼스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충격적이기 보다는 이질감, 동화될 수 없는 태도 때문이었을까. 즈비그뉴 칼콥스키(Zbigniew Larlowski)의 공연 첫 곡(Number Crunching)을 나는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약 7분 정도의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는 첫 곡이 끝나자 인터미션이 이어졌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막을 보호하기 위해!

 

▲ 문화적 영역은 상품생산의 컨텐츠를 움직이며, 상품은 곧바로 트랜드 되어 문화의 정경이 된다.

 

 

  

 

 

 

칼콥스키는 폴란드 출신으로 현재 일본에 거주하면서 음악활동을 하고 있다. 메시앙, 크제나키스, 불레즈로부터 작곡을 배웠고 카셀 도큐멘타, 다름슈타트 신음악 페스티벌,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와 같은 전자 뮤직 페스티벌에서 퍼포먼스를 벌였다. 칼콥스키와 협연한 일본 무사시노 예대출신의 아츠코 노지리(Atsuko Nojiri)는 대학 새내기 여학생처럼 어렸지만 눈빛이 날카로웠다. 이 장르를 규정하기는 어렵지만 스웨디쉬 이탈로 뮤직의 왕언니 Sally Shapiro, 제법 경쾌한 사운드를 들려주는 DJ Sammy, 텐블리즘(Turntablism)의 마왕 DJ Shadow, Soupa Killa의 무한반복 Burn Baby Burn은 이 노이즈 사운드 장르에 비하면 완전히 제정 러시아의 무도회 연주곡처럼 고색창연해 보인다.

  공연의 마지막 곡이자 두 번째 곡인 ‘Circularity(순환성)’가 시작될 때 필자는 귀에 끼칠 악영향을 생각해서 아예 공연장 밖으로 나와서 그 파동과 진동만을 느꼈다. 칼콥스키가 구현하는 사운드뮤직은 미학적 무정부주의 색깔을 가지고 있었고 공연장 주변을 물들여 놓는다.(칼콥스키는 자신이 아무생각 없이 창작을 한다고 했다.) ‘이러한 예술제재(題材)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는가.’라고 질문할 때 우리의 발목을 잡는 것 중 하나가 활달한 논의나 담론 형성 자체를 거부하는 전위적 예술군의 태도와 리버럴한 의식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비평적 견지가 어렵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는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질문하지 않으면 안 된다. ‘왜 사운드뮤직인가?’

  18세기 후반 산업화된 대량생산과 경쟁적 사회 양상은 테크놀로지의 변화를 야기 시켰으며, 이에 따라 생활계의 인간 행동은 분업화된 기계적 직조망 속으로 귀속되었다. 공간의 모습은 도심을 중심으로 마천루형으로 바뀌어갔으며, 이후 도심의 슬럼화와 외곽의 신도시 건설, 이러한 신도시의 지속적 건설에 따른 도시의 연담화 과정은 인간의 의식 세계 자체를 바꾸어갔다. 큰 도시의 정체성은 곧바로 개인의 삶을 규정짓게 되는 삶터의 배경을 제공하였다. 길거리, 공장, 결재라인에 편입되어지는 각종 체계와 그것으로 하여금 잉태된 도시적 풍경은 보다 강렬하게 의식 속에 머무르게 된다. 유럽에서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시초가 뿌리를 둔 것이나 이러한 극단적인 노이즈가 ‘뮤직’ 으로 인식되는 과정은 문화적인 영역에 속하는 것이나 문화적 영역을 침범하고 축조시키는 다른 정치경제적 배경과의 믹싱(Mixing)이 이면에 있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 노이즈 사운드의 출연이 왜 구라파에서 고개를 들었느냐 하는 질문이 유효한 것이라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노이즈 사운드와 공간의 상호관계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차례인 것이다.

이원상(도시계획ㆍ부동산ㆍ05졸) 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

이원상동문
이원상동문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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