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프락터의 증인으로 선 메어리워렌] 유령을 본 적이 없어요. (중략) 다른 애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들렸고 또 각하께서도 그 애들을 믿으시는 것 같았고 그래서 전... 처음엔 순전히 장난이었어요. 그런데 세상이 온통 유령, 유령하며 아우성을 쳤어요. 그리고 전... 약속하겠어요. 댄포스 씨. 전 그저 유령을 본 것처럼 생각했을 뿐이고 실제론 보지 못했어요”
“(프락터를 가리키며)당신은 악마의 사람이에요! 난 당신과 같이 처형당하기 싫어요! 난 하나님을 사랑해요. 하나님을 사랑해요. 밤이고 낮이고 매일 절 찾아와서 서명을, 서명을 하랬어요. 서명을... (중략) 싫어요! 난 하나님을 사랑해요. 더 이상 당신 편을 들지 않겠어요. 난 하나님을 사랑해요, 하나님을 찬양해요”
-메어리워렌役 대사 중에서
아서밀러 作 <시련>은 17세기 뉴잉글랜드에서의 마녀재판을 모티브로 1950년대 전 미국을 휩쓸었던 매카시즘을 풍유(諷諭)한 희곡이다. 매카시즘은 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J.R.매카시의 이름을 딴 말로, “국무성 안에는 205명의 공산주의자가 있다”는 폭탄발언으로 수년에 걸쳐 매카시가 행한 공산주의자 적발의 선풍에서 유래했다. 이번 연극은 우리 대학 공연영화학부의 3학년 워크샵 공연으로, 공연영화학부 교수가 지도하고 학생들이 연기, 기획 및 연출을 맡았다. 연출을 맡은 이수진 양은 “관객들이 <시련>을 보면서 최근 2PM 박재범 그룹 탈퇴, 노무현 전 대통령 자살 등 ‘현대판 마녀사냥’에 대해 생각해보길 바란다”며 특히 대학생들이 관람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되기를 바랬다.
현재 인터넷 없이 살 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에서, 인터넷 사회에서는 하루에도 몇 번씩 크고 작은 마녀사냥이 일어나며 종종 뉴스거리가 되기도 한다. 인터넷 사회에서는 의견 표출의 익명성과 간편성 때문에 현실 사회보다 더 즉각적이고 직접적으로 마녀사냥의 광기가 드러난다. 그러나 그런 광기 속에 있는 사람들은 정작 알고 보면 나약하고 평범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들을 가장 잘 보여주는 역이자, 연극 안의 모든 역들을 대변하는 역은 메어리워렌이 아닐까. 그래서 메어리워렌의 변절에 손가락질 보다는 나약한 용기를 내어 작은 양심을 지키다가도 광기에 타협하는 우리들의 모습과 겹쳐 감정이입과 동시에 동정을 보내게 된다. 물론 우리가 지향해야 할 캐릭터는 시대의 광기에 저항하는 존 프락터여야 한다. 하지만 존 프락터 역시 불륜을 저지르고 대의보다 자신의 행복을 위하려 하는 인간적인 모습이 담겨 있다. 또한 이 캐릭터 덕분에 나약한 우리도 시대에 저항할 수 있다는 용기를 불어넣어 준다.
한편 존 해일 목사의 캐릭터는 작가 아서밀러가 마녀사냥의 방안으로 제시한 자세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사회에서 마녀사냥이 조장되기를 원하는 피해자의 감정적인 호소와 편향된 근거를 종종 보게 된다. 해일 목사는 극중에서 얕은 겉모습이나 군중심리, 연민이나 분노로 감정적으로 판단하는 실수를 범하지 않고 모든 상황과 입장을 공정하게 판단하려 노력한다.
덧붙여서 극의 모든 악역은 우리 내면의 추악한 단면들을 캐릭터화 했다고 할 수 있다. 즉 극은 우리들의 모습을 제 3자의 시선으로 보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캐릭터들을 비난하다가도 문득 반성하게 된다.
공연의 러닝타임은 3시간을 넘었지만 작품의 우수성에 담긴 적절한 유머와 깊은 사랑 이야기, 무엇보다 몰입도가 뛰어난 공연영화학부 학생들의 연기로 인해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연출과 연기 모두 원작에 충실해 오히려 자유로운 고찰을 할 수 있었던 연극이었다. 대학생들이 세계에 대한 가치관을 확립해 나가는 장(場)인 대학에는 이런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 많이 공연되고, 홍보되고, 관람되고, 지원되어야 한다. 따로 연습실이 없어 체육대학에서 연습하고 공연하는 공연영화학부의 상황이 안타까운 동시에 열악한 상황 속에도 뛰어난 공연을 선보인 공연영화학부에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