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의 큰 별’ 소설가 박완서 선생 별세
‘문학계의 큰 별’ 소설가 박완서 선생 별세
  • 고민정 기자
  • 승인 2011.02.25 18:08
  • 호수 129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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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손맛’ 그리운 독자들 어떡하라고


지난달 22일 오전 6시 17분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세상을 떠났다. 향년 80세. 담낭암과 투병하다 이내 한그루의 ‘나목’이 되고 말았다.
1970년 불혹의 나이로 그는 등단작 『나목』을 발표했다. 전쟁으로 인한 분단과 이산의 아픔을 다룬 작품이었다. 전쟁은 그가 펜을 든 이유였다. 그는 직접 겪은 고통을 글 속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참혹함, 이를 언젠가는 글로써 까발리겠다는 앙심이 그가 소설을 쓰는 원동력이었다. 전쟁 통에 오빠를 잃은 상실감, 아들을 먼저 보낸 어머니를 지켜본 경험은 그의 문학의 자양분이자 근원지였다.
그리고 1988년 그도 어머니처럼 아들을 잃었다. 서울대 의대를 다니던 잘생긴 아들은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대를 잇는 참혹함이었다. 크나큰 슬픔으로 한 때 제정신이 아니었을 그의 경험은 또 하나의 작품으로 탄생한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란 80년대 학생운동으로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절규가 담긴 소설이다. 이외에도 『목마른 계절』, 『도둑맞은 가난』, 『나무 자전거』,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등 여성문제와 사회비판적 시각을 다룬 많은 작품들을 낳았다.
늦깎이에 등단해서일까. 그는 누구보다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쳤다. 그의 작품은 문학적으로 빛나면서도 대중의 사랑을 톡톡히 받았다. 지난해 7월에는 자신의 근황과 주변, 삶과 인생에 대한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펴내기도 했다.
못 가본 길이 그토록 아름다웠는지 아직도 그의 소설을 필요로 하는 많은 사람들을 뒤로한 채 소복소복 흰 눈 위를 걸어간 문학의 어머니.
그의 글에는 인간과 사회를 깊숙이 들여다보고 그려낸 따뜻한 ‘엄마의 손맛’이 있었다. 박경리가 곧고 카랑카랑한 여장부 엄마였다면, 박완서는 수줍은 소녀를 마음속에 간직한 자상한 엄마였다.
박경리에 이어 박완서도 문학사 속으로 사라진 것은 사회적으로 엄마 노릇하던 여성문학의 종말을 뜻하는 것이 아닐까. 세대를 달리해서 모성을 다룬 문학이야 새롭게 나올 것이다. 하지만 옛날 ‘엄마의 손맛’이 담긴 문학은 기대하지 않는 게 좋을 듯하다. 2000년대 여성 작가들부터는 밥상의 맛이 확 다르다. 전혀 익히지 않은 날것의 음식들이 난무한다. 여성이 엄마 노릇하기 힘든 현실 때문에 저출산 문제를 앓고 있는 사회다. 그렇다고 문학을 향해 모성을 강요할 순 없지만 마음의 상처를 어루만져 줄 엄마가 더 이상 없다는 게 슬프다. 박경리와 박완서는 후배들에게 한없이 다정했다. 직접 텃밭에서 기른 채소로 만든 반찬으로 밥상을 차려주곤 했다. 박경리와 박완서는 작가 노릇을 하면서 후배들을 잘 먹이려는 엄마 노릇도 겸했다. 그는 ‘가난한 문인들에게 부의금 받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기도 했다.
박완서 타계 이후 그가 남긴 책들을 찾는 독자들이 늘어났다. 엄마 노릇하던 문학이 마지막으로 차려준 밥상 앞에서 독자들이 허겁지겁 숟가락을 놀리는 듯하다.

고민정 기자 mjko921@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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