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오도답파여행 23. 기차는 대륙을 향해 달린다
新오도답파여행 23. 기차는 대륙을 향해 달린다
  • 김재관(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
  • 승인 2012.03.20 21:53
  • 호수 13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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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과 바다를 잇는 징검다리 부산
▲ 대양과 대륙을 잇는 결절점인 부산역.

서울을 출발한 KTX 열차는 두 시간 사십 분 만에 부산역에 도착했다. 1905년 경부선이 처음 개통되었던 당시 ‘남대문역’에서 ‘부산역’까지 열일곱 시간 정도 걸렸던 것에 비하면, 백여 년 동안 여섯 배 가까이 소요시간을 단축시킨 셈이다. 역사를 나와 광장으로 나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간다. 맞은편 구봉산 중턱까지 자리 잡은 건물들에서 나오는 불빛들이 띠처럼 이어져 산을 감싸고 있다. 급한 형세를 이루며 내려오던 구봉산의 비탈면은 부산역 근처에서 수평을 이룬다. 바다를 매축하여 항만을 조성하기 전 구봉산은 바다에 닿았을 것이다. 근대 이후 바닷가에 조성된 도시들이 대부분 그렇듯이 부산도 해안을 메워 새로운 시가지를 형성했다. 이렇게 조성된 시가지에는 그 지역을 대표하는 건조물들이 세워졌다.

부산역도 마찬가지였다. 1908년 ‘초량(草梁)’이 종착역이었던 경부선이 부산항까지 연장되자 일제는 근대적 시설을 갖춘 역사를 짓기 시작했다. 역사(驛舍)는 식민지배의 우월성을 보여주는 상징물이어야 했다. 일제는 일본은행(1896년)을 설계했던 타츠노 킨고(辰野金吾)에게 설계를 의뢰했고, 1910년 붉은 벽돌과 화강암을 이용한 르네상스 양식의 2층 건물을 완공하였다. 부산역사는 경부선을 타고 부산에 도착한 사람들이나, 부관연락선(釜關連絡船)을 타고 현해탄을 건너온 사람들이 제국 일본의 건축술을 시각적으로 느끼게 하는 건물이었다.

게다가 부산역사 2층에는 조선총독부 철도국에서 운영하는 ‘부산철도호텔’도 입주해 있었다. 고급 시설을 갖춘 호텔의 주요고객은 조선과 일본을 오가는 고위급 인사들이었다. 이광수와 일본 언론계의 주요 인사였던 ‘토쿠토미 소호(德富蘇峰)’의 첫 만남도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그는 부산에 도착한 첫날 ‘아베 미츠이에(阿部充家)’와 함께 ‘도쿠토미’를 만난다. 이들은 식민지 조선의 언론을 주도하는 자들이었다. ‘도쿠토미’는 일본 국민신문(國民新聞, 고쿠민신분)의 사장이면서,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의 위임을 받아 식민지 조선의 언론통폐합을 주도한 인물이었다.

그는 조선총독부의 한글판 기관지였던 「매일신보」를 일제의 식민지 지배정책의 당위성을 선전하는 중요 매체로 육성했다. 그렇지만 ‘도쿠토미’는 조선에 상주할 수 없어서 「매일신보」를 하위 부서로 거느리고 있던 ‘경성일보사’의 감독으로만 취임한다. 대신 ‘국민신문’의 부사장이었던 ‘아베’를 ‘경성일보사’의 사장으로 보내 자신을 대신하게 했다.

이광수는 일부러 부산역사 내의 ‘부산철도호텔’까지 찾아가 ‘도쿠토미’로부터 아침대접을 받았고, 「경성일보」에 연재한 「오도답파여행-다도해」 기사의 문장이 좋다는 칭찬까지 받는다. 이광수는 이 만남에서 자신이 식민지 조선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공증되었음을 확인한다. 만남 이후 ‘도쿠토미’는 서울로 떠나고, ‘아베’ 또한 ‘탐량단’을 인솔하여 떠났지만, 그는 이곳에서 이들의 후원이 지속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다. 비록 이광수의 문명관은 그들이 생각하고 있는 식민지 조선의 문명화와 궁극적 목표는 달랐지만, 실행의 방법은 비슷했다. 이들은 이 만남에서 이러한 공통점을 확인했을 것이다.

이광수는 부산역을 떠나는 상행 경부선 기차의 기적소리를 들으면서 조선의 문명화를 떠올리고, 조선인들도 능력이 있음을 기차를 통해 보여주자고 말한다. 1905년 ‘부산’과 ‘시모노세키(下關)’를 잇는 부관연락선이 운항에 들어가자 부산항에는 한반도와 일본을 오가는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1908년 ‘초량’이 종착역이었던 경부선은 부산항까지 연장되었고, 이어 부산과 신의주를 잇는 급행열차 ‘융희호(隆熙號)’도 운행을 시작하였다. 1911년 11월 압록강 철교가 완공되면서 이 열차는 창춘(長春)까지 운행노선을 연장하였다. ‘융희호’의 시간표는 부관연락선의 발착시간과 맞춰져 있었고, 관부연락선이 닿은 잔교(棧橋)가 출발지이자 종착지였다. 이로써 부산역과 부산항은 대륙과 바다를 잇는 연계지점으로 성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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