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에 열광, 의리에 분노
의리에 열광, 의리에 분노
  • 최형균
  • 승인 2014.05.20 13:10
  • 호수 137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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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에 헌신하는 의리를 갈망

정장을 입은 말쑥한 사내가 나와서 외친다. “우리 몸에 대한 의리”. 하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냉장고 문짝을 날려버리고 쌀가마를 맨손으로 때리는 것과 함께 표주박을 맨 머리로 격파하는 기행도 곁들인다. 또한 “항아으리”나 “신토불으리” 등 전혀 연관성없는 단어들과 ‘의리’의 합성어를 부르짖는다. 대다수 독자들이 알고 있듯이 김보성의 음료광고다. 오프라인은 물론 인터넷 상에서도 의리를 이용한 다양한 단어사용이 봇물터지듯 이어지고 있다. 그야말로 ‘의리 없이 못살아(단어사용에 한해)’가 된 것이다.


김보성은 <투캅스> 시리즈 이후로 눈에 띄는 작품에 출연하지 않은 채 연예계의 마이너를 전전해왔다. 대한민국 영화사에서 어떤 의미론 길이남을 영화 <클레멘타인>을 비롯해 효도르가 출연하며 화제를 모은 <영웅: 샐러맨더의 비밀>에도 얼굴을 내밀었지만 모두 처참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는 인물 중 하나다. 바로 그가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남자는 의리’라는 어구 덕분이다. 큰 얼굴과 덩치, 더불어 항시 착용하는 썬글라스는 그의 의리 발언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해주기에 충분하다.


하지만 단순히 그의 마이너한 행적과 광고의 참신성이 시너지 효과를 이뤄 지금의 의리 열풍이 일어났다고 보긴 어렵다. 지난 8일 발표된 브라질 월드컵 최종 엔트리를 두고 불거진 ‘홍명보 엔트으리 논란’과 더불어 세월호 참사의 근본원인으로 지적된 관피아(관료+마피아의 합성어)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홍명보 감독은 ‘소속팀에서 뛰는 선수에게 기회를 주겠다’는 원칙을 접으면서까지 아스널의 벤치지키미 박주영을 대표팀에 발탁했다. 또한 관료사회와 민간협회간 재취업과 알선을 고리로 한 유착의 결과물인 관피아의 탄생. 모두가 한국 사회의 정문화, 나아가 의리에서 비롯됐다는 것이 세간의 주장이다.


그런 점에서 의리에 대한 세간의 열광은 모순적인 면을 보이고 있다. 다른 쪽에선 의리가 한국 사회의 구조를 황폐화시켜 인맥축구, 수백명의 어린 아이들을 죽인 원흉이라고 하면서 동시에 의리를 좇으니 어불성설인 것이다. 하지만 더욱 깊이 들어가 보면 이는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 수 있다. 의리를 주변사람 챙기기나 사익추구에 이용하는 자들에 대해 대중은 혐오감을 느껴왔다. 하지만 김보성은 다르다. 마이너에서 활동하지만 의리를 빙자해 남을 이용하거나 부를 탐하지 않는다고 대중이 인식하면서 그의 의리 발언은 자폐적, 자학적 패닉에 빠진 이들에게 해방구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그의 발언이 재밌고 차력 혹은 개그 퍼포먼스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회를 반면교사로 삼게 되는, 공익을 추구해야 할 이들이 사익적 의리를 추구하는 상황에서 공익적 의리를 갈망하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최형균 기자 capcomx6@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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