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기획꾼이란 무엇인가.
한국문화기획꾼이란 내가 만든 창조직업이다. 전 세계인들과 우리 국민들에게 한국문화를 재밌고 쉽게 그리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알려주는 것이다. 이젠 아리랑스쿨에서 양성하는 하나의 과정으로, 나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바뀌었다. 이 길을 함께 가는 사람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매 기수 20명씩 뽑고 있으며, 벌써 3기 모집을 눈앞에 뒀다. 한 달의 양성과정이 있으며 수료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신청자를 받아 일 년의 심화과정을 갖는다. 그들과 함께 재밌는 기획을 한다. ‘한여신(한복여행을 꿈꾸는 당신에게)’라는 토크콘서트와 다 같이 갓을 쓰고 신이 되어 고민 상담을 해주는 ‘갓 파티’가 있다. 이외의 다양한 활동을 심화과정 친구들과 만들어가고 있다.
▲ 한국문화기획꾼이 되기로 한 계기는?
아리랑유랑단을 꾸려 세계일주를 하던 중 많은 외국인들, 재외동포들을 만났다. 그들은 이 프로젝트를 일회성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평생토록 이어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한 아르헨티나에 갔을 때 장구가 없어서 박스로 연습하는 우리 동포들을 뉴욕의 재외동포 할머님들이 아리랑공연을 보고 눈물을 흘리시며 태어나서 본 잔치 중 가장 아름다웠다는 얘기를 해주셨을 때 스스로도 활동을 이어가고 싶어졌다. 그들이 나한테 거는 기대와 응원을 저버리지 않기로 한 것이다.
▲ 아리랑유랑단에 대해 소개해 달라.
중국의 동북공정 사업으로 인해 아리랑을 빼앗길 위기에 처했었다. 이를 지켜내야겠다는 생각으로 만들었던 것이 아리랑 유랑단의 시초다. 전 세계를 다니며 한국문화를 알리는 유랑단은 우수한 사람을 뽑거나 특별한 분야를 전공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우리 문화를 사랑한다면 누구나 지원할 수 있다. 현재는 20대 이상을 모집하지만 10대 주니어 한국문화기획꾼도 기획 중이다. 다양한 전공의 대학생들이 지원하는데, 개인적으로는 예체능전공자들도 많이 지원했으면 좋겠다.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시너지를 내서 서로 알고 있는 부분을 더 극대화 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그 과정이 이 활동이 됐으면 한다.
▲ 아리랑유랑단의 목표는?
초기의 생각은 우리문화를 지켜내겠다는 신토불이, 국수주의적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중국, 일본을 비롯한 외국인도 우리 문화와 아리랑을 사랑해주고 응원하는 모습을 보며 생각의 노선이 많이 바뀌었다. 아리랑이 세계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노래가 될 수 있겠다는 것이다. 우리 문화로 세계인, 우리 국민과 소통할 수 있는 다리를 만드는 것이 지금의 목표다. 문화로 소통하고 이야기하고 싶다는 취지다.
▲ 본인에게 아리랑이란?
조기유학생활을 했다. 외로움에 향수병을 앓고 있었는데 마침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이 원정경기를 하러왔다. 경기장을 찾아 재외동포들과 함께 아리랑을 불렀을 때를 잊지 못한다. 이후 한국에 돌아왔을 때 터진 IMF로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했고 부모님께서 이혼하시면서 고시원방에 살게 됐다. 위로를 받기 위해 붉은악마에 가입했고 아리랑을 통해 다시금 힘을 얻었다. 나는 아리랑을 나의 기회로 받아들였으며 그에 대한 나의 기억들을 꺼내어 더할 수 있었다. 그것이 결국 기획이 돼서 아리랑 유랑단과 함께 세계일주를 갈 수 있었고 그 과정 중 카페베네 대표님의 든든한 후원으로 좋은 친구들과 다녀올 수 있었다.
▲ 어려운 상황에서 엇나갈 수도 있었는데 그를 잡아준 것은?
꿈이다. 절벽 앞에 서면 그냥 떨어져서 죽을 생각만을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절벽 너머로 날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처음엔 그 원동력으로 전 세계를 다닐 수 있는 남자승무원이라는 꿈을 가졌다. 이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과정에서 실업계 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4년제 관광경영학과에 지원해서 합격했다. 멈추지 않고 그 이상을 찾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또 다른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것이 바로 아리랑 유랑단과 한국문화기획꾼이었다. 단순히 직업을 좇았던 것을 넘어 더욱 훨훨 날 수 있는 꿈의 진화를 이루어 냈다. 추상적일 수 있으나 꿈이란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 무일푼 대학생이 어떻게 세계일주자금을 마련할 수 있었는가.
카페베네에서 대외활동을 했었는데 당시 김선권 대표님을 만나 뵙고 아리랑유랑단의 계획을 말씀드렸다. 무모할 수도 있는 계획에 1억원이라는 거금을 투척해주셨다. 또한 인텔코리아에서 노트북, 아웃도어 브랜드에서 용품 후원을 받는 등 도움의 손길이 많았다. 도전을 하니 많은 분들이 십시일반 도와주셨다. 한글유랑단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자금을 마련했었다.
▲ 아리랑유랑단을 준비할 때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나는 예술, 전통, 국악, 아리랑, 한복 등의 문화와는 전혀 연결되지 않았던 평범한 관광전공자였다. ‘내가 어떻게 이들과 어울려 긴 여정을 떠날 수 있을까’하는 것부터가 벽이었다. 예를 들어, 가야금 연주를 할 때는 마이크를 악기 울림통이 있는 밑바닥에 대어줘야 한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조차 모르는 허접한 상태였다. 시도하는 과정에서 뼈저리게 많은 것들을 배웠다. 힘들긴 했지만, 무엇이 더 필요한지 직접 부딪히고 싸우며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기획에 발전들이 이뤄지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유랑단은 대금, 서예, 영상을 담당 하는 사람들 셋과 나, 넷으로만 이루어져 있었지만 그 다음엔 판소리, 장구 담당이 추가됐다. 그 다음엔 무용, 악기 담당 등 더욱 다양한 사람들을 섭외했다. 필리핀의 복싱영웅 ‘매니 파퀴아오’가 한 말인데, 결국 다 나와의 싸움이다.
▲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이 있다면.
매순간의 눈물들. 한번은 우리공연을 보기 위해 온 사람들의 눈을 감기고 아리랑을 들려주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책상에 놓인 문방사우로 아리랑을 들으며 느꼈던 감정을 써보라고 했다. 노래를 들을 때부터, 눈을 뜬 후 붓을 쥐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의 눈물, 단원들의 눈물도 모두 기억에 남는다. 한 방울 한 방울이 우리의 땀방울과 비슷하다고 느꼈다. 이 노래가 갖고 있는 힘이 우리만의 한이 아니라 이들에게도 통용될 수 있는 부분이라는 점이 벅찼다.
▲ 한국문화기획꾼으로서의 올해 목표는?
우선 올해 안에 한국문화기획꾼의 심화과정을 수료하는 사람이 100명이 되길 바란다. 이를 통해 한국문화의 에이스들이 전 세계인에게 창의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으면 한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우리의 100대 민족문화를 설정해놨는데, 이를 모두 아우르는 기획을 만들고 싶다. 아리랑 유랑단과 함께 북한도 가보고 싶고, 남북한 청년들이 한국문화를 아우르는 한국문화페스티벌, 한국문화올림픽 등 하고 싶은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최종적으로는 아리랑스쿨을 한국문화의 태릉선수촌으로 키우고 싶으며 한국문화기획꾼이 한국문화의 국가대표들이 되길 바란다.
▲ 꿈을 좇길 두려워하는 대학생들에게 한마디.
현실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어떻게든 살아날 구멍은 있다. 신은 버틸 수 없는 고통은 주지 않는다고 했다. 분명 뭔가에 도전한다면 버틸 수 있는 힘은 반드시 온다. 자신의 꿈이 무모하다고 생각하지 말았으면 한다. 젊을 때야말로 머뭇거리지 말고 고민을 굵고 짧게 해라. 남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도 필요하지만 대학생이라면 자신만의 판을 키워보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