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으로 만나는 청춘의 순간들 8. 사랑 없는 섹스, 섹스 없는 사랑
철학으로 만나는 청춘의 순간들 8. 사랑 없는 섹스, 섹스 없는 사랑
  • 배한올(영화·15졸)
  • 승인 2015.05.19 23:25
  • 호수 139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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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안정과 사랑의 결합으로 맺어진 쾌감

섹스와 사랑은 삶을 극적으로 만든다. 그리스로마 신화의 신들 역시 사랑과 섹스, 치정으로 다퉜다. 가장 뜨거울 20대의 중심을 지나고 있는 대학생은 어떠한가. 서로를 미치게 원할 때가 많은 시기이지만, 일상의 가까이서 사랑을 나누는 것은 금기된 행동이기에 부모가 있는 집과 대학가를 피해 주머니를 털어 비싸고 낯선 모텔로 숨어든다. 그마저도 크리스마스와 같은 중요한 날이면 없어져 연인들의 발을 동동 구르게 한다. 대한민국에서 사랑하는, 섹스하는 젊은이들은 이렇게나 웅크리고 있다. 여태껏 쉬쉬하며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섹스에 대한 고민을 숨겨왔다. 즐기기 위한 섹스는 정당한가? 정신적인 사랑만 나누는 것은 괜찮은 사랑법인가? 이것으로 냉가슴을 앓고 있는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섹스가 뭐길래 이토록 집요하게 인간을 괴롭힐까. 유전학자들은 우리가 번식을 위해 설계되어 있다고 말한다. 설계를 따르기 위해 호르몬은 분비되고, 우리는 그에 맞춰 움직인다. 하지만 여기서 하나 빠진 것이 있다. 상대를 선택하는 ‘나’ 자신이다. 나는 인간이라는 카테고리 안의 수많은 남자 혹은 여자 중에 ‘누군가’를 골랐다. 이러한 선택은 생물학적 반응 속에 자리 잡은 사랑의 씨앗이다. 선택 이후 그에게 다가간다. 그도 내 마음과 같을까? 아닐까? 그가 나를 거부하지 않고 좋아한다는 신호로 나의 손을 슬며시 잡는다. 이때의 짜릿함은 섹스와 같을 수 있을 정도이다. 섹스는 생물학의 문제이자 정신의 문제이다.


대학생 A는 복학생이다. 군대를 다녀와 학교를 다니던 와중에 착하고 예쁜 후배를 만나 마음을 고백했고 사귀게 되었다. A는 설레고 들뜬 마음에 여행을 가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여자친구 B는 말한다. “나 혼전순결주의자야.” 이런 상황에서 A는 어떻게 해야 할까? 소설가 알랭드 보통은 <인생학교(섹스)>에서 섹스는 때때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의무나 가치관에 모순되며, 심한 경우 서로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말한다. B의 혼전순결에는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종교, 방어, 두려움, 낯섦, 신념, 사회 관습, 부모님의 영향, 개인적인 트라우마 등. 상대방에게 섹스를 거부당할 때 입는 내상은 생각보다 크다. A는 B와 결합하는 것을 원하기에 사귀는 동안 합일점을 찾지 못한다면 삐걱댈 것이다. 섹스를 거부하는 이들은 대부분 일상과 섹스의 교집합이 너무 낯설게 느낀다. 예를 들어, B는 A의 동아리 회장을 하는 멋진 선배로서의 모습에 매력을 느껴 그와 만나기 시작했다. 하지만 A가 섹스를 요구하면, 그런 존경스러운 선배로서의 모습이 깨진다. 환한 대낮에,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다 발기한 A의 모습은 일상과 성애의 영역이 전혀 달랐던 B에게는 당혹스러울 수 있다. 혹은 프로이트의 시각에서 볼 수 있다. 이렇게 가정해보자. B는 A에게서 아버지와 닮은 지점을 발견했고, 자신에게 한없이 다정했던 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보여 사귀었다. 근친의 위험을 없애기 위해 부모님의 그림자는 성욕을 떨어트린다. 섹스하고 싶지 않다고 해서 B가 A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남녀 관계를 반대로 해도 그러하다. 남자 역시 섹스에 대한 두려움, 어려움을 가질 수 있다.


반대로, 섹스를 즐기는 것도 죄가 아니다. 섹스는 행위로서도 짜릿하지만, 생리적 반응에 큰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 나를 받아들인다는 표시이기 때문에. 살을 부딪치며 은밀한 육체와 함께 자아를 드러내는 순간, 우리는 쾌감과 흥분, 정서적 안정을 느낀다. 섹스는 육체적인 부분만을 만족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인 결핍 역시 충족시킨다. 대학생인 C는 섹스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하지만 남자친구 D에게 그러한 욕구를 쉽게 드러내지 못한다. 사회적 통념상 여자가 먼저 요구하기가 어렵다. C가 섹스를 좋아하는 이유는 D를 온전히 가진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알랭드 보통은 받아들여짐, 인정받기가 원초적인 욕구라고 말한다. 이 욕구가 섹스와 로맨스를 씨실과 날실처럼 엮어준다. 상대가 나를 받아들인 순간, 어른이 되면서 상대가 허락하기 전에는 절대 도달할 수 없던 그 모든 것들에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섹스는 남녀의 지독히도 외로웠던 성적 자아들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행위이다.


섹스 파트너를 원한다고 하면, 분별없고 천박한 사람으로 바라본다. 남자가 ‘내 마음이 열리기 전까지 섹스하고 싶지 않아’ 라고 말하면 남자답지 못한 것으로 여긴다. 섹스와 로맨스의 씨실과 날실은 사랑하고 있는 오직 두 사람만이 만들 수 있는 아름다운 그림을 구성한다. 하지만 어느 하나가 빠지면 균형을 잃고  허물어질 것이다. 100쌍의 커플이 있다면 100개의 각기 다른 사랑이 존재한다. 오늘도 고민하고 있을 20대여, 어둡고 습한 곳에서 나와 밝은 양지에서 사랑하자. 누군가에게는 섹스가 게임이지만, 누군가에게 불편함일 수 있다. 그것을 인정하고 무의식에 도달하기 위해, 치열하게 사랑하기 위해 연인과 섹스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자. 
배한올(영화·15졸)

배한올(영화·15졸)
배한올(영화·15졸)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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