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공시생의 하루 - 공시생의 메카 노량진에서 청춘을 바치다
노량진 공시생의 하루 - 공시생의 메카 노량진에서 청춘을 바치다
  • 윤영빈·설태인 기자
  • 승인 2016.03.29 12:34
  • 호수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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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공평한 사회 속, 공평함을 찾는 사람들이 모인 인공(人公)섬”

 

▲ 지난 2월 1일 노량진 ‘A’학원 영상반에서 공시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다.

통계청이 지난 2월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청년 실업률이 1999년 실업자 분류기준을 조정한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미디어에선 끊임없이 ‘명퇴 거부자 빈 책상 대기발령’, ‘출산 순번제’, ‘20대 희망퇴직’ 같은 등골이 저릿한 뉴스가 보도된다. 취업도 어렵지만, 취업 후에도 쉽지 않은 현실이 기다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불안정한 청춘들은 이를 잘 알기에 조금이라도 더 안정적인 방향으로 발걸음을 돌린다. 기획재정부의 발표에 따르면 올해 9급 공무원 시험 응시자 수는 총 22만2천650명. 지난해보다 3만2천명이 증가한 수치다.

공무원에 도전하는 오늘날의 청춘은 어떤 모습일지, 공시생의 대표 장소 ‘노량진’에서 그들의 하루를 따라가 봤다. <필자 주>

 

7:00am~9:00am
어스름한 새벽 공기가 노량진을 감싼다. 해도 제 모습을 미처 드러내지 않은 새벽 5시 반, 평소라면 단꿈을 꾸고 있을 시간에 거리를 나선다. 외투를 단단히 여미고 주위를 둘러보니 지나가는 사람마다 발걸음이 분주하다. 두꺼운 패딩 점퍼에 츄리닝 바지, 바짝 둘러맨 백팩은 공시생에겐 교복과 다름없다. 지난 10월 철거된 노량진 육교를 사람들은 ‘속세로 가는 다리’라고 불렀다. 육교가 사라진 이 자리에서, 아직 다리를 건너지 못한 공시생들의 하루가 어김없이 시작된다.

아침 햇살보다 학원 간판의 불빛이 먼저 거리를 비추는 노량진 골목, 좁다란 길을 익숙한 듯 앞서가는 공시생을 따라 자습실을 찾았다. 고등학교 교실 크기만 한 공간에 벌써 절반이 넘는 사람들이 앉아있다. 매일 아침 이곳을 찾는 공시생 A씨는 “가끔 1등으로 도착해도 가장 좋은 자리에는 전날 올려놓고 간 짐들이 많다”며 자리 잡기의 치열함을 토로한다. 자리만 맡아 놓고 한참 뒤에야 나타나는 사람들이 얄미워 짐들을 구석으로 치워 버릴 때도 있다. 이윽고 시작되는, 옆 사람과의 잡담은커녕 수험서 외엔 일말의 시선도 주지 않는 인내의 시간. 어느덧 새벽이 물러가고 해가 중천에 떴다.

▲ 이른 새벽 공시생들이 육교가 자리했던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

9:00am~1:00pm
오전 8시 40분쯤 되자 학생들이 한둘씩 자리를 뜬다. 대부분의 고시원이 9시에 수업을 시작하기 때문이다. 학원은 꽤나 넓은 편이지만 200명의 수강생을 수용하기엔 넉넉지 않다. 촘촘하게 들어선 책상과 벌써 자리를 채운 사람들 탓에 교실은 발 디딜 틈이 없다. 칠판 앞이나 모니터가 잘 보이는 명당자리는 새벽부터 기다려야만 겨우 앉을 수 있다. A씨는 “명당을 맡으려는 대기 줄은 새벽 5시 반부터 시작해 학원 문이 열릴 때까지 길게 이어진다”고 말한다. 수업 시작까지 10분 남짓한 시간. 칠판은커녕 모니터도 잘 보이지 않는 구석 자리가 답답해 주위를 둘러보지만 대답 없는 차가운 뒤통수만 가득하다. 

강사는 시작부터 “공무원 시험은 사정 딱한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공부 잘하는 사람을 뽑는다”며 학생들의 의지를 다진다. 강사는 모니터 속에 있을 뿐 강의실엔 없다. 이곳은 다른 건물에서 진행 중인 수업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영상반’이기 때문. 인터넷 강의와 비슷하지만 옆자리엔 수많은 경쟁자가 앉아있다.
공무원 시험은 ‘떨어트리기 위해 보는 시험’이다. 내가 졸면 다른 사람이 붙는 격. 영상반인데도 자리가 꽉 찬 모습을 보니 최대 406.6대 1이라는 공무원 시험 경쟁률이 피부에 와 닿는다.

수능 국어와 비슷한 유형의 문제를 쉬이 풀다 보니 ‘이정도면 고시공부도 할 만하네’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한자나 외래어 등 난도 높은 문제풀이가 쉴 새 없이 이어지자, 곧바로 정신이 아득해지고 연신 하품이 나온다. 한 문제에 1분 이상이 걸리면 안 된다는 압박감도 이겨내기 쉽지 않다. “결국은 집중력 싸움”이라며 “조급함이나 요행을 버려라”는 강사의 말에서 얼마 남지 않은 시험에 대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4시간 강의에 쉬는 시간은 딱 두 번, 그마저도 화장실을 다녀오면 끝이 난다. 강의 자료와 문제집만으로 꽉 차는 책상 위에는 저마다 에너지드링크나 커피, 편의점 빵 따위가 놓여있다. 아침을 먹지 않았는지 수업 중에 요기를 하는 사람은 많지만, 졸거나 딴청을 피우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스트레칭과 가끔 들리는 강사의 농담을 비타민 삼아 긴 수업시간을 버티고, 오후 1시가 다 돼서야 강의실을 나선다. 그제야 맑은 공기에 숨통이 트인다.

1:00pm~6:00pm
점심을 먹으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는 길거리. 수험생 뷔페와 편의점, 분식집이 공시생들의 단골 메뉴다. 식사에 동행한 A씨는 “많은 사람이 노량진 수험생은 컵밥을 먹는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비위생적이고 건강에 좋지 않아 잘 찾지 않는다”고 말한다. 기자는 A씨를 따라 근처 분식집에 들어가 제육덮밥과 라볶이를 시켰다. 함께 밥을 먹는 ‘밥터디’도 있다지만 대부분이 혼자인 모습을 보면서 한 테이블에 모르는 사람 4명이 함께 식사할 수도 있다는 낯선 재미를 발견한다. 얼마 먹지 않고 숟가락을 내려놓은 A씨에게 더 먹을 것을 권하자 “밥을 많이 먹으면 공부할 때 졸리다”며 다그친다. 덤덤한 한마디가 어쩐지 서글프다.

식사를 마치고 찾은 오락실은 게임에 열중하거나 구경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공시생은 공부하기 바빠 오락실을 찾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오락 한 판에 100원, 코인노래방은 3곡에 500원이다. 저렴한 가격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에 빠져든다. 오락실을 찾은 B씨는 “놀만한 시설이 많고 저렴하다 보니 금요일 밤이면 다른 지역보다 붐빈다”며 “노량진은 ‘놀향진(놀기 위해 향하는 곳)’이라는 역설적인 별명으로도 불린다”고 덧붙인다.

노량진의 또 다른 핫플레이스인 ‘홈마트’는 동네주민보다 공시생이 더 많다. 햇반과 3분 카레가 850원, 권장소비자가격보다 700원이나 저렴하다. 매일 드는 밥값이 부담스러운 공시생에겐 단비와도 같다. “삭막한 공간이다 보니 군것질 같은 소소한 일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절실하다”는 설명이다. 일반 편의점 가격의 반값에도 못 미치는 과자들을 보자 잠시 본분을 잊고 장보기에 빠졌다. 장바구니 한가득 담아도 만원을 밑도는 가격에 이렇게 팔아줘서 감사하다는 마음까지 든다.

보통 사람들이야 스마트폰 하나로 스트레스를 풀지만 대다수 공시생의 핸드폰은 온종일 비행기모드다. 수험생활의 외로움과 피곤을 달래주는 일은 오락시설 이용과 마트 구경, 공원 산책이 고작이다. 저렴한 물가의 노량진 술집을 찾는 공시생은 유독 주말에 많다. 새삼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 늦은 오후에도 붐비는 오락실

6:00pm~9:00pm
‘자습시간 엄수’라고 적혀있는 복도를 지나 자습실에 앉으니 앳된 얼굴이 눈에 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고등학생, ‘공딩’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올해 국가공무원 9급 공채시험에 응시하는 10대는 3천156명이며, 이는 전체 접수인원(22만2천650명)의 1.42%로 지난해보다 2배가량 늘었다. 수능 대신 공무원시험을 선택한 인우현(18) 씨는 “미디어를 통해 대학생활의 낭만을 접할 땐 부럽기도 하지만, 대학 진학에 많은 돈이 들고 졸업 후에도 취업이 쉽지 않은 현실을 고려해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게 됐다”고 설명한다.

간단한 저녁 식사 후에 스터디룸에 들렀다. 노량진에는 단톡방에서 공부 상황을 보고하는 ‘카톡스터디’, 약속한 시각에 독서실에서 출석체크를 하는 ‘출석스터디’ 등 다양한 스터디가 존재한다. 삼삼오오 모여서 일상적인 담소나 농담을 주고받는 분위기가 예상보다 가볍다. 학원에선 경쟁자지만, 스터디를 할 땐 동료가 된다. 하루에 내뱉는 말이 손에 꼽을 정도인 고시 생활을 하다 보면 사람과의 만남이 절실하다. 문득 학원 복도에 기대 혼자 눈물을 훔치던 공시생의 모습이 떠오른다. 섬처럼 고립된 공간, 이곳이 ‘노량도’라고 불리는 이유다.

▲ 공시생들이 스터디를 하고 있다.

10:00pm
아침만큼 쌀쌀한 밤거리건만, 실내에만 있었으니 추운지도 몰랐다. 고단한 몸을 이끌고 귀가하는 길에 ‘살면서 이토록 치열하게 보낸 하루가 몇 날이나 될까’라는 생각이 든다. 기약 없는 합격을 위해 오늘 같은 하루를 수백 번 반복해야 하는 공시생들. 공무원 채용을 늘리기보다 청년들이 몸담을 수 있는 다양한 일자리가 공존하는 사회를 꿈꿔본다.

노량진은 시험에 합격해 속세로 돌아가고 싶다는 공시생들의 바람과 높아지는 경쟁률 덕에 더욱 녹록지 않아진 현실이 공존하는 곳이었다. 다른 곳보다 조금 더 치열한 삶이 한데 엉켜있는 노량진에는 어김없이 사람 사는 냄새가 났다. 시험의 당락을 떠나 꿈을 향해 묵묵히 정진하는 청년들의 삶이 그 자체로 가치 있음을 느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숨이 찬 것은 본인이 뛰고 있다는 증거니 목표를 향해 계속 달려가라”는 강사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윤영빈·설태인 기자
윤영빈·설태인 기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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