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숲에 드리운 익명성의 빛과 그림자

2017년 단대숲 5천167건 제보글 분석 양민석·김한길 기자l승인2018.01.09l수정2018.01.09 21:40l1436호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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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이스북 페이지 '단국대학교 대나무숲' 프로필 사진

<Prologue>
대학 사회에서 익명성을 앞세워 소통의 장 역할을 자처하고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는 학생들이 자기표현의 욕망을 표출하는 최대의 공적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전국 학생들의 참여가 활발한 만큼, 웹페이지 ‘디시인사이드 OO대학교 갤러리’, 페이스북 페이지 ‘OO대학교 대나무숲’, 스마트폰 앱 ‘에브리타임’ 익명 게시판 등 익명 커뮤니티의 형태는 다양하다.


그 가운데 OO대 대나무숲은 2012~2013년 동안 고발성 익명 제보로 열풍을 불러일으켰던 트위터 계정 대나무숲의 후신으로서, 대학 구성원 사이의 대중적인 신생 커뮤니티로 떠올랐다.


‘단국대학교 대나무숲(이하 단대숲)’은 지난 5일 기준 전국대학 대나무숲 계정 가운데 9번째로 많은 팔로워 2만7천644명을 보유하고 있다. 이렇듯 단대숲은 학생들 사이에서 표현의 자유, 문제 제기, 고민 해결 등의 순기능에 주목을 받아 활발히 이용되고 있다. 그러나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았거나, 자극적인 성격의 제보가 게시돼 단대숲 이용자에게 불편함을 주는 등의 역기능 때문에 운영상의 논란을 빚기도 했다.
 

▲ 2017년 단대숲의 키워드를 나타낸 곰과 대나무 모양의 워드클라우드 (일러스트 고다윤 기자)

이에 본지는 2017년 한 해 동안 단대숲 페이지에 업로드된 모든 제보글을 빅데이터 분석 기법과 ‘제보 검색기’를 통해 심층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2017년 단대숲의 현황을 되돌아보고, 온라인 익명 커뮤니티와 대학생 소통 문화의 이면을 들여다보고자 한다.


■ 대나무숲 속을 걷는 방법
본지는 지난해 1월 1일부터 31일까지의 단대숲 5천167건 제보글을 크롤링 기법을 통해 수집했다. 이어 KoNLP 형태소 분석기법을 이용해 제보글의 텍스트에서 두 글자 단어 이상의 명사만을 추출한 뒤, 워드카운트, LDA 토픽모델링 기법을 이용해 분석했다. 또한, 단대숲 제보 검색기는 2017년 단대숲 인기제보들을 선별하는 데 활용했다.


■ 2017년 단대숲의 키워드

워드카운트를 통한 데이터 분석 결과, 대인관계, 연애, 고민을 주제로 한 단어들이 2017년 단대숲 이용자들 사이의 소통 양상을 가장 잘 설명하는 핵심어였다.


2017년에 가장 많이 쓰인 단어는 ‘친구’였다. 이와 함께 대인관계를 주제로 한 키워드 ‘사람’, ‘시간’, ‘안녕’, ‘사람들’ 등이 높은 출현 빈도를 보였다.


한편, 연애를 주제로 한 키워드가 상위권에 대거 분포하는 경향을 보였다. 출현 빈도수 기준 4위 단어 ‘남자’를 시작으로 ‘여자’, ‘마음’, ‘연애’, ‘사랑’, ‘연락’ 등이 나타났다. 또한, 고민을 주제로 한 키워드 ‘생각’, ‘진짜’, ‘얘기, ‘문제’, ‘때문’ 등이 단대숲 제보글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 2017년 단대숲의 토픽

▲ 일러스트 장혜지 기자

LDA 토픽모델링을 통한 데이터 분석 결과, 2017년 단대숲의 주요 토픽은 ‘연애(32%)’, ‘학교생활(20.3%)’, ‘반했어요&짝사랑(18.3%)’, ‘고민&성찰(15%),’ ‘일상 공유(14.3%)’ 순으로 나타났다. 여기서 토픽 1 ‘연애’와 토픽 3 ‘반했어요&짝사랑’의 분포율은 학생들이 ‘연애’라는 주제에 대해 2017년 단대숲 제보글의 전체 내용 기준 5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 일러스트 장혜지 기자

토픽 2 ‘학교생활’의 단어를 살펴보면, 제보자가 사제관계, 동아리, 도서관, 방학 등 전반적인 학교생활 문제에 관한 의견을 공유하고 싶다는 경향을 파악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재학생 A 씨는 “단대숲 제보글을 통해 유용한 정보를 얻고 개인적으로 시급한 생활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토픽 4 ‘고민&성찰’과 토픽 5 ‘일상 공유’의 단어를 살펴보면, 학생들이 심리적으로 거리가 가까운 사람에게 털어놓을 수 있는 사적인 고민이나 일화들을 익명으로 제보해 ‘페이스북’이라는 공적 공간에 공개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2017년 단대숲 화젯거리
#1. 표현의 자유
제보자의 익명이 철저하게 보장된다는 특성 때문에 학생들은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들에 대한 본인의 생각을 단대숲에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 대표적으로 페미니즘, 성 소수자에 관련된 제보가 주를 이뤘다.


10월 25일 #24666번째울림에 대한 익명 댓글입니다. (좋아요 229개)
얼굴이 예쁜데 페미니즘을 해서 걱정이라고요? 페미니즘은 메갈같은 애들만 하는거 아니냐고요? 그건 편견입니다. (후략)
 

05월 14일 #22524번째울림 #일상 (좋아요 69개)
저의 사랑의 형태는 조금 달라요 저는 일단 남자에요 남잔데 남자를 좋아해요 여기서부터 눈살이 찌푸려지시겠죠 저도 언제부터였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게이라는걸요 (후략)


#2. 문제 제기
대나무숲은 사적인 고민을 해결하고 일상을 공유하는 대화의 장일 뿐만 아니라 학내 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의식을 표출하는 공론장이기도 하다. 아래 단대숲 관리자의 공지사항은 학생자치기구에 관한 학생들의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4월 4일 #대나무숲_공지사항
첫째, 현재 죽전캠퍼스 총학과 총대 관련 제보가 많이 왔습니다. 본 제보는 아직 진행중인 사안이며, 업로드된 제보가 존재하므로 필터링 규칙 중 중복제보 필터링 규칙에 의거 전부 필터링 하겠습니다. 사건이 과열될 것을 염려하여 필터링 조치를 하는 것임으로 양해 바랍니다. (후략)

 

#3. 고민 해결
‘고민 해결’은 역설적인 순기능이다. 실제로 만나본 적 없어 서로의 정체조차 모르는 학생들이 ‘단대숲’이라는 가상공간에서 각자의 개인적인 고민을 이해하고, 서로를 격려해준다. 이와 관련해 안재욱(도시계획부동산·1) 씨는 “가까운 가족과 친구조차 모를 수도 있는 개인의 솔직한 내면이 서술돼있는 글은 나 자신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 같아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고 밝혔다.


4월 23일 #22189번째울림 (좋아요 337개)
저는 중학교때부터 체고 체대를 준비했었어요. 체고에 떨어졌지만 체대가면 되지. 이런 마음으로 중3말 고등학교붙었다고 놀자판이였던 제 주변 친구들과 다르게 악착같이 운동했어요. (후략)
↳ 실명 댓글 (좋아요 19개)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죠. 뒤돌아보지 말고 가요. (후략)


■ 익명성이 가진 양날의 칼, 언어폭력
제보자는 익명성이라는 도구를 악용해 사실관계가 확인되지 않았거나 자극적인 성격의 제보를 올리는 기회를 얻곤 한다. 유현실(상담) 교수는 “온라인 커뮤니티 이용자는 공적 자아가 드러나는 상황에서 차마 할 수 없는 언어폭력을 익명의 가면을 쓰고 저지른다”고 설명했다. 아래 게시글은 커뮤니티 상의 무분별한 언어폭력을 제재하기 위한 단대숲 관리자의 필터링 작업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2월 4일 #대나무숲_공지사항
제보글 내의 댓글과 제보함에 아직 업로드 되지 않은 제보에 캠퍼스간 분란 조장성 글이 다수 목격되고 있습니다. 분란성 댓글은 예고 없이 삭제 조치 할 예정이며, 제보는 절대로 올려드리지 않습니다.


4월 9일 #대나무숲_공지사항
젠더 관련 발언 및 비아냥 제보가 많은 관계로 "급"을 주제로 한 제보는 오늘 오전까지만 업로드 한 뒤 중복 제보 필터링 규정에 의해 필터링하겠습니다.


지난달 7일 #숲지기
선거관련 제보가 많습니다. 숲지기들은 중립성을 지키며 사실여부 파악을 할 수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이와 관련해 임재연(경영·4) 씨는 “양자 간의 갈등에서 한쪽만 피해자라는 편향성의 제보를 접할 때 불편함을 느낀다”며 “중립성을 위한 명확한 필터링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 온라인 소통을 통해 얻은 것과 잃은 것
1년 365일 우리 대학 구성원의 자유로운 의견 통합과 분쟁으로 조용할 날 없는 단대숲은 타 익명 커뮤니티 단쿠키, 에브리타임과 더불어 대학생의 소통 문화의 한 축이 됐다. 이와 같은 신세대의 소통 현상을 두고 MIT대학교 셰리 터클 교수는 “다 함께 홀로(Alone Together)"라고 평가했다. 개방성을 가진 온라인 커뮤니티의 참여가 증대될수록, 대인 간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한 오프라인 소통이 단절됐다는 뜻이다. 이에 우리는 온라인 통신 기술의 발달로 인간 간 소통의 참모습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보아야 한다.

 


양민석·김한길 기자  dkdds@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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